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각 세력의 이야기)

2부 (각 세력의 전략)

탈레반편:

(1) - 카카 압둘 칼리브(Kaka Abdul Khaliq)와 NOLAI 작전

(2) - 2008년경 칼리크(Khaliq) 휘하 탈레반의 전술

(3) - 칼리크군의 격파, TIMUS PREEM 작전

(4) - 헬기 혐오 빌런 라자크(Razaq)

(5) - IED 장인 로이 라라(Loy Lala)

(6) - IED 대마왕 무사 칼림(Musa Khalim)


ISAF(국제치안유지군)편:

(7) - 캐나다군의 "보안 계약"들과 비탈레반 군벌들

(8) - 이탈리아군과 터키군

(9) - 레드윙스 작전, 사령부 KIFC의 폐급들

(10) - 영국군, 미군, 네덜란드군, 기타 나토군들이 대한 인상

(11) - 제24미해병원정대(24 MEU)의 상남자들

(12) - 드론 작전의 현실

(13) - 캐나다군의 대IED 전차 전술


아프가니스탄 정부편:

(14) - 아프간인 람보

(15) - 셰렌 샤(Sheren Shah) 중령과 아프간 국방군의 문제점

(16) - 칸다하르의 군벌 압둘 라지크 중장(Lt. Gen. Abdul Razziq)

(17) - 아프간 경찰의 아편 빌런

(18) - 아프간군의 발전기 횡령 썰과 아프간 군/경의 높은 사상자 비율

(19) - 아프간 정부의 허위 전과 발표들 ("아프간 수학")

(20) - 아프간인들의 반(反)파키스탄 정서

(21) - 아프간 정부의 부정부패 上

(22) - 아프간 정부의 부정부패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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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完 : (23) -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총평

ISAF(국제치안유지군)의 전략편:

(24) - 카자키 댐(Kajaki Dam) 프로젝트와 미국 지원사업들의 실패 원인

(25) - 2008년 칸다하르에서 캐나다군의 전략과 ISAF 내부 전략적 협력과 조율의 실패

(26) - 장기적 전략 세우기의 실패 - 미국만 잘못한걸까?

(27) - Helmand에서 영국의 하트앤마인드 전략 실패 원인

(28) - 애초에 승리 불가능한 전쟁이었을까?

(29) - 아프간이 실제 필요했던 전략들 - 큰아이디어 v. 작은아이디어

(30) - 소련-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이 배운 점 - 왜 파키스탄을 공격하지 않았을까?

(31) - 병력 증강을 했거나 돈을 더 쏟아부었으면 이길 수 있었을까?

(32) - 사상자를 회피하려는 주의와 제한된 교전규칙들이 문제였을까?

(33) - 승리조건/전략목표가 모호했거나, 전략집중이 부족했던걸까?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전략편:

(34) - 아프가니스탄 민족주의의 결여가 문제였을까?

(35) - Bonn회담을 위한 시간과 준비의 부족

(36) - Bonn회담이 짧았던 이유

(37) - 중앙집권적 대통령제의 폐해

(38) - 아프간 전쟁과 Bonn회담에 네오콘들은 얼마나 영향을 끼쳤을까?

(39) - Bonn 회담에서 다른 선택지들이 무엇이 있었는가?

(40) - 전쟁 말기 정부의 보여주기식 전략

(41) - 정부측 전략이 미디어전에 집중한 원인과 문제점

(42) - 모히브와 살레 사이 전략방향성에 대한 내부 갈등과 모히브의 오판

(43) - 모두에게 무시당하는 카불 정부

(44) - 정부군이 주요 도시 방어에 실패한 원인

(45) - 장부에만 존재하는 "유령 병사" 문제가 야기한 결과

(46) -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의 실패와 그 원인 평가


탈레반의 전략편:

(47) - 선통치 후점령

(48) - 효과중심작전(EBO) 짤 속 탈레반의 전략 설명

(49) - 정치 지휘부는 연속성 유지, 야전 지휘부는 적자 생존

(50) - 탈레반 재정과 아편의 관계

(51) - 탈레반 재정과 희토류 광업의 관계

(52) - 탈레반 내부 단결과 병력 전문화

(53) - Helmand의 예시로 본 남부에서 탈레반의 존버 전략

(54) - Takhar의 예시로 본 북부에서 탈레반의 침투 전략과 큰 그림

(55) - 여건조성공격을 통한 전쟁 말기 탈레반의 도시 공략 작전술

(56) - 전쟁 말기 탈레반의 전략/행보에 대한 예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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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完 : (57) - 아프간 전쟁에서 우리는 어떻게 패배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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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 https://gall.dcinside.com/m/war/243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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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내용은 SpaceBattles Forums이란 영어권 SF/밀리테리 커뮤에서 IXJac이란 닉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어느 아프간 참전용사분의 썰을 번역한 것입니다.


