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의 장거리 무기인 석궁과 장궁 중 어떤게 더 나은 무기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널리 퍼진 얘기로는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중세시대 당시 장궁은 현대의 기관총같이, 석궁은 저격총같이 활용되었다고 한다.
역덕들, 실제로 실험해본 사람들, 역사학자들은 관통력, 발사속도, 전술적 가치를 두고 토론을 이어왔다.
발사속도나 관통력같은 확실한 관점들은 유튜버 Tods workshop같이 실제로 테스트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런 테스트에는 한계가 있다. 테스트는 전쟁터가 아니다. 그래서 테스트는 잘못된 결론으로 이끌었다는 해석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빠른 사격속도는 전쟁터에서 당연히 높은 효율성을 보인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역사연구가들도 실제테스트 결과를 자주 무시함으로서 문제에 직면했다.
이 두 무기를 정확히 비교하고 싶다면 실제 테스트 결과랑 역사사료를 검토해야만 한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장궁은 생산가격이 저렴했고 발사속도가 빨랐으며 여러 전투에서 장궁의 효과가 증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훈련시간이 길었으며 좁은 공간에선 알맞지 않았고 강도높은 훈련을 받아야했다고 한다.
석궁은 반대로 강력했으며 오랫동안 당겨진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고 많은 훈련시간을 필요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석궁은 가격이 비쌌고 장전시간이 길었다.
보통 장궁의 큰 장점인 발사속도, 석궁의 장점인 관통력, 훈련을 갖고 토론되어왔다.
당연히 다른 논거들도 있겠지만 보통 저 세가지를 갖고 비교를 한다.
역사상 단 한번도 어떤 군주가 앉아서 두 무기의 장점과 단점을 기록한다던지 어떤 무기를 더 선호한다던지 같은 기록을 남겼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보통 영국은 장궁을 선호했으며 제노바 공화국이랑 프랑스는 석궁을 선호했다.
이런 무기선택은 무기생산 가격, 투입가능한 자원, 그 지역에 거주하는 장인들에 따라 달라진다.
두 무기들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겐 상당히 힘들었다. 현대 역덕들과 역사학자들에게도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두 무기들의 영향력에 대한 수많은 의문점들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학계에선 영국의 장궁이 석궁 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더 많이 연구되었다. 석궁에 대한 연구는 보통 무기역사연구의 하나의 요소로서 연구되었거나 석궁의 발전 역사에 관한 역사만 쓰여졌다.
석궁의 활용과 영향력에 관한 사료는 매우 적다.
학자들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활은 중세 후기 때 광범위하게 규격화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서유럽군대 대부분은 장궁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장궁의 형태는 중세 후기 때 더 커지고 더 성능이 좋아졌다는 것을 제쳐두고서라도 계속 유지되었다.
하지만 석궁은 반대로 중세기간 동안 지속해서 발전되어왔다. 방아쇠 메커니즘은 더 나아졌고 줄의 팽팽하게 하는 장치도 발전했고 나무활에서 조립식 철로 된 활로 대체되었다.
석궁의 발전은 시대에 따라 격차가 매우 커서 15세기 보헤미아에서 싸웠던 후스파 석궁병이랑 1099년 예루살렘 점령 때 전투를 치루었던 제노바 석궁병이랑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렇게 전통적으로 장궁은 야전용 무기로, 석궁은 공성전용 무기로 보았다.
이런 형식은 영화나 게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10년 영화 로빈 후드에서도 평지에 위치한 영국군은 장궁을, 성 위에서 공성전을 하는 프랑스군은 석궁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몇몇 역사 학자들도 석궁은 당시 성 위에서 저격용으로 사용되었다고 언급했다.
석궁의 콤펙트함은 좁은 공간에서 효율적이었다.
지금까지의 연구 대부분은 영국 장궁병과 석궁병들이 직접적으로 맞닥뜨린 야전전투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석궁의 이러한 점은 무시되어왔다.
예를들어 영국 장궁병들이 제노바 석궁병 2개 대대를 사격했던 크레시 전투가 있다. 이 때 당시 제노바 석궁병들은 제대로된 장비를 갖추질 못했는데 특히 커다란 파비스 방패를 못 챙긴게 가장 컸다.
석궁의 사용과 공성전이라는 상황에 대한 연구는 매우 적다.
