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 짜르가 캅카스를 정벌했을 때,
거기에는 몇 개의 타타르 칸국이 있었음.
그 중 아르메니아와 상관이 있는 것은 예레반/나히체반/카라바흐 칸국이었는데
이 때 장게주르 고지대는 카라바흐 칸국의 땅이었음
니콜라이 1세는 예레반과 나히체반을 합쳐서 아르메니아주를 만들어 줬는데,
나히체반은 ㄹㅇ 타타르 국가라 아르메니아인이 10%도 안살았음.
러시아 치하 직후부터 이주민을 받아서 그 지분이 30%까지 올라갔고 제정 말에는 더 많이 살았겠으나 수치를 찾아보진 않았기에 안적음
아르메니아가 브레스트 리토프스크 조약으로 풀려날 때부터 나흐츠반은 예레반의 말을 듣지 않았었고,
1918년 5월 오스만이 러시아의 빈자리를 밀고 올라왔을 때 나흐츠반을 공식적으로 빼앗김
아무튼 이 이후부터 나흐츠반은 아르메니아 역사에서 퇴장함.
그런데 이 지도부터 지난 1500년간 인연이 없던 저 우하단 Goris라는 곳에 연하고 수상하게 빨간칠이 되기 시작하는데
(안드라닉 오자냔(Andranik Ozanian), 아르메니안 게릴라 수장)
서쪽이 고향이었던 독립군 일부가 수도 서쪽부터 다 포기하는 영토 할양에 반대하고 군벌 게릴라화되었고,
알렉산드로폴에서 항전하던 독립군은 나히체반, 슈샤, 고리스를 거쳐 여러 차례 토벌당하고 와해됨
최후에는 예레반으로 게릴라를 몰고 가서 쿠데타를 하려다 '프리고진'했고
수장인 오자냔이 1919년 5월 파리로 망명가면서 바투미 협정의 여파는 일단락이 됐음.
지도에 보면 Goris보다 동쪽으로 아주 옅은 빨간색 줄무늬 구역이 있는데
저동네 거점도시인 Shusha를 먹고 군웅할거를 노렸으나
Shusha에는 원래 살던 아르메니아인들이 타타르인들에게 권리 주장을 위해 만든 지역의회가 있었고
구체적인 기록은 없지만 저기서 아제르바이잔군이랑 포위전하다가 쫓겨나서 Goris로 탈출했다는 걸 보면
지역주민들한테 문제의 원인으로 여겨졌을 뿐 지역 장악에는 실패했다고 봐야겠지
이 자는 1927년 미국에서 죽었는데 볼셰비키 뻘갱이도 아니고 아제르에게는 대2학2살범이라서 소련은 시신 인수를 거부했음
소비에트 아르메니아 역시 쿠데타하는 새끼 안받는다고 무시하다가 나중에 1990년에 독립하고 국민 영웅으로 만듬.
하여간 장게주르에 빨간칠이 된 건 이 시기.
당시 오스만, 그리고 1차대전이 끝난 뒤의 영국군은 예레반에 가서 저 안드라닉 반란군의 무슬림 학살을 제어하라는 항의를 했는데
"쟤네 우리편 아님 ㅅㄱ"함. 실제로 통제를 못하는 독립 마적단이었으니까
그리고 나중에 소련에 복속되고 나서 장게주르에 대해 클레임을 주장했고, 성공함.
볼셰비키가 카라바흐에 진주했던 1920년 5월, 저 지역엔 어쨌든 결과적으로 아르메니아인만 남았기 때문
아제르바이잔이 아직 저 영역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던 시기 저기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재밌는 자료들이 좀 있는데
아르메니아인이 쓴 아르메니아 역사서들에는
'오자냔 장군님이 이끄시는 특수타격사단이 나흐츠반에 터잡으시고 슈시에서 고통받는 인민들을 위해 친히 고행을 마다하지 않으시었다
장군님과 독립군 뒤로 몇만명의 민간인들이 떼를 지어 따랐고 장군님께서는 '죄없는 타타르는 죽이지 말지어다'라 훈시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뒤로 빠리 베를린 비엔나를 오가시며 외2교독립운동을 하시다가 고국에 묻히지 못하고 미국에서 서거하시었다'
라는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오늘날 우리가 슈니크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오자냔 장군님의 덕이었다' 라는 내용도 몇개 책에서 봤는데
진지하게 쓰면 실베 납치각 뜨니까
삼족보행병기의 전술적 효용성을 찬미하는 것으로 글을 마침
어쨌든 오늘날 장게주르에 타타르인은 0명임
아제르바이잔이 저 회랑이고 뭐고 예레반 원주민구역 안으로 다 꺼지라고 클레임하는 데는
단순히 감정적 문제 외에도 이런 상당히 근본없는 배경사건도 역할을 한다는 것. 끝
나히체반이 1918년부터 아르메니아와 인연이 없어졌다고 보기엔 소련 시절에도 아르메니아인이 꽤 살긴 했음. 그런데 아제르바이잔의 집요한 탄압 때문에 도저히 살 수 없어서 떠나는 바람에 독립할 무렵엔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지 ㅠㅠ
소유권에 대한 얘기. 제정 이후로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콤바인은 해병이야
트라이포드는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