해당 분은 캐나다 육군 예비역 하사로써 2008년, 그리고 2011-2012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셨습니다.


모든 번역은 IXJac님의 허가를 얻고 진행된것이며, 그 분의 요구에 따라 언제든지 수정 및 삭제가 될 수 있습니다.


웬만한 역주는 [숫자] 식으로 따로 밑에다 분리하였으나, 코멘트가 짧을 경우 본문 내에 그대로 [역주: 내용] 식으로 넣은 것도 있습니다.


전 전문 번역가가 아니기 때문에 오타나 문법적 오류들이 흔재할 수 있으며, 관용구나 직역이 의미가 불분명할때에는 상당한 수준의 의역이 활용되었습니다. 또한 지명은 발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애매한 경우가 너무 많아서 그냥 영어 원문 그대로 웬만하면 뒀습니다. 양해 부탁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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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21년 8월 30일에 작성된 내용입니다.


(원문글: https://forums.spacebattles.com/threads/what-could-have-changed-the-outcome-of-afghanistan-war-ongoing-discussion-of-the-military-aspects-of-the-war.959069/post-78440407 )


번역 :


미국의 지원 철수가 아프간군의 사기를 붕괴시켰다고 많은 분석가들이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최종적 요인 중 하나 일수도 있겠지만, 최전선에서의 보고서들은 항상 아프간군의 사기가 낮았음을 보여준다.


이의 큰 원인은 국방부의 항상 끔찍한 물류/병참 때문이었다. 아프간 병사들은 어떤 것도 확정적으로 보급 받을 수 없었다 - 급여, 음식, 연료, 탄약까지 전부. 보급품이 필요한 곳으로 도달하는 것을 막는, 맨 위부터 맨 아래까지의 만연한 부패가 지속적인 문제였다. 아프간 국군 부대들은 부실한 보급력으로 인해 매우 제한된 기간 동안만 병력을 전장에 투입할 수 있었으며 작전 기한도 수 일로 제한되었다. 수십 년간의 훈련과 복잡한 물류/병참 프로그램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간군의 전투 지원 능력은 개선 되지 않았다 - 이는 SIGAR의 보고서에서 연도마다 자세히 설명된 되어있다. 2021년에 상황이 2011년 만큼, 오히려 더 나쁠 정도였다. 나는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이것이 아프간군의 붕괴에 기여한 것이라고 믿는다. 부실한 보급으로 인해 버려진 느낌만큼 병사들의 사기를 더 훼손시키는 것은 없다.


반면에 탈레반은 2001년 아무것도 없던 상황에서 맨 땅에 헤딩을 하여, 궁극적으로 여러 전선을 횡단하는 공식적인 푸시/풀(Push/Pull) 시스템으로 진화한 매우 견고한 병참 체계를 구축했다.


반군 초기에는 지휘관들이 각자 알아서 자신의 보급품을 찾아야 했고 전투 지원은 굉장히 원시적이었으며 지역 자원 지원자와 밀수업자들에 의해 필요한 대로 비정기적으로 제공되었다. 전쟁 초기 전투들에서는 빈약한 병침이 반란군의 아킬레스 건이었고, 그래서 탈레반은 이를 확장하고 전문화시키기 위해 몇 년간의 집중 계획을 시행했다. 덕분에 그들은 전쟁에서의 병참적 이점을 얻게 되었다. 아래 내용은 Antonio Giustozzi의 "The Taliban at War, 2001-2018"의 내용을 크게 참고했다 (그가 2021년 판을 내놓을까 궁금하다) [1].


2015년까지 탈레반의 전투 지원/병참 조직은 세 가지의 명확한 단계로 발전했다. 가장 낮은 단계에서 탈레반 전투단들은 대부분 각 지역의 무급 지원자들의 네트워크에 의존했으며, 이들은 음식, 숙소 및 비전투적인 지원을 제공했다. 예를 들어, 가즈니에서는 약 4,000명의 지원자가 약 400명의 탈레반 전투병력을 지원했다. 그 다음 지원 단계는 주지사나 주 전투 지휘부와 함께 있었다. 이러한 지휘부 아래의 병력 중 약 6분의 1에서 5분의 1까지가 전투 지원/병참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슈라(Shura) 수준에서는 각 군사 위원회들이 통제하는 최고 수준의 전투 지원이 있었다. 4개의 위원회들이 있었으며, 각각 약 6,000명의 영구적인 전투 지원/병참부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탈레반의 병참 시스템은 무기와 탄약뿐만 아니라 담요, 코트, 부츠를 비롯한 겨울 의류를 포함시키도록 확장되었으며, 이를 통해 탈레반은 겨울에 더 오랬동안 더 큰 병력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고, 전투 기간을 연장시키며 결국 대부분의 주에서 연중 내내 작전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탈레반은 또한 약 4,000명의 의료 병사로 이루어진 전시 의료부대를 창시했으며, NGO에서 탈취하거나 직접 운영하는 병원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2015년에 Peshawar Shura는 대규모 공격 작전에 필요한 보급품을 2일만에 모아 보급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Quetta와 Mirah Shah는 더 조심스러웠으며, 그들은 그런 작전 준비에는 1~2주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2].