단순히 두 무기가 직접적으로 맞닥뜨렸다고 정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당시 상황의 앞뒤 연관성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근본적으로 장궁이 석궁보다 훨씬 더 빠른 발사속도를 갖고 있다는 점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수많은 연구와 유투버들이 증명했다.
https://youtu.be/1w8yHeF4KRk?si=HZdx8xlprSmqk51O
Medieval Warbow vs Windlass Crossbow - Speed, AccuracyShooting a HEAVY 160lbs medieval longbow against a HEAVY 860lbs medieval crossbow to look at the speed of shooting and the level of accuracy each of these cl...youtu.be위 영상에서 장궁을 사용한 남자는 160파운드 짜리 장궁을 6발 쏘는 동안 다른 남자는 860파운드 짜리 석궁을 2발 쐈다.
이런 차이는 매우 커서 가장 단순한 매카니즘으로 장전할 수 있는 석궁이라도 장궁한테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130파운드 짜리 단순하게 손으로 잡아당겨 장전하는 석궁조차 130파운드 짜리 석궁과의 대결에서 패배하였다.
그러나 저 위 영상의 유튜버들에 따르면 이런 테스트는 절대 전장의 환경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의를 주었다.
이런 발사 최고속도는 완벽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실제로 전장의 환경에서 장궁을 빠르게 발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근본적으로 질문해봐야할건 최대한 빠르고 많이 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냐는 것이다. 만약 아니라면 발사속도는 아마도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장궁병들은 여러 이유로 최고 발사속도로 사격한 일은 드믈었다.
장궁병들에게 있어 전투시작 때부터 최대한 모든 화살을 소모하는 것은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여러 사료에서도 영국 장궁병들은 몇 시간 뒤에도 사격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중세 궁병들이 정확히 총 몇발의 화살을 갖고 다녔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하인리히 8세 당시 메리로즈 호의 재고품 목록과 비교해보면 만약 영국 장궁병들이 최대한 빠르게 화살을 쏜다면 몇 분 내로 모든 화살을 다 소모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군대는 배에 실어진 화살보다 더 많이 갖고 있을 것이다.
(6개 화살 / 분당 = 360개 화살 / 시간당)
이론적으로 중단 없이:
360 x ~ 5000 사수 (아잴쿠르 전투 당시) = 1,800,000 화살 / 시간당
하지만 그럼 분당 여섯발의 최대 속도로 사격을 한다면 어마어마한 양의 화살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설령 이 정도 양의 화살이 보급이 된다 치더라도 사수의 체력이 문제가 된다.
암만 사수가 매일 훈련을 한다해도 이런 사격 속도를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위 영상의 장궁을 쏜 유튜버는 최대 속도로 12발에서 18발을 쏜 다음엔 휴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중세시대 궁병들은 아마 더 많이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언젠간 헬창근육몬 장궁병이라 할지라도 지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궁이 정말 중세시대의 기관총같은 역할을 했을지가 의문이다.
석궁은 장궁과 비교해봤을 때 상당히 낮은 발사속도를 갖고 있다. 석궁은 장전을 위해선 여러가지 부가적인 장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격 속도 자체는 예상보다 그렇게 느리지는 않을 것이다.
석궁은 신체적으로 사수를 많이 힘들게 하지는 않아서 지속적으로 사격속도 유지할 수 있다.
제노바 석궁병 같은 경우엔 팀으로 움직였다. 한명이 엄폐 상태에서 장전하는 동안 다른 한명은 사격을 한다. 이렇게 정확도를 최소로 잃고 두배의 장전속도를 얻을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실제상황에선 장궁은 예상보다 느린 사격속도를 갖었으며 반대로 석궁은 더 빠른 사격속도를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시각에서 장궁의 빠른 사격속도는 장점이 된다는 점은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생각 보단 덜 중요한 요소이다.
두번 째로 논쟁이 되는 것은 당기는 힘, 관통력이다.
근본적으로 중세시대 석궁의 관통력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설령 특정한 군대내에서, 특정한 시간대에서라도 말이다. 석궁의 종류가 너무 다양하고 그 동안 석궁에 대한 연구가 매우 적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700에서 14000파운드의 당기는 힘을 갖고. 대부분의 장궁은 90에서 185파운드짜리 당기는 힘을 갖는다.
