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아스>는 비잔티움의 안나 콤니니가 저술한 본인 아버지 알렉시오스 1세의 전기임. 당대 주요 사건들(주로 1차 십자군 전쟁)에 대해 비잔티움인들이 어떻게 바라봤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당시의 비잔티움 제국이 겪은 여러 전쟁과 전투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기에 비잔티움군의 모습과 편성 등에 대해서도 추론해 볼 수 있게 함. 

여기서는 퍼블릭 도메인으로 출판된 Elizabeth A. Dawes의 1928년 영역본을 바탕으로 중역할 거임. 오역 있을 수 있으며, 의역 많으니 뭔가 어색하다면 지적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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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오스 1세의 초상.


I. 시간의 흐름은 불가항력적이고 끊임이 없으며, 언급할 가치가 없든 주목할 만하고 중요하든 상관없이 모든 피조물을 망각의 구렁으로 빠트린다. 비극 작가가 말했듯, 이는 “가려졌던 것을 밝히고 드러났던 것을 어둠으로 감싼다.“(소포클레스, <<아이아스>>-역주) 그럼에도, 역사의 이야기는 이러한 시간의 흐름에 맞서는 거대한 방파제와도 같다. 저항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파도를 가로막으려 하며, 역사는 가진 모든 이야기들을 단단히 움켜쥐고 잊혀짐만이 기다리는 심연 속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만든다. 나, 안나는 알렉시오스 황제와 이리니 황후의 딸이자 ‘자줏빛 혈통’(Πορφυρογέννητη, 포르피로예니티; 황제와 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황녀-역주)이다. 나는 그리스어 공부를 매우 열심히 했고 수사학에도 문외한은 아니었으므로 문학에 무지하지는 않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과 플라톤의 <<대화편>>을 통독했을 뿐만 아니라 사과(quaternion, 四科; 중세의 고급 학문 네 가지로 산술학, 기하학, 음악, 천문학을 말함 - 역주)를 통해 정신을 풍요롭게 하였다.(반드시 언급해 두어야 하는 것은, 대자연과 지식에 대한 나 자신의 열망이 부여한 것들과, 신께서 내가 날 때부터 나누어 주시고 시간이 개화시킨 재능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자기 자랑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여튼,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 나는 이 글을 통하여, 나의 아버지께서 이뤄내신 업적들이 침묵 속에서 희미해지거나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망각의 바다로 사라지지 않도록 자세히 기록할 것이다. 황제로써 그분의 위업뿐만 아니라, 홀을 받기 전 다른 자들을 섬기며 한 일들까지도 말이다. 




II. 이 기록을 남기는 것은 문학에 있어 나의 능숙함을 과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도 중요한 일들이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고 방치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가장 찬란하고 위대한 위업일지라도 기록으로 보존되어 기억을 통해 전해지지 않는다면, 침묵 속에서 잊혀질 테니 말이다. 아버지께서는 명백한 사실들이 증명하듯, 지도자로써 행동하는 법과 (합당한 범위 내에서는)통치자들에게 따르는 법을 둘 다 알고 계셨다. 내 그분의 일생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으나, 의심과 중상을 일삼는 자들이 내가 아버지의 일생에 대한 책을 저술한 것은 오직 자신을 드높이기 위함이며, 언급된 역사적 사실들은 거짓에 불과하고 공허한 찬사일 뿐이라 속삭일까 두렵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이 행한 일들을 어쩔 수 없이 비판해야 한다면 내 면전에서 노아의 아들 함(창세기 9장 18~27절. 노아가 포도주를 마신 뒤 취하여 벌거벗은 채 잠들자 이를 조롱하며 다른 이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불효자 내지는 패륜아의 상징으로 자주 비유되는 인물.-역주)의 이야기를 떠들어 대며 비웃을 자들이 또한 두렵다. 그들은 악의와 질투로 가득 차서 비뚤어진 시선으로 다른 모든 것을 시기하는 탓에, 호메로스가 말했듯 “죄없는 자에게서 죄를 찾을“ 것이다.(호메로스, <<오디세이아>>-역주) 그러나 역사가의 짐을 짊어진 자라면 개인적인 호불호에 얽매이지 않고, 적의 행동일지라도 걸맞은 찬사를 보낼 일도 종종 있을 것이며, 친지들의 행동이 질책당해 마땅하다면 비판을 서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친구들을 나무라거나 적을 칭찬함에 있어 주저해서는 안 된다. 나는 실제 사건, 사람들과 그들이 한 행동, 그리고 그것들을 지켜본 이들-지금 살아있는 이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이 그 목격자다-을 증거삼아 사실을 기록하여 나에게 모욕당한 자들과 나의 동료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으면 한다. 




