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축구때문에 전쟁을 벌인 두 국가가 있음 엘살바도르랑 온두라스임 애초에 사이가 나빴지만 축구가 도화선에 불을 붙였고 이때문에 축구전쟁이라고 불리는 사건임.

1970년 월드컵 북중미 예선 준결승전 1차전에 온두라스는 홈에서 엘살바도르를 1대0으로 이김 이를 보고 빡친 한 엘살바도르 소녀 아멜리아 볼라뇨스가 있었음 아멜리아는 지 애비 권총으로 볼라뇨스를 총살해버렸고 엘살바도르 전 국민은 이 불행한 소녀를 추모하며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함 그 결과 엘살바도르의 홈경기에서는 엘살바도르가 3대0으로 이겼고 이번엔 온두라스 국민들이 열폭함

ㅈ됨을 감지한 피파는 3번째 경기를 멕시코로 옮겼고 이번에도 엘살바도르가 3대2로 이기면서 온두라스 국민 전체가 분노하게됨. 자연스럽게 이 분노는 온두라스에 일하러온 엘살바도르 국민들에게 향했고 결국 온두라스의 엘살바도르 노동자들은 처맞기 시작함

이를 절호의 기회로 여겼던 엘살바도르는 민간 여객기로 온두라스 공군기지에 폭격을 가하면서 1969년 7월 14일 엘살바도르 1만2천 육군의 대대적인 침공이 시작됨 처음에는 기습의 이점을 가져간 엘살바도르군이 우세했으나 점차 공군력이 우세하고 홈그라운드라는 이점이 있던 온두라스가 방어해내기 시작함 이때 온두라스 공군의 콜세어와 엘살바도르 공군의 머스탱이 교전하는 미 해군항공대와 공군의 교전을 보는듯한 광경이 벌어지기도 함

지 앞마당에서 저런꼴이 나는걸 참을수 없었던 미국은 닥치고 원래대로 돌아가셈을 시전했고 7월 18일 일단 정전선언은 했지만 엘살바도르군은 ㅈ까고 진격을 이어나감 이에 대응해 온두라스군도 엘살바도르의 6개 마을을 점령하며 버텼고 7월 20일 아폴로 11호 착륙생중계 시청을 위한 일시적 휴전 이후에도 지속적인 교전이 발생하다 7월 29일 엘살바도르군이 철수 선언을 하며 비로소 전쟁이 종결됨

이 전쟁의 여파로 농업국가였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경제가 씹창났고 내부 갈등이 심화되던 엘살바도르는 내전을 일으킴 온두라스 또한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서며 9년간 독재체제의 아래에 있게 됨

피파는 이 사건 이후 골득실과 다득점을 비롯한 여러 복잡한 규정들을 도입했고 축구 붙으면 군사충돌날거같은 국가끼리는 매칭을 잡아주지 않음(대표적으로 이스라엘은 아랍애들이랑 사이가 나빠서 유럽예선을 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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