이런 점은 석궁의 가장 큰 장점이다.
중세시대 당시 석궁은 범죄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안나 콤네나는 석궁을 산적이나 지옥에서 온 기계라고 표현을 했다.
이런 과장적인 표현은 아마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무기에 대한 충격 때문일 것이다.
교회에서도 석궁의 사용은 기사도에 어긋난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는 원거리에서 귀족기사의 사슬갑옷을 뚫을 수 있는 무기였기 때문이었다.
석궁은 실제로 높은 당기는 힘을 보유하고 있지만 물지학적으로는 비효율적인 무기이다. 훨씬 더 적은 에너지가 볼트로 보내진다는 뜻이다.
130파운드의 당기는 힘을 갖고 있는 석궁은 110파운드의 장기는 힘을 갖은 장궁에 비해 삼분의 일의 사거리를 갖는다는 점에서 석궁의 비효율성이 더욱 잘 드러난다.
당연히 화살의 모양같은 사거리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소들도 존재한다.
주된 원인들 중 하나는 석궁은 가속도를 내는 길이 더 짦다는 것이다.
석궁은 더 적은 에너지를 볼트에 전달하기 때문에 결국 발사체에 전달된 에너지의 석궁과 장궁의 차이는 당기는 힘으로 예상하는 것 처럼 아주 크진 않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앞뒤 상황을 봐야한다.
특히 각각의 무기의 전술적 역할을 봐야할 것이다.
강한 석궁은 적군이 아군에 접촉하기 전에 죽이는 무기로서 적합했고 장궁은 반대로 장시간 지속 지원사격 무기로서 더 적합했다.
이것은 아마 백년전쟁 당시 영국 장궁병들의 주된 임무였을 것이다.
그들은 프랑스 병사들에게 끊임없이 살인적인 화살비를 퍼부었을 것이다. 그들을 고슴도치로 만들어 돌격을 강요하고 혼란을 야기시키기 위해서.
석궁은 반대로 적군의 주력이 공격하기 전에 적군을 죽이고 전투불능에 빠뜨리는 역할이었다.
즉, 이 두 무기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석궁은 적이 공격해오기 전에 죽이는 무기였고 장궁은 적을 압박하고 실수를 유발시키기 위한 무기였다.
이 두 무기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강조되었다. 이 두 무기들은 각자 알맞게 사용되었다.
강력한 석궁과 빠른 연사력의 장궁은 그들이 어떻게 투입되는가에 영향을 끼쳤다. 양쪽 무기들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목적을 갖고 있었고 다른 전술적 목적에 알맞았다.
다음 떡밥으론 훈련도가 있다.
역사학자들은 석궁병을 양성하기 위해선 적은 시간이 필요한데 반해 한 명의 정예 장궁병을 양성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에 큰 관심을 갖었다.
특히 이 두 무기의 훈련도의 차이점 만드는 것은 사격 위한 체력적인 조건이다.
100파운드의 당기는 힘을 당기는 것은 매우 까다롭고 오랜 훈련을 필요로한다. 못해도 일년이 필요하다고 한다.
부가장비로 장전하는 석궁은 그에 반해 낮은 신체적 조건을 요구한다.
이런 논점의 문제점은 영국장궁병이 더 오래 훈련하니까 더 좋은 군인이라는 점으로 결론지어진다는 점이다.
이런 결론은 틀렸다. 장궁병이 그들의 신체적인 능력으로 활을 당긴다는 것이 그들이 군기가 잡혔다거나 백발백중의 명사수라는 뜻은 아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14, 15세기 영국 장궁병들은 장궁 조무사급의 자유농들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대부분은 평균에 한참 밑이었다.
개개인의 사수들의 능력은 너무나도 달랐다. 필수적인 훈련을 통해 장궁병은 높은 확률로 장궁을 다루는 능력과 높은 정확도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세 활 훈련에 관한 사료가 적어 훈련표준을 결론짓기가 힘들다.
주로 사용되는 사료로는 14세기 에드워드 3세 당시 켄트의 행정관에 대한 법령이다.
이 법령에 의하면 장궁병들은 휴일네도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고 한다. 이런 규정은 15세기까지 여러번 통과되었다.