III. 내 아버지의 이야기를 남기기로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브리엔니오스 가문의 후손인 니키포로스 부제(카이사르; 황위 계승자나 존엄한 자에게 내리는 칭호. 이하 ‘부제’-역주)의 적법한 부인이었다. 그는 대단한 미남이고 매우 현명하였으며 능숙한 말솜씨를 가져 당대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돋보였다. 그를 지켜보거나 말을 듣는 것은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니 본론으로 돌아가자. 나의 남편은, 이미 언급했듯, 모든 면에서 특출났다. 그는 내 동생인 황제 요안니스가 군대를 지휘하여 야만인들과 맞설 때, 그리고 안티오키아를 점령했던 자들과 싸울 때 그 원정들에 동행했다. 니키포로스는 글쓰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기에, 곤경에 처해 피로한 와중에도 몇 편의 훌륭한 단문을 썼다. 하지만 그가 보다 선호하는 작업은 황후께서 하도록 명하신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전쟁이 잠시 멈춰 그가 관심을 역사와 문학 쪽으로 돌릴 수 있을 때마다 내 아버지이신 로마인들의 황제 알렉시오스의 치세에 대해 편찬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보다 이른 시대, 즉 디오예니스 황제(로마노스 4세 디오예니스, 재위 1068~1071년-역주)시절부터 시작하여(이 또한 황후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원래 주제로 다루려 했던 사람(=알렉시오스 - 역주)의 시기까지 써 내려갔다.