또한 탈레반은 수요와 요구 사항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국경으로부터 멀어 더 보급이 어려운 지역에 대해 더 큰 예산을 할당했다. 파키스탄의 배신에도 대비하여 상당한 량의 보급품들을 예비 창고에 축적했다. 전쟁 초기에는 거의 모든 보급품이 파키스탄에서 공급되었지만, 새로운 보급 경로를 개척하기 위한 힘든 노력 덕분에 서부 지역의 탈레반 병력은 이제 이란에서 필요한 물자의 점점 더 큰 비율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전반적인 전투 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보급품을 전선으로 푸시하는 것 외에도, 탈레반의 물류망은 다양한 지휘관들로부터 요청을 받고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이를 채우려고 노력했다. 하나의 공통된 요청은 중국이나 파키스탄의 무기보다 높은 품질로 여겨졌던 러시아 무기(주로 우즈베키스탄을 통해 공급되었다)를 더 원했다. 또한 MANPADS[역주: 보병 대공미사일]와 ATGMS[역주: 유도 대전차미사일]에 대한 지속적인 요청이 있었지만, 미국의 성공적인 (물리적 및 정치적인) 방해 노력으로 인해 탈레반은 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 시스템은 효율적이고 효과적이었지만, 예상대로 굉장히 비쌌으며, 2015년 기준으로 탈레반이 여기에 연간 약 3억 2,000만 달러를 사용하게 만들어 해당 병참 위원회들을 탈레반 내 두번째로 가장 비싼 조직으로 만들었다.


이 또한 부패에 면역이지는 않았지만, 탈레반은 놀랍도록 상당히 포괄적인 영수증 및 무기 등록 시스템을 운영했다. 모든 무기는 현지 지휘관과 연동되어 등록되었으며, 해당 지휘관들은 매 전투마다 손실된 무기들을 보고해야 했고, 군사 위원회 구성원들은 주기적으로 이 보고들이 실제 기록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며 직접 검사를 진행했다. 어느 한 사례를 보자면, 한때 탈레반은 칸다하르에서 그들이 이미 구매하고 등록한 무기들을 암시장에서 다시 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해당 암시장 거래자들을 심문하여 그들은 칸다하르 병참 위원회장이 범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당 병참 위원장과 공범들은 체포되어 탈레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모든 훔친 무기를 돌려주지 않은 자들에게는 사형이, 돌려주는 자들에게는 징역이 내려졌다.


탈레반은 또한 정기적인 감찰을 통해 지휘관들이 실제로 자신이 보고한 병력 수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했고, 탈레반의 첩보부 중 일부는 휘하 병력들이 상부로 보고되는 것이 사실인지 내부적으로 검증하는데 투입되었다. 시스템을 속이는 지휘관들은 엄한 징계에 직면했다. 이런 방식으로 탈레반은 아프간 국방군을 불구로 만든 "유령 병사" 문제를 최소화했다. 결과적으로 탈레반 고위 지도자들은 자신들 본인의 힘에 대해 아프간 국방군이 자신의 힘에 대해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명확한 그림을 가지고 있었다.


2020년과 2021년에 우리는 이 물류/병참적 우위의 영향을 번번이 보았다. 탈레반은 아프간 전체에 걸쳐 여러 대규모 공세들을 지속시킬 수 있었고, 아프간 국군을 핑 돌게 하는 속도로 새로운 공세를 생성하는 능력을 보였다. 그들은 약 17개 도시를 최대 2개월 동안 포위하여 유지할 수 있었으며, 가끔 반격이 있었지만 이 포위 중 하나도 해제하도록 강요받지 않았다. 그들은 압도적인 공세 병력을 아프간 반대편 멀리 있는 곳으로 밀어넣어 헤라트를 짓밟기 위해 사용했으며, 해당 전투에서도 시작부터 끝까지 종합적인 우위를 즐겨 이겼다. 매 전투마다 그들은 방어 중인 아프간군의 탄약을 다 소진시켜 간단히 승리할 수 있었다. 공중 지원이 탈레반의 완전한 승리를 방지했을 때도 그들의 우수한 물류/병참 덕분에 아프간 정부군이 강제로 스스로 포기할 때 까지 해당 지역을 계속 공격했다. 그리고 공중 지원의 효과가 줄어들자 직접 전투에서 이러한 병참적 우위는 탈레반에게 일관적으로 승리를 가져다 주는 버튼이 되었다.