이것은 영국 장궁병들이 규칙적으로 훈련을 받았다는 의미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그들의 훈련도가 너무 부족해서 경고차원에서 주기적으로 내려진 명령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국군은 대부분이 많은 규정들을 지켜와서 전투준비가 완료된 충분한 수의 장궁병들을 양성할 수 있었다.
종합적으로 사료에서 대부분의 장궁병들은 장궁을 다루기 충분한 체력을 갖추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예 장궁병은 절대 아니라고 했다.
반드시 알아야할 것은 모든 유럽 군대에서 장궁병과 석궁병의 규칙적인 사격 훈련은 상당히 흔했다.
즉, 석궁병은 훈련을 안 받았다는 것은 아니었다.
대체로 장궁을 쏘는 것이 더 어렵다. 영국군은 항상 능력있는 장궁병을 양성하는데에 성공했지만 오래전부터 모든 영국의 장궁병들이 최고의 상태였던 것은 아니었다.
중세시대 장궁, 석궁병의 훈련도 표준을 평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장궁과 석궁의 강점과 약점과 전장에서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중세 유럽의 대략적인 전쟁수행을 더 잘 이해하게 해준다.
그러나 모든 것들은 첫 인상과는 다르게 더욱 복잡하다. 장궁과 석궁 중 어떤게 더 강력한 무기인지에 대한 질문의 간단명료한 정답은 없다. 둘 중 어떤게 공성전에서 혹은 야전에서 더 나은 무기인지에 대한 답 또한 없다.
대부분의 그동안 진행된 연구들은 보통 앞뒤 상황을 분석하지 않았다.
이 주제의 테마는 아직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 토론은 오랫동안 진행된 역사연구의 좋은 예시이다.
오직 기술자들과 테스터들의 기술적인 교류, 여러 분야의 학자들간의 토론만이 결국엔 더 나은 이론, 더 나아가서는 정답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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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근데 난 장궁vs석궁 이거 비교하는게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함, 근데 무기체계 자체가 각 사용국의 지리적이나 사회적 요소를 엄청 많이 탄다고 생각해서 직접적으로 뭐가 우월하다 이걸 따지는건 무의미하다고 봄
결론) 각 무기는 사용국가의 환경과 인프라에 따라 맞는걸 써야하며 암만 둘 중 하나가 더 좋은 성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기마병과 탱크 수준의 차이가 아닌 이상 자기들 손에 맞는걸 쓰는게 최고다. 즉 석궁과 장궁의 스펙보단 영국과 프랑스의 교리를 먼저 비교하는게 최고다. 세상에 완벽한 무기는 없다.
좀 더 극단적으로 임진때 조선군에게 억지로 조총 들려줬어도 초반 줘 털리는거 못막았음
모든게 다 적용되었을지도 모르죠. 장궁병도 사람인 이상...석궁 상대할때는 최고속도로 활시위 당겼을테고, 기사들이 돌진할때는 장애물/진창 믿고 천천히 사격했을듯. 제가 겁장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석궁 상대로 힘을 아낄수는 없었을거 같네요
영국은 장궁을 선호했으며 <- 제노바 석궁 주요 구매자 중 하나가 영국이었음
개추
그냥 각자의 요구사항들에 맞춰진 무기들이고 병사들의 보여준 무기들의 성능들도 엄연히 말하자면 비슷했기에 둘다 쓰인거 물론 병들 운용방식은 다른 경우가 있어보이지만
재밌게 잘읽었음 - dc App
서유럽은 영국 제외하고 거의 석궁 쓰지 않았나?
영국도 사용했음. 장궁 역시 영국만 쓴게 아니라 북유럽,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전반에서 널리 사용됐고 15세기쯤 가면 프랑스에서도 꽤 사용됐음. 용담공으로 유명한 15세기 부르고뉴 군대에서도 장궁이 쓰였고,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용병들은 이미 아케버스와 머스킷이 대세가 된 16세기 이후에도 장궁을 사용하고는 했음.
스웨덴의 구스타프왕에게 고용되어 활약한 스코틀랜드 용병들 보면 할버드나 화승총 뿐만 아니라 장검부터 장궁까지 별에 별 무기로 구성되고는 했음. 결국 상황과 조건에 맞게 들고가서 쓰는 거
그러고보니 중세말 프랑스에서 원시적인 상비군 만들던 것도 장궁병 아니었나
장궁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