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에 이르러 러시아에게 위협을 느낀 일본은
홋카이도 최남단을 통치하고있었지만 그거랑 별개로 홋카이도 전역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투사하던것을 기반으로
홋카이도와 그 일대를 전부 일본의 영토로 만들어서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자 하였다
아무튼 그 이후 100여년간 일본은 온갖 내분과뇌절을 거친끝에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 국가가 되었고
러시아와도 적절히 타협을 보았다
그 결과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에 따라서 사할린은 전부 러시아 영토가 되고 일본은 쿠릴 열도 전역을 자국 영토로 삼게 된다
(현대 일본은 홋카이도 근해의 섬 4개 지역에 대해서는 저 당시 조약대상이 아니였다고 주장한다)
영토문제를 매듭지은 일본과 러시아는 적당히 잘 지내는 나라가 되었지만서도
일본인들은 러시아를 언제나 위협의 눈초리로 보게 된다(냉전때까지)
한편으로는 러시아에게 있어서 극동은 저당시에도 중요한 지역이였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뚫고자 하였다
1891년 러시아의 황태자 니콜라이 로마노프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기공식에 참가하고자 블라디보스토크로 배를 타고 향하게 되는데
그는 도중에 일본에 들려보고자 하였다
특히 러시아 황실의 전통에 따라서 이러한 여행은 그냥 여행이 아니라 황족의 견문을 넓히고자 하는 교육의 일환이였다
니콜라이 황태자는 러시아에서 육로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트리에스테로 이동 거기서 배를 타고 그리스로 이동하여 친척 왕족들을 만난뒤
이집트, 인도, 네덜란드령 동인도(인도네시아), 태국을 거쳐 중국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러시아 함대와 함류한 니콜라이 황태자는 일본으로 이동한다.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한 니콜라이 황태자는 큐슈 일대를 돌아본뒤
일본 칸사이의 고베로 배를 타고 이동하여 거기서부터는 육로로 오사카를 거쳐서 교토로 향한다
사실 일본과 러시아의 갈등관계가 될만한 사안들은 적당히 타협봐서 해결된 상황이였고
일본은 서구 국가들에게 자기들도 동급임을 보이고 싶어서 안달난 상태였으며
황태자에게 잘 보여서 러시아가 어떠한 군사적 행동을 보이는것을 최대한 막고 싶어하였다
일본황족이 직접 니콜라이 황태자를 맞이해서 계속 수행을 하였고
니콜라이 황태자도 별 생각없이 그냥 일본 관광이나 즐기고자 하였다
이 당시 니콜라이 황태자의 사촌인 그리스 왕의 차남과 함께 교토 옆에 있다는 엄청나게 큰 호수 구경을 가기로 한다
(그리스 왕의 차남인 요르요스 왕자는 러시아에 머물고 있었는데 사촌인 니콜라이 황태자와 함께 아예 블라디보크토크까지 함께 동행하고자 해서 일본에도 함께 온것이다)
교토바로 옆에는 비와호라는 큰 호수가 있는데
니콜라이 황태자는 사촌인 그리스 왕자 요르요스 왕자 그리고 일본 황족인 아리스가와미야 다케히토 친왕과 인력거를 타고 비와호를 보러 간다
인력거를 타고 비와호 를 본 니콜라이 황태자일행은 일정을 마감하고 다시 교토로 돌아가고자
오쓰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
경비를 서고 있던 경찰 츠다 산조가 칼을 빼들고 니콜라이 황태자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니콜라이 황태자는 부상을 입고 인력거에서 내려서 근처의 골목으로 도망가고
