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그런 시도가 80년대에 이미 있었고, 처참히 실패하여 소련 전차 함대에 심각한 악영향을 남겼기 때문임



1976년, 하리코프에서는 우수한 6TD 1000마력 디젤엔진(T-80B의 가스터빈 엔진과 같은 마력), 강력한 셀룰러 필러 포탑(T-80U 특유의 원기둥 포탑), 더 향상된 헌터킬러 능력(차장조준경에 독립 안정기 설치)을 갖춘 오비옉트 476을 공개했고

1982년까지 면밀한 테스트와 수정을 거쳐 안정적인 신뢰성을 확보하는데 성공했음. 기동성은 T-80과 동등, 경제성은 T-64, 공방능력은 모든 소련 MBT를 뛰어넘는 전차가 완성된것임



그러나 476과 6TD 엔진은 정치적 영향력이 높았던 가스터빈 지지자들의 견제를 받았음. 그 결과, 1979년즈음 "그럼 하리코프에서 연비 좋은 가스터빈 엔진 만들어서 T-80에 넣어" 라는 병신같은 결정이 내려짐

멀쩡한 디젤엔진을 냅두고 디젤엔진과 비슷한 성능과 비슷한 연비를 목표로 개발된(...) 이 가스터빈 엔진의 이름은 VGTD-1000FM. 당연히 하리코프에 가스터빈 생산설비를 건설하는 삽질도 같이 했음

물론 "연비좋은 가스터빈 엔진" 같은게 될리가 없음. VGTD-1000FM은 테스트에서 처참한 결과만을 보여줬고, 개발 과정에서 문제가 속출했음

이미 차기 전차를 다 만들었는데 가스터빈 엔진 개발만 1983년 7월까지 밀리자, 갈때까지 간 가스터빈 지지자들은 VGTD를 쓰레기통에 처박고 GTD 엔진을 다시 꺼내오게 됨

그 결과 VGTD-1000FM의 개발비와 생산설비 비용은 땅바닥에 버려졌고, 이번에는 GTD-1100F 엔진을 하리코프에서도 만들라는 결정이 1984년에 내려짐. 물론 저 GTD-1100F는 가스터빈 엔진의 단점은 여전히 해결 못했음

그리고 이번에는 GTD-1100F도 문제가 생김. 엔진 수명이 낮았을뿐 아니라, 하리코프에 가스터빈 엔진 생산시설을 맨땅에서 지어야 했기 때문에 처참한 생산량을 보여줬음

그와중에 가스터빈 엔진에 열심히 박던 유스티모프가 죽으면서 가스터빈 지지자들의 영향력이 줄어들었음. 소련군은 기다렸다는듯이 1985년에 "6TD를 장착한 T-80U"를 만들라는 명령을 하리코프에 하달했고, 2년만에(...) T-80UD라는 이름으로 양산을 시작함



T-80UD와 동등한 성능의 476이 1982년에 완성됐지만, 하리코프에서 가스터빈 T-80을 만들라는 결정 한번으로 5년이라는 시간과 천문학적인 예산이 낭비됐음


http://btvt.info/1inservice/t-80u.htm
https://en.rattibha.com/thread/1672502508466446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