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미 해군 대령이자 미국 국립전쟁대학의 전략연구그룹의 선임 연구원인 NR 구딩 주니어는 [미크로네시아에서 일본의 역할](A role for Japan in Micronesia)이란 제목의 논문을 미국 포드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https://apps.dtic.mil/sti/citations/ADA017332)
구딩 대령은 이 논문은 학문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하에 쓰여진 것으로, 반드시 국방성이나 정부 관계자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 공표에 즈음해서는, 국방성의 검열을 받아 출판이 승인됐다고 전문에서 밝히고 있다.
구딩 대령의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이 요약됐다. : 옛 전장(미크로네시아)에서 옛 적(일본)의 역할을 증가시켜야 한다.
논문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미국에게 권장하고 있다.
1. 미크로네시아에서 일본에게 경제를 담당하게 하자
미크로네시아는 전략적으로 중요하지만,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미크로네시아에 대한 미국의 원조액은 1952년 650만 달러에서 오늘날(1975년) 7,000만 달러에 이르고 있지만, 여전히 도로나 마을, 농업이나 어업 등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의 원조 정책은 일본 시대 미크로네시아가 보여준 수출 경제와 같은 경제 구조를 방해하고 있다.
즉 미국의 경제 정책은 미크로네시아에서 성공하지 못했지만, 일본은 이전에 미크로네시아 개발에 매우 성공적이었던 바가 있다. 따라서 일본이 자본을 투하하여 미크로네시아에서 경제를 담당하면 미국의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2. 팔라우에 석유비축기지를 세우자
1973년 오일 쇼크로 일본의 경제적 피해가 심했는데 이것은 일본은 아랍 국가에서 석유의 82%를 수입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하며, 일본은 이를 개선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기꺼이 해야 할 것이다.
팔라우 바벨다옵 제도를 대규모 정유 시설 및 저장 시설을 갖춘 환적항으로 만드는 것을 제안한다. 중동의 원유는 먼저 초대형 유조선으로 롬복 해협을 통과하여 바벨다옵의 거대 항구에 입항시켜 여기에서 원유를 저장하고 정제한다. 그리고 다음에에는 소형 유조선으로 석유를 일본으로 수송한다.
그러면 만약 중동에 분쟁이 일어나도 비축된 석유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이 당시 일본흥업은행과 닛쇼이와이가 팔라우에 석유 비축 기지 건설을 계획한 바 있다.)
또한, 석유 저장고를 건설하면, 일본이 석유 보급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될 것이고, 일본을 천천히 교묘하게 재군사화하는 것과 이어질 수 있다.
3. 미일 공동으로 태평양 방위군을 창설하자
미일 공동의 MICPAC(= A Micronesia Pacific Defense Force), 즉 '미크로네시아·태평양 방위군' 의 창설을 제안한다.
방위군을 창설하면, 일본을 교묘하게 유도해, 매우 천천히 재군사화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것이, 나아가서는 일본의 안전보장 관계를 자각시키는 것에도 연결된다. 그리고 미군이 계속해서 요코스카, 사세보 등을 사용하는 것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MICPAC의 감시, 컨트롤을 하기 위해 일미 합동의 해군 사령부를 설치하는 것을 제안한다. 방위군은 미국 항공모함 1척을 비롯한 함대와 일본의 대잠부대로 구성, 보급은 양쪽이 공동으로 분담한다.
일본에게 보급과 대잠 부대를 맡길 경우, 상당한 군비가 절감된다. 자위대의 해외 파병을 금지한 일본 헌법이 장애물이 될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미 자위대는 해외에서도 훈련을 하는 만큼 헌법을 개정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다만 Micpac에 대한 일본 국내의 반응이 좋지 않을 거라 생각된다. 일본인은 아직 불개입주의가 강하다. 하지만 뜻 있는 일본 정치인은 재군사화와 MICPAC의 혜택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일본에 대해 섬세한 설득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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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미 저 시기부터 미국에서 일본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노리긴 했으나, 저 정도 수준으로 확대된 바는 없음.
팔라우에 석유 기지 세우는 것은 팔라우인들의 반대 및 여러 복잡한 이유로 취소됐는데, 저 때 팔라우인들이 자기네 땅이 다른 미크로네시아보다 더 중요하고 인식하게 됐고 이게 다른 미크로네시아와 갈라지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음.
오호
팔라우인들이 반대의견낸거보면 부지선정단계까진 진행됬었나보네 - dc App
ㄴㄴ 타당성 조사에서 끝남. 당시 팔라우 엘리트 정치인들은 저게 경제적으로 매우 이익이 될 거라 생각해서 찬성이 강했는데,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환경 오염 + 군대와의 연관 등으로 부정적 의견이 강했음. 그래서 비밀리에 하려했는데 중간에 유출되고, 국제환경단체들이 엮이면서 일본이 포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