그리스의 요르요스 왕자는 바로 자기가 가지고 있던 대나무 지팡이로 츠다 산조를 타격하면서 동시에 인력거꾼들도 요르요스 왕자에 합세해서 츠다 산조를 제압한다
결과적으로 황태자는 그리스 왕자와 인력거꾼들덕분에 살아났지만
일본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러시아의 황태자가 일본에서 암살당할뻔한 이 사건은 그 자체로 그냥 일본이 러시아에게 선전포고 당해도 이상할리가 없는 일인것이다
이에 메이지 천황이 바로 교토로 달려와서 문병안을 하고 극진히 대접하였으며
러시아 정부는 바로 모든 일정을 취소하게 하고 니콜라이 황태자를 러시아로 불러들인다
일본 전국에서는 러시아가 일본에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공포감이 엄습하여
일본 내각의 주요 각료들은 자진해서 사표쓰고 퇴진했으며
일본의 모든 절과 신사에서는 니콜라이 황태자의 무사 쾌차를 비는 기도를 올리고
전국민이 제발 니콜라이 황태자님 건강해지세요 하고 비는 상황이 된다
거기에 엄청난 수의 일본 국민들은 니콜라이 황태자에게 병문안 전보를 보냈으며
한 여성은 자신의 목숨으로서 니콜라이 황태자에게 사죄하겠다가 자살한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암살 미수범 쓰다 산조를 대역죄로 다스려야한다고 주장한다
19세기~1945년의 일본에서 대역죄라 하는것은 형법으로 규정된
황족에 대한 위해 또는 그런 시도를 처벌하는 법률이였는데
이는 사형에 처하는게 가능한 내용이였다
일본정부는 아무튼 사형을 시켜서 러시아에게 잘 보이고 싶었으므로
판사에게 아무튼 대역죄로 사형을 판결 하라고 요구했다
사실 무리가 있었지만. 당시 일본 형법상 진짜 죽인거면 모를까 미수는 최대 무기징역이였다
근데 일본 정부는 그걸 무시하고 아무튼 사형하라고 요구했고
판사는 서구사회에서 일본이 문명 국가로서 보여지긴 위해선 무조건 원칙대로 처리해야한다고 판단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당시 일본은 난리가 난 러시아 정부에게 사형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것이 실패해서 당황해 했으며 결국 방법은 러시아에게 비는것 이외엔 없었다
근데 니콜라이 황태자가 봤을때는 일본이 참 성의를 보이는게 느껴졌고
러시아 황실과 정부가 보기에도 저정도면 성의를 보이는거긴 하는걸로 느껴졌다
그래서 이 사건 역시 적당히 수습된다
니콜라이 황태자는 일정을 취소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 기공식에 참가했다고 한다.
ㄹㅇ 좆될뻔했네
그 와중에 제일 잘난건 요르요스였네 ㅋㅋㅋ - dc App
저러고 러일전쟁으로 이기노
그냥무기징역으로 살았나
감옥에서 몇달 뒤 죽은채로 발견됨.
그래서 오쓰 사건은 일본 사법사에서 꼭 등장하더라. 근대적인 사법권의 독립성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나라 박살날 위기에도 소신대로 무기징역 때린건 간지나긴 하노
판사가 멋지네
정부의 강압을 이기고 사형을 안내린 판사 저시대 아시아에 저런 나라 어디 있었나 일본이 전아시아를 정복한 이유가 있는거다 비슷한 사례로 김판응 사건이라고 있다 30년대인가 하숙집 주인하고 싸우다 열받아서 길거리에서 묻지마 살인 7명인가 죽인 조선인 사례인데 일본 사법사 최초로 죄인에 대한 정신감정을 실시하고 감옥이 아닌 정신병원 치료를 판결한 사건이다
돈만 있었으면 일본인 판사 송덕비라도 세웠을 양반이네 ㅅㅂ ㅋㅋㅋ 네이버 뉴스 댓글란으로 ㄲㅈ
황태자를 죽이려한거 =일본인 무기징역때린거 =일본인이라 별로 의미없는데 우수했으면 자기보다강한국가의 황족을죽이려고안했겠지...
판사 깡이 보통이 아니네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