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기병 대책은 거마책과 지형 말고 마땅히 없음.
이게 제일 문제인게, 사격으로 적 돌격 저지 못하면 gg.
2. 유럽의 발전상이랑 비슷하게 겹치는 부분 많음.
특히 선형진과 몹시 유사하다는 점에서
조선은 나름대로 논리적 귀결을 향해 가고 있던 듯?
그런데 화기가 유럽보다 확연히 뒤떨어지고
파이크 방진 대신 훈련도 낮은 검방보병이라는 구성으로
근접전에 너무나 취약하고 화력투사도 약해서 문제.
3. 실제 전투 들어가면 전층사수가 총 쏘고
사수대 사이로 전층살수가 나가서 활로 사격전.
적이 더 다가오면 전층 살수는 원래 위치로 ㅌㅌ
후층 살수가 널널한 진형간 거리를 이용해
전층사수 앞, 맨 앞열로 나가서 적 돌격을 받아냄.
후층 살수가 근접전을 펼치고 있으면
방금 퇴각했던 전층 살수가 다시 전진해서 근접전을 돕는다.
뭐 그런 구성임. 교리상으로는.
4. 그런데 실제로는 살수의 숙련도와 수가 너무 적었던 듯.
5. 400명 규모로 간단히 구성해봤는데,
편제상으로는 12250명이 하나의 군으로 구성됨.
6. 생략된 부분은 양익 기병인데,
양익 기병은 수가 너무 적어서
퇴각병 추격조차 제대로 할 수 있나? 수준임
주요 레퍼런스:
朝鮮後期 陣法과 武藝의 訓練에 관한 연구
- 訓鍊都監을 중심으로 -
이거 시리즈로 모을생각없나여? - dc App
사실 이전에 정리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럴 가치는 없을 것 같음
가치가 존나높은데여ㅠ - dc App
유럽과 조선의 화기 차이에 대해서는, 유럽식 아퀘버스가 탄환 무게 20g 정도로 1300j의 총구 발사 에너지를 가지는데, 일본과 조선, 중국은 탄환 무게가 그 절반인 10g 정도고 화약도 절반을 씀. 그럼 650j 정도라는 소리.
여기에 유럽은 중장기병들 잡으려고 머스킷 비율이 점차 높아졌는데, 머스킷은 총구 발사 시점에서의 에너지가 3000j 정도. 아주 두꺼운 플레이트 아머가 전장 상황에서 간신히 방호받을 수 있는 수준임. 이런 화기로도 기병 돌격을 화력만으로 제압하는게 힘들었는데, 조선의 조총으로는 더 힘들었을 것. 실제로 조선 조총, 명 조총은 두정갑에 맞고 튕겨나온 기록들이 있음.
여기에 방진 전통이 없고 근접전 경험이 실전되버리다 보니까, 교리는 그럴듯한데 근접전 대비책이 너무 허술하고 화력이 약해서 후금기병에게 털려버리는 사태가 발생. 만약 조선 조총이 유럽식 아퀘버스였거나, 혹은 조선 살수의 무장수준과 훈련도가 조금만 높았더라도, 후금 상대로 괜찮은 전투가 가능했을 것
조선이 조세제도라던가 상업 관련해서 이러저러한 한계는 많았지만, 그리 많지 않은 전쟁만으로 이정도 교리까지 나아간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함. 문제는 그놈의 근접전 능력과 떨어지는 화력.
화약 양도 양인데 일본산 화약이 가장 좋았다고 하니까 품질적인 문제도 고려해야할 거임. 그러면 650줄보다 더 떨어질 수도 있음.
ㅇㅇ. 그리고 요 시기 화기는 50m 거리에서 운동량이 2/3이 되고, 다시 갑옷에 맞는 경사에 따라서 에너지가 비효율적으로 전달되니까, 두정갑이 조총 총알을 튕겨내는 눈물나는 상황이 나온 건데... 아 좀 씁쓸하네 말하면서도
유럽하고 비슷하게 바뀌는 거 보면 결국 만류귀종인가
ㅇㅇ 문제는 유럽에서 달성한 몇몇 중요 성취가 빠져 있어서 기병 앞에 너무 무력했다는 점...ㅠ
조총이 새를 맞춘다는 뜻이라서 머스킷 명중률보고 저걸 어떻게 맞추나 싶었는데 위력이 낮아서 총구 제어가 좋았구나
호 그렇게 생각해볼수도 있겠네. 참고용으로 사수의 실력이 문제 없는 상황 기준으로 100m 거리에서 머스킷 명중률은 60% 정도임. 집탄율이 너무 안좋음
이쪽은 유명한 그라츠테스트가 레퍼런스임!
