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bnnbloomberg.ca/turkey-greece-vow-to-maintain-thaw-in-effort-to-solve-disputes-1.1974301
에르도안과 북부 키프로스의 터키인 지도자는 키프로스에서의 두개 국가 해법을 제시하였으며
단일 국가로서 통일을 추구하는 그리스와 키프로스 정부에서는 해당 해법을 거부
키프로스 정부와 그리스는 키프로스를 연방제로 개편한 단일 국가로 통일하자며 회담을 요구하지만
북부 키프로스에서는 두개 국가 해법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겠다면서 회담을 거부
키프로스는 고대부터 그리스인들이 살아오던 섬이지만, 여러차례 지배자가 바뀌어왔다. 하지만 베네치아 지배 시기까지 이 섬은 압도적으로 그리스계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해왔다. 그러나 16세기 오스만 투르크 지배 시기 다수의 터키계가 유입되었고 19세기에는 인구의 1/3이 터키계인채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 독립 이후 그리스계가 다수를 차지하는 키프로스에서도 그리스와의 통합 움직임이 많아졌으며
20세기에 들어서는 터키 공화국의 영향을 받아서 키프로스의 터키인들도 민족주의적 의식이 강화되었다
1950년에는 키프로스의 그리스계들을 중심으로 그리스와의 통일 투표를 실시했고 터키계들은 당연히모두가 보이콧 하였다
결과는 95%의 찬성으로 나왔지만 당시 섬을 지배하고있던 영국은 해당 투표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시기부터 키프로스의 그리스계와 터키계는 여러 분규를 벌여왔는데 그리스계 무장단체들은 그리스와의 통일을 위해서 영국과 터키계들을 공격헀고
터키계들은 이에 영국의 지배 계속과 그리스로의 통합을 저지하기 위해 무장 단체를 만들어서 대항하기도 하였다
영국은 강제로 그리스와 터키계의 통합 공화국으로서 키프로스를 독립시켰지만 민족간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고
1970년대에는 그리스 군사 정권이 키프로스 정교회 대주교이자 대통령인 마카리오스 3세 대통령을 축출하고 그리스와의 통일을 적극 추진하는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옹립하자 (그리스는 이 직후 군사정권이 붕괴하여 군대를 철수시켰다)
이에 터키 공화국은 즉각 반발, 6만에 달하는 병력으로 키프로스를 침공하여 북부 키프로스를 점거하고 터키계 자치정부를 선포, 연방제 통일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키프로스와 유엔은 이를 거부, 1983년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이라고 하는 터키의 괴뢰국이 수립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터키만이 이곳을 정식 국가로 인정한다
터키의 키프로스 침공 이후 UN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라서 남북 양측 구역 사이에 유엔 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양측의 무력분쟁을 저지하고있으며 아마도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일것이다.
키프로스 분단이후 모든 통일을 위한 대화들은 전부다 무산되었는데
가장 합의에 근접했을때조차도 결국 파탄난 이유는 북부 키프로스에 주둔한 터키군의 철수여부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한다
지금 시점에서는 북 키프로스의 터키인들은 두개 국가 방안을 요구하지만 키프로스의 그리스계들은 대부분 통일을 하길 원하고 있다.
튀르키예 산하 북키프로스는 중국, 러시아 똘마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