결국 아프간 국방군은 전투능력을 상실했지만, 이것은 탈레반이 현장에서 더 큰 병력을 운용하고, 더 빨리 더 먼 거리로 이동시키며, 더 오래 지속시킬 능력을 반복적으로 입증한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프간 국방부는 결국 이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아프간 국방부가 별수 있었겠는가? NATO가 물류/병참 책임을 아프간 정부에게 이양하려고 할 때마다 해당 시도는 부패와 뒷거래에 빠진 암덩어리가 되었다. 아프간 국방군은 병참에서 기본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으며, 전국적인 탈레반 공세가 그들을 짓밟을 때에도 이 수준에 머물렀다.


전장에서 대군을 보급하기 위한 효과적인 병참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수 년이 걸리는 작업이며, 아프간 정부군은 그동안 자기 과시만을 하며 시간을 낭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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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23년 5월 11일에 작성된 내용입니다.


(원문글: https://forums.spacebattles.com/threads/war-room-questions-thread.406897/post-92386713 )


번역 :


> (대충 탈레반에게 병기를 보급하던 주체들이 누구였는지 물어보는 내용)


파키스탄이 당연히 비중이 크지만, 탈레반은 다양한 무기 공급원을 가지고 있었다.


반란 초기에 주 무기 공급원은 파키스탄이었지만, 탈레반은 이것이 그들의 취약점이란 것을 깨달았다. 아프간 탈레반은 ISI의[3] 기분 변화에 의존적이지 않게 별개로 파키스탄의 무기 암시장에서 파키스탄 탈레반(TTP - 관련되지만 별개의 조직)과 경쟁하고 있었다. TTP가 파키스탄 부족 지역에서 자신들만의 반란을 확장함에 따라 무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자,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본인들의 병력을 보급하기 위해 점점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탈레반은 공급처를 다변화시켰다. 아프가니스탄은 항상 중앙 아시아 밀수 루트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돈만 있다면 어디서든 무기를 구할 수 있었다. 탈레반은 러시아제 무기가 파키스탄이나 중국의 것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러시아와 '스탄 지역들은 선호되는 공급원이었다. 또한 2014년 이후 ISIS의 등장으로 이란 또한 공급량을 늘리며 새로운 공급원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항상 국내 공급원들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원래 무기로 넘쳐나지만, 탈레반의 최고 공급원 중 하나는 아프간 군대와 경찰력이었다. 부패한 장교와 병사들은 항상 무기와 탄약의 공급원으로 믿을 수 있었으며, 2021년 붕괴로 미국의 무기를 대량으로 얻게 되기 전에도 이들은 탈레반에게 무기를 공급했다.


탈레반은 또한 자체 무기를 추적하는 효과적인 행정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으며, 내부 부패를 제거할 수 있게 했다. 예시로 한 지휘관이 자신에게 지급된 무기를 암시장에 되팔았는데, 탈레반 당국자들은 그들이 암시장에서 새로 구입한 무기들의 일렬번호가 전에 그들이 지휘관에게 공급했던 일렬번호와 일치하는 것을 깨달았다. 이 지휘관은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무기를 모두 잃어버렸다 하며 더 많은 무기를 요청했다. 그는 공개적으로 심판을 받아 다른 이들을 위한 좋은 사례가 되었다.


전쟁 동안 ISAF/RSM은 탈레반이 현대적 MANPADS와 ATGMS와 같은 무기들을 취득하는 것을 막는데는 성공적이었지만, 소화기와 경량 무기 및 폭발물의 공급을 의미 있게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전쟁이 끝날 시점에 이미 매우 부유한 반란군이 되었던 탈레반은 다양한 공급원에서 필요한 무기와 탄약을 대량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 이로써 미군의 철수로 인해 아프간 국방군의 병참 체계가 붕괴하는 동안 탈레반은 아프간 전체에 걸쳐진 다중 축 공세를 보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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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당 서적은 실제로 2022년 제목을 "The Taliban at War, 2001-2021" 을 바꿔 새로운 판본을 내놨습니다.


[2] Peshawar Shura, Quetta Shura, Mirah Shah Shura는 각자 탈레반의 북동부, 남서부, 남동부를 담당하는 지역 군사 지휘부입니다.


[3] https://en.wikipedia.org/wiki/Inter-Services_Intelligence Inter-Services Intelligence. 파키스탄 정보부의 약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