알다시피 싱가폴은 전후 말레이연방의 독립이후...다시 내부 민족갈등이 불거지면서 1965년 말레이연방에서 떨어져 나온 나라다.


싱가폴이 당시 최악의 상황이였다고 과장하는데, 사실 그때도 영국식민지의 중심 무/역도시로써 동남아서 가장 잘살던 도시였다.

문제는 조그만 도시국가다 보니 안보나 식수등이 문제였는데.. 이는 재빨리 영연방에 가입하고 주변국들과 우호관계를 가지면서 해결이 될수 있었다.


1 리콴유 독재의 시작

민족갈등이 독립의 직접적 원인이였던 만큼 이 부분만큼은 확실하게 정리했다. 어떠한 민족적 혐오발언이나 차별도 금지했다. 그리고 인구의 70%를 구성하는 화교로써의 정체성을 버리고 동남아의 한 국가로써 싱가폴인의 정체성을 확립시켰다. 그 일환으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했다.

그리고 공무원의 처우를 개선하고 대신 부정부패에 대한 가차없는 처벌(본인빼고)을 가했다. 조그마한 도시국가다 보니 이러한 정책은 쉽게 정착이 되었다.

이런 상황하에 경제는 고도성장을 구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리콴유 일가는 국가의 언론. 사법. 사정기관을 모두 장악했다.


물론 5년마다 국회의원 선거라는 절차는 거친다. 그러나 어차피 언론이고 법원이고 다 여당편이니...여기에 경제적 성과도 있고...선거는 의미가 없는 수준이였다.

리콴유의 정당 인민행동당은 100%의석을 독점했다. 그후 21세기가 되면서...몇석씩 야당이 가져가고는 있다. 2020년 총선에서는 인민행동당이 83석. 야당인 노동당이 10석을 얻었다.(역대 최다)


리콴유는 자식에게 바로 총리자리를 넘기지는 않았다. 1990년 고척통이 2대총리 자리를 올랐다...물론 그냥 바지 총리였고...실세는 상왕 리콴유였다.

2004년 아들 리센륭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자...그가 3대총리에 오르면서 사실상 세습에 성공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총리를 계속하고 있다.


싱가폴은 사실상 리콴유왕국이나 다름이 없다.

언론은 모두 리콴유일가가 장악하고 있고, 돈줄인 싱가폴 국부펀드도 리콴유일가가 운영하고 있다. 군부도 리콴유일가의 군대라고 할수 있다.


2017년 리센륭의 아들 리홍이가 30세가 되자 3대세습에 대한 논의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값자기 변수가 발생했다. 리센륭의 동생 리센양이 형을 비판하고 나선것이다. 뭐 이런저런 비판을 했지만 본질은.. 본인 아들 리센우도 있다는 어필이였다.


리센륭총리와 그 동생 리센양이 3대세습을 두고 다투는 모습에 비판이 일자..

결국 일단 현 재무장관인 로렌스윙이 4대총리를 하기로 교통정리가 됐다. 물론 그는 취임하더라도 바지일것이다.


리홍이가 자리를 잡으면 그가 5대총리에 올라서 3대세습이 이뤄질거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유일한 변수는 역시 친족들이다. 3대에 걸쳐 내려오면서...이제는 4촌관계가 됐으니...다른 4촌형제들이 모두 뭉쳐서 대항한다면 꽤 부담스러운 존재들이다. 



암튼 싱가폴은 독재자들에게 있어 롤모델인것만은 분명하다.

경제적으로 잘살고 그러나 통제되고...특히 독재자의 특권은 완벽하게 보장받는다. 

90년대이후 한때 중국이 이 모델을 연구하기도 햇지만. 포기했다고 한다.

당시 중국은 한 가문에 의한 독재가 아니고 공산당에 의한 독재였기 때문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