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할줄도 몰랐을텐데 정작 독일은 가만있고 프랑스가 오히려 나서서 빠는 이유가 뭐냐?
댓글 9
프랑스 카롤루스, 카페왕조의 직계가 사를마뉴이고 그 뒤 발루아, 브루봉 왕조가 전부 카페왕조의 후계인데 사를마뉴를 남 취급할수가 있음?
muralist(livefire11)2023-09-12 15:09
그리고 인종적으론 게르만이었던 사를마뉴는 엘베강 이북의 진짜 게르만족들을 그리스도교로 교화시켜보고 안되면 다 잡아죽일 야만인으로 생각해서 독일은 무작정 위인으로 빨아주긴 좀 마쓱한 편이 있음..
muralist(livefire11)2023-09-12 15:13
위만이 설령 고조선 혈통이 아니라 연나라 혈통이어도 위만조선이 속지적으로 한국 역사인 것은 당연하고 속민적으로도 한민족 역사라는 것은 바뀌지 않음. 왜냐하면 위만이 혈통과는 무관하게 드러낸 정체성은 연나라계 정체성이 아니라 고조선 정체성이었고, 한민족 개념은 훗날 생긴 것이지만(고려, 조선 거치면서) 그 한민족의 기원 민족들 중 하나로 고조선이 포함되므로 고조선-위만조선은 한민족사가 되는 것임. 프랑크-프랑스도 마찬가지임. 프랑스인이라는 민족 개념은 12세기에나 생기지만 그 이전의 프랑크인들이 프랑스인의 기원 민족들 중 하나이므로 프랑크는 프랑스 민족사에 속하게 되는 거임
ㅇㅇ 1(222.112)2023-09-24 21:38
답글
한편 카롤루스 프랑크는 '독일인'이라는 12~16세기에 걸쳐 형성되는 민족 개념의 기원 민족 중 하나이기도 하므로 동시에 독일 역사로도 간주되는 것임. 혈통이 만세일계로 같으냐가 중요한게 아님. 현재 존재하는 민족의 기원 민족에 포함되느냐가 민족 역사 귀속에 있어서 핵심임. 그래서 카롤루스, 프랑크는 프랑스, 독일이 공통 역사로 같이 다루는거임. 그런데 다만 독일에서는 카롤루스와 프랑크에 살짝 시큰둥해하는 경향이 있는게, 카롤루스와 프랑크가 게르마니아에서 벌인 행적(침략, 토착 게르만계 민족들 대량학살) 때문임. 그래서 독일인이라는 민족의 기원에 프랑크인이 포함됨에도 프랑스와는 달리 그렇게 크게 조명해주질 않는 거임.
ㅇㅇ 1(222.112)2023-09-24 21:40
훗날 융합되어 생성된 민족의 기원과 관련이 있는가라는 점에서 보면 카롤루스는 프랑스랑 독일 양 측의 역사적 위인임. / 골(켈트계 민족) + 로마(라틴계 민족) + 프랑크(게르만계 민족) 융합 = 프랑스인 민족 / 게르마니아 게르만계 제민족들(알레마니인, 색슨인, 튀링겐인 기타 등등) + 보이(켈트계 민족) + 일부 슬라브계 민족들(체코인 일부, 폴란드인 일부 등등) + 프랑크(게르만계 민족) 융합 = 독일인 민족 / 여기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프랑크는 프랑스인과 독일인의 기원 민족들 중 하나로써 후대인들인 프랑스인, 독일인에게 속민주의적 민족사적으로 귀속됨
엘수에뇨(yonghan9562)2023-09-25 04:50
답글
뭔 말인지 이해가 안간다면, 고구려인, 백제인, 신라인은 당대에 서로 문화적, 언어적으로 유사하긴 했지만 같은 한민족이라는 개념은 없었음. 그러나 이를 모두 통합한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생겼고, 따라서 한민족의 문화정체성적 기원 민족들인 고구려인, 백제인, 신라인은 자연스럽게 한민족에 귀속되어 한민족의 민족 역사가 되는 것임
엘수에뇨(yonghan9562)2023-09-25 04:51
답글