기병수 적은것도 치명적이지 않나? 30년 전쟁때 보면 기병 활약도 대단하던데 차,포를 땐거나 마찬가지잖아
ㅇㅇ 광해군이 미쳐서 목장 신나게 해체해버리는데 그 다음 기병전력 회복이 영영 안된 것 같음
1차대전때도 동부전선이나 중동에서 기병들이 괄목할 활약을 벌였다는 걸 생각하면 기병전력 약화는 정말 치명적인거지
좋은 글이네. 파이크 같은 장창 왜 안 나왔냐고 하면 장창이 소모품인데 겁나게 비싸서 수급이 잘 안되었다고 알고 있음. 실제로 임란 때 시도를 안한 건 아닌데, 숙련기간도 길고 소모품에 비용도 많아서 결국 포기했다고... 그리고 당시 한반도 식생이 장창 제작에 딱히 좋지 않았다고 하더라.
그것도 있고, 서양식 장창방진(사람 사이 거리가 10cm 이하 정도로 밀집하여 사각으로 진짜는) 사례가 동양에 너무 없어서, 아예 상상을 못한 점이 클 거임. 일본 전국시대 장창도 실제로 방진으로 운용했다는 근거가 없고.
보조해주는 포병조차 화력차이가 극심하고 기병은 유럽식이랑 비교하면 민망할수준임. 근접전? 세계사에서 유래없을정도로천시하고 약함
ㅇㅇ 맞음 개념이 유사하다 뿐이지 동시기 유럽군과 비교할 수준은 절대 아님. 단지 그렇게 적은 전훈만으로도 방향성을 따라가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는 거
옛날 본 글 생각나서 검색하다가 찾음. 아마 님도 이미 봤을 거 같긴 한데, 다른 사람들도 참고하라고..
https://blog.naver.com/laguel/222306355808
https://m.dcinside.com/board/war/3071895
근접전 문제 때문에 후기 조선군 보병 군장 품목 중에 하나가 사낭 역할을 할 주머니였다고 함. 야전에서 응급축성해서 싸우도록 하는 용도로 추정됨.
사실 검방보병이 대기병전에 취약하다는 것도 편견이긴한데 문제는 후기조선군 보병은 사실상 검과 조총을 든 보병들만 있다시피 한데다 쌍령전투에서 나오듯이 조총병들조차 숙련도가 높은 편인 아니라서... 사실 총이 보급되니까 활조차 군관급들 아니면 기병들조차도 활과 편전 쓸 줄 몰라서 다들 총들고 다녔다고 할 정도니 숙련도 문제는 꽤나 심각했던듯
플린트락-전열보병이 중요한게 저 보병간 간격이 1.5m/3.3m가 아니라 0.4m/1m까지 줄여버릴수가 있음 이렇게 줄어들면 화력의 밀집도가 3배이상 상승하고 거기에 무릎쏴+서서쏴+소대별 사격통제까지 끼얹게 되면 저런 화승총 기반 선형진은 진짜 버틸수가 없게 됨 근데 왜 화승총-조총은 밀집을 못하냐고? 매치락 화승방식은 화약접시에 땋게 한번 쏘면 화승이 주변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안전거리가 없으면 쌍령전투때 화약 폭발한거 마냥 옆사람의 탄통이나 자신의 탄통에 화승이 튀어서 자살행위가 될 수 있음 물론 이걸 막겠다고 화승을 짧게 한다거나 팔에 둘둘 감아서 날아가더라도 통제가 가능하게 하려는 시도가 있긴 했음 하지만 문제는 그래도 플린트락수준으로 화력밀집시키기가 곤란했다는게 문제임 하지만 플린트는 비싸서
조선군의 야전에서의 근접전은 사살상 김화나 광교산전투처럼 지세가 근접보병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없는거나 마찬가진거 같다. 일반적인 평원에서는 필패할 수 밖에 없는듯. 화약의시대 정주민 군대가 유목민 군대가 가지는 압도적인 교환비를 상쇄할수 있는 힘은 가지는 시대인데 여러모로 아쉽다. 테르시오의 덜떨어진 짭 정도만 됐었어도 어느정도 야전에서 싸울수 있었을듯
지식이 늘었다
조선은 행정제도고 그렇고 군사제도 그렇고 뭔가 이 수준까지 나름 구상했네? 라고 놀라게 되는데 실속 부족하니까 잘 안 돌아가는 거 존나 많은 듯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