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1년 정성공은 대만에 위치한 

네덜란드 VOC(동인도회사)의 질란디아 요새를 공격함. 


정성공은 질란디아 요새와 좁은 해협을 끼고 마주한,

네덜란드인이 Baxemboy라 부르는 해안가에 병력을 상륙시킴.

네덜란드측의 정성공 병력 집계는 정크선 수백 척에 2,5000명.


질란디아 요새의 수비군은 905명이었고, 

비전투원을 다 합쳐도 1800명이 되지 않았음.


보조 역할인 프로빈시아 요새의 주둔군도 고작 100여명.

즉 전투원을 다 합쳐도 천명을 간신히 넘길 정도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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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공느 정크선들을 이용해 프로빈시아, 질란디아를 봉쇄함.

질란디아 수비를 맡은 코예트Coyet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1. 고작 4척 뿐인 배로 수백척에 달하는 정크 포위망을 뚫고,

2. 프로빈시아 요새와 연결을 회복하는 한편, 

3. Baxemboy의 정성공 군대를 몰아낸다는 상당히 무리한 계획을 짬.


코예트가 가진 네 척의 배 중 

그나마 큰 것은 헥토르 뿐이었고, 

나머지 세 척의 배는 작은 편이었음. 


더군다나 그나마 큰 헥토르조차 유럽의 군용 함선조차 아녔고,

배수량 600톤으로 유럽에서는 갤리 취급 간신히 받을 작은 배.


그럼에도 코예트가 이러한 계획을 세웠다는 점,

수백 척의 정크에 2만 5천명의 병사가 탑승한 점을 보면,

정성공이 이끈 함대의 정크선들이 

얼마나 작았는지 대충 견적이 나올 것임.


5월 1일 코예트는 이 무리한 계획을 진행시킴.


헥토르를 포함한 3척은 Baxemboy에 상륙한

네덜란드 상륙군을 지원하다가, 

봉쇄망을 구축한 정성공 함대와 교전.

나머지 한 척은 혼란한 틈에 전장을 빠져나가

VOC 지부에 도움을 청하기로 되어 있었음.


교전은 예정대로 진행됨.


3척의 배들은 정크 수백대를 상대로 의외로 잘 싸움.

기함인 헥토르가 터져나갔지만 적에게 피해를 입혔고,

나머지 2척은 봉쇄선을 뚫고 일본으로 달아나는데 성공함.

도움을 구하러 떠난 작은 배도 예상대로 탈출에 성공.


그러나 육지의 상황은 좋지 않았음.

네덜란드 군대는 고작 240명으로 

4000명의 정성공 군대에 도전했고 패퇴했음.  

절반여가 죽고 절반여가 보트와 수영으로 살아돌아옴.


3일이 지나 5월 4일. 

물 부족을 알린 프로빈시아 요새가 정성공에게 항복함.

이제 질란디아 요새의 운명도 곧 결정날 것으로 보였음.


5월 24일. 정성공이 대규모 공격을 시작해옴. 

요새 근처에 포대를 두고 포격전을 벌이며,

수천 명 이상의 군대가 질란디아 성벽으로 접근해옴.


코예트는 이 상황에서 대담하게도 

적의 공격이 무질서하다고 판단하고,

정성공의 군대가 성벽 가까이에 올때를 기다려

일제히 개인화기와 화포로 발포함. 

정성공의 군대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근대적인 공성방식대로 병력을 축차투입해옴.


결과적으로 정성공군은 사망자가 수천명에 달했고,

포병대조차 결국 화포를 버리고 달아남. 


코예트는 얼마 되지 않는 요새 수비군 중에서

특공대를 조직해서 정성공군이 남기고 간 화포를 

모두 무력화시킴.(원문엔 사보타주)


직접 공격과 화포가 모두 무력화된 모습을 본 정성공은

2차, 3차 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질란디아 수비군에게 격파당함


Baxembay에의 무모한 공격 이후 

질란디아 요새에 남은 고작 800여명의 전투원들은

이들은 5월 한달 동안 2.5만의 정성공 군대를 상대로

괜찮은 전공을 기록하고 있었음.


이들의 고난은 앞으로 해를 넘겨 지속될 예정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