따라서 프랑크는 각각 서프랑크, 동프랑크로 갈라지기 전까지는 프랑스, 독일 모두의 민족 역사가 되고 따라서 카롤루스 역시 프랑스 위인이기도 하면서 독일 위인이기도 함. / '왜 프랑스는 카롤루스를 샤를마뉴라고 프랑스식으로 부르며 물고 빠는데 독일은 왜 카롤루스 잘 안 빠노?' 라는 질문의 답을 하자면, 위에 다른 게이들이 이미 설명하긴 했지만, 카롤루스와 프랑크는 게르마니아 지역에 있어서는 침략자 포지션에 가까웠기 때문임. 물론 카롤루스의 군사 정복으로 각 게르만계 민족들 별로 분리되어있던 게르마니아가 하나로 합쳐졌고 그 덕에 훗날 독일인이라는 민족 개념이 발생한 것은 맞음. 그런데
엘수에뇨(yonghan9562)2023-09-25 04:54
답글
그 하나로 합치는 과정이, '이방인(아직 독일인이라는 민족 개념이 등장하기 전인 시절이므로 당대 게르마니아의 게르만계 민족들 기준으로 카롤루스와 프랑크는 갈리아에서 몰려오는 이방인들임) 침략자들의 무자비한 대량학살과 강제개종 정책'이었기 때문에, 바로 이 침략, 대량학살, 억압적 강제개종 정책의 당사자들이었던 게르마니아 토착 게르만계 민족들의 후손들이자 융합체인 훗날의 독일인들로써는 카롤루스와 프랑크도 자신들의 기원 민족 중 하나이긴 하지만 차마 물고 빨긴 어려웠던 것임
엘수에뇨(yonghan9562)2023-09-25 04:57
답글
오히려 독일 지역에서 카롤루스와 프랑크를 그나마 자국 위인 및 역사로 좋게 재평가해준 것은 21세기 상당히 최근 들어서의 일임. 20세기에 단순무식하고 비학술적으로 과격하게 만세일계스러운 잘못된 민족론을 떠드는게 유행하던 시절의 독일에서는 카롤루스를 일방적인 프랑스놈 침략자로, 그리고 그 카롤루스에 맞서 항전한 비두킨트(게르마니아 색슨족 지도자)를 독일을 지키고자 했던 위대한 게르만 위인으로 받드는게 훨씬 유행하던 메타였음
프랑스 카롤루스, 카페왕조의 직계가 사를마뉴이고 그 뒤 발루아, 브루봉 왕조가 전부 카페왕조의 후계인데 사를마뉴를 남 취급할수가 있음?
그리고 인종적으론 게르만이었던 사를마뉴는 엘베강 이북의 진짜 게르만족들을 그리스도교로 교화시켜보고 안되면 다 잡아죽일 야만인으로 생각해서 독일은 무작정 위인으로 빨아주긴 좀 마쓱한 편이 있음..
위만이 설령 고조선 혈통이 아니라 연나라 혈통이어도 위만조선이 속지적으로 한국 역사인 것은 당연하고 속민적으로도 한민족 역사라는 것은 바뀌지 않음. 왜냐하면 위만이 혈통과는 무관하게 드러낸 정체성은 연나라계 정체성이 아니라 고조선 정체성이었고, 한민족 개념은 훗날 생긴 것이지만(고려, 조선 거치면서) 그 한민족의 기원 민족들 중 하나로 고조선이 포함되므로 고조선-위만조선은 한민족사가 되는 것임. 프랑크-프랑스도 마찬가지임. 프랑스인이라는 민족 개념은 12세기에나 생기지만 그 이전의 프랑크인들이 프랑스인의 기원 민족들 중 하나이므로 프랑크는 프랑스 민족사에 속하게 되는 거임
한편 카롤루스 프랑크는 '독일인'이라는 12~16세기에 걸쳐 형성되는 민족 개념의 기원 민족 중 하나이기도 하므로 동시에 독일 역사로도 간주되는 것임. 혈통이 만세일계로 같으냐가 중요한게 아님. 현재 존재하는 민족의 기원 민족에 포함되느냐가 민족 역사 귀속에 있어서 핵심임. 그래서 카롤루스, 프랑크는 프랑스, 독일이 공통 역사로 같이 다루는거임. 그런데 다만 독일에서는 카롤루스와 프랑크에 살짝 시큰둥해하는 경향이 있는게, 카롤루스와 프랑크가 게르마니아에서 벌인 행적(침략, 토착 게르만계 민족들 대량학살) 때문임. 그래서 독일인이라는 민족의 기원에 프랑크인이 포함됨에도 프랑스와는 달리 그렇게 크게 조명해주질 않는 거임.