디오예니스의 치세 때 아버지는 당신의 빛나는 젊은 시절에 막 들어섰었고, 그 전에는 다 크지도 않은 소년이었다. 그때의 일을 칭찬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기록할 만할 일은 아직 없었으니, 부제의 계획(알렉시오스의 업적을 서술하고자 함-역주)은 그의 저술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하지만 그의 희망은 이뤄지지 않았고 니키포로스는 역사서를 완성하지 못했다. 니키포로스 보타니아티스 황제(니키포로스 3세 보타니아티스, 재위 1078~1081년-역주)까지 기록하고서는 더 나아갈 수가 없었기에, 그가 남기려 했던 사건들은 잊혀졌고 독자들은 크나큰 기쁨을 빼앗겼다. 이러한 이유로 내 직접 아버지의 행적을 기록하여 후손들이 그토록 중요한 일들을 알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부제의 글을 볼 기회가 있던 모든 이들에게, 그 조화로운 구조와 매력은 이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미 언급했듯, 내 아버지의 통치기에 대해서 그는 반쯤 완성된 초안을 가지고 돌아왔을 뿐이다. 또한, 아아! 치명적인 질병과도 함께. 아마 군인의 삶이 주는 끊임없는 고생, 지나칠 정도로 많은 원정, 그리고 우리에 대한 너무나 큰 걱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선천적으로 걱정이 너무 많았고 쉴 줄을 몰랐다. 거기에 가혹한 기후 역시도 하나의 원인이었으리라. 시리아와 킬리키아를 향한 원정을 떠났을 때부터 이미 그는 몸이 정말 좋지 않았다. 그러나 시리아를 시작으로 킬리키아, 팜필리아, 리디아와 비티니아를 거치고 나서야 그는 종양으로 인해 고통받는 채 우리와 도시들의 여왕(콘스탄티노플-역주)에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고통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모험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려 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또한 우리가 허락할 수도 없었다. 말을 하다가는 종양이 파열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IV. 여기까지 쓰니 현기증이 나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아! 로마 제국의 조언자를 잃었도다! 아, 그가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한 지식들이여! 그리고 그의 문학에 대한 지식과, 나라 안팎에서 쌓은 다양한 지식이여! 그의 축복받은 육신과 아름다운 얼굴을 떠올리면, 속담에 있듯, 지상의 왕좌에 걸맞았을 뿐만 아니라 보다 강력한, 아니 신성한 사람이었다 생각하게 된다. 내 자신에 대해 말하자면-포르피라(Porphyra;‘자줏빛 방’.황후 전용의 산실. 자줏빛 반암으로 짓고 자줏빛 비단을 둘러쳤다고 한다-역주)에서 태어난 이래로 늘 위험이 가까이 있었다. 내가 황제와 황후의 자식으로 포르피라에서 날 수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확실히 행운은 내게 친절하지 않았다. 내 삶은 거친 폭풍과 변혁의 연속이었으니. 오르페우스는 노래로 돌, 나무, 그 외에 모든 자연물들을 움직일 수 있었다. 피리 연주자인 티모테오스도, 알렉산드로스 앞에서 오르티안(orthian; 고음의 곡조. 군가나 뭐 그런 비슷한 거인 거 같은데 여기선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음.)을 연주하여 그 마케도니아인이 검을 쥐도록 고취했다. 내 고통에 대한 이야기는 무언가를 움직이거나 사람들을 격동시켜 무장하고 전쟁에 나서도록 만들지도 못하겠지만, 듣는 이를 눈물짓게 하고 생명을 가진, 심지어는 생명을 가지지 않은 자연물로부터도 동정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부제에 대한 나의 슬픔과 예기치 못한 그의 죽음은 진실로 내 영혼의 가장 내밀한 곳까지 와닿았고, 그 상처는 내 존재의 가장 깊은 곳까지 꿰뚫었다. 이 그칠 줄 모르는 재앙을 마주하니, 이전에 겪었던 어떠한 불운조차 드넓은 대서양이나 아드리아 해에 떨어진 물 한 방울에 불과한 듯하다. 그것들은 그저 나중에 찾아올 고통의 전주곡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 용광로 속에서 맹렬히 타오르는 형언할 수 없는 불길, 이 끔찍한 화재가 찾아올 것을 경고하는 조그마한 불꽃일 뿐이었다. 오! 장작이 없는데도 타올라 내 마음을 잿더미로 만드는도다! 가장 내밀한 곳까지 불태우고도 사그라들지 않을지니. 내 심장을 불사르고, 화염의 손아귀가 골수를 붙들고 내 영혼을 조각내었는데도 겉모습만은 멀쩡히 남겨두고 있구나! 이런 생각들 탓에 본래의 주제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의 부제에 대해 언급하고 그에 대해 비탄함이 내 마음에 참담한 슬픔을 심는 것을.

이제 눈물을 닦아내고 슬픔에서 벗어나 내 임무를 계속해서 행할 때이다. 비극 작가가 말했듯 “나는 불행 속에서 옛날의 불행을 기억하는 여자이니, 눈물지을 일이 두 번 있을 것이다.“(에우리피데스, <<헤카베>>-역주) 그토록 위대하고 덕망 있던 황제의 생애를 밝히자니 그분의 놀라운 업적이 떠오르며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온 세상이 나와 함께 흐느낄 것이다. 그분에 대해 회상하고 그 치세를 알리는 것은 내게는 탄식할 일이 되겠으나, 다른 자들은 자신들이 잃어버린 것을 기억할 수 있으리라.

이제 내 아버지의 역사책을 시작해야겠다. 서사가 완벽히 명확하고 사실에 근거할 수 있는 시점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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