훗날 융합되어 생성된 민족의 기원과 관련이 있는가라는 점에서 보면 카롤루스는 프랑스랑 독일 양 측의 역사적 위인임. / 골(켈트계 민족) + 로마(라틴계 민족) + 프랑크(게르만계 민족) 융합 = 프랑스인 민족 / 게르마니아 게르만계 제민족들(알레마니인, 색슨인, 튀링겐인 기타 등등) + 보이(켈트계 민족) + 일부 슬라브계 민족들(체코인 일부, 폴란드인 일부 등등) + 프랑크(게르만계 민족) 융합 = 독일인 민족 / 여기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프랑크는 프랑스인과 독일인의 기원 민족들 중 하나로써 후대인들인 프랑스인, 독일인에게 속민주의적 민족사적으로 귀속됨
뭔 말인지 이해가 안간다면, 고구려인, 백제인, 신라인은 당대에 서로 문화적, 언어적으로 유사하긴 했지만 같은 한민족이라는 개념은 없었음. 그러나 이를 모두 통합한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생겼고, 따라서 한민족의 문화정체성적 기원 민족들인 고구려인, 백제인, 신라인은 자연스럽게 한민족에 귀속되어 한민족의 민족 역사가 되는 것임
따라서 프랑크는 각각 서프랑크, 동프랑크로 갈라지기 전까지는 프랑스, 독일 모두의 민족 역사가 되고 따라서 카롤루스 역시 프랑스 위인이기도 하면서 독일 위인이기도 함. / '왜 프랑스는 카롤루스를 샤를마뉴라고 프랑스식으로 부르며 물고 빠는데 독일은 왜 카롤루스 잘 안 빠노?' 라는 질문의 답을 하자면, 위에 다른 게이들이 이미 설명하긴 했지만, 카롤루스와 프랑크는 게르마니아 지역에 있어서는 침략자 포지션에 가까웠기 때문임. 물론 카롤루스의 군사 정복으로 각 게르만계 민족들 별로 분리되어있던 게르마니아가 하나로 합쳐졌고 그 덕에 훗날 독일인이라는 민족 개념이 발생한 것은 맞음. 그런데
그 하나로 합치는 과정이, '이방인(아직 독일인이라는 민족 개념이 등장하기 전인 시절이므로 당대 게르마니아의 게르만계 민족들 기준으로 카롤루스와 프랑크는 갈리아에서 몰려오는 이방인들임) 침략자들의 무자비한 대량학살과 강제개종 정책'이었기 때문에, 바로 이 침략, 대량학살, 억압적 강제개종 정책의 당사자들이었던 게르마니아 토착 게르만계 민족들의 후손들이자 융합체인 훗날의 독일인들로써는 카롤루스와 프랑크도 자신들의 기원 민족 중 하나이긴 하지만 차마 물고 빨긴 어려웠던 것임
오히려 독일 지역에서 카롤루스와 프랑크를 그나마 자국 위인 및 역사로 좋게 재평가해준 것은 21세기 상당히 최근 들어서의 일임. 20세기에 단순무식하고 비학술적으로 과격하게 만세일계스러운 잘못된 민족론을 떠드는게 유행하던 시절의 독일에서는 카롤루스를 일방적인 프랑스놈 침략자로, 그리고 그 카롤루스에 맞서 항전한 비두킨트(게르마니아 색슨족 지도자)를 독일을 지키고자 했던 위대한 게르만 위인으로 받드는게 훨씬 유행하던 메타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