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1950년 당시 남한과 북한의 인/구를 비교해보자.
1950년대 북한의 인/구는 보통 1천만 명 정도로 봄.
이 인/구에서 북한은 중국에서 재중한인으로 구성된 3개 사단을 지원 받아가며 대략 20~25만을 동원해 남침함. 전후 남한이 인구 5천만에서 60~70만을 동원한 걸 감안하면 거의 영끌해서 징집한 셈임.
이 병력을 이끌고 적어도 금강을 넘어갈 때만 해도 큰 문제가 없었음. 문제는 그 다음이었음.
??? : 어서 와, 낙동강은 처음이지?
??? : 야 이 빨갱이 노무 시키야. 너희들 꼼짝말고 있어! 내가 지금 미8군 끌고 가서 니 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 버리겠어.
인민군이 남하하다 낙동강을 기점으로 진격이 돈좌되고 공세종말점에 도달하면서 끔찍한 소모전에 휘말리면서 북한 지역에서 징집한 병력은 대부분 소모됨.
남한은 낙동강 전선으로 밀린 후 영남 지역을 기반으로 미친 듯이 징집해서 병력을 보충했다면 북한은 이미 기존의 북한 지역 병력 자원을 영끌했기 때문에 기존 병력 중 지원 병과 병력을 차출해서 전선에 투입했지만 이걸로는 언발의 오줌 누기 수준이었음.
이 때 등장하는 게 한국전쟁 개전 직후 북한에서 발포한 총동원령이었음.
이걸 법적 근거로 북한은 남한 점령 지원 내 남성들을 인민의용군이란 이름으로 사실상 징집하게 됨.
이렇게 징집한 인민의용군은 최소 10만에서 최대 40만을 징집한 걸로 추정됨. 이들은 영남 지역에서 징집한 국군에 못지 않게 날림으로 훈련을 시킨 후 바로 전선에 투입해서 소모됨.
이들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징집된 만큼 애초에 신뢰하기 어려운 자원들이었고 탈영도 많았고 크로마이트 작전 이후 남하한 인민군 대열이 붕괴된 후 후퇴하면서 포로로 잡힌 경우가 많아서 1953년 포로 송환 협상 시 문제가 된 반공포로 중 상당수가 이들이었음.
그래서 38선 돌파 이후 인민군은 사실상 조직적인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고 중국의 개입에 따른 인민지원군의 투입 이후로 인민군은 몇몇 국지적인 전선에서 활동하는 몇몇 사단 병력을 제외하면 개전 초기의 위용은 회복을 못했음.
그 결과는 파멸적이었음.
처음에 본 인/구 추계임.
1955년 통계를 보면 남한은 그 와중에도 인구가 증가했는데 북한은 감소한 걸로 나타남.
인/구성장률로 치면 남한은 후방에서 출생을 하든 북한 피란민이든 증가세인데 북한은 아예 마이너스를 찍어버림.
사망률을 비교해도 북한이 훨씬 높게 나타남. 결국 1950년 북한의 인/구 감소는 피란+전쟁으로 인한 사상이 원인이라 볼 수 있음.
성비도 마치 독소전쟁 이후 소련 마냥 곤두박질치는 모습도 볼 수 있음. 사실상 전쟁으로 남자들 씨가 마른 모습을 볼 수 있음.
결론 :
어떤 미친 호전광 하나 때문에 나라 하나가 얻은 거 없이 나락으로 감.
참고:
인천상륙작전으로 급히 퇴각하면서도 공산당은 남쪽에서 강제징집한 인원으로 6개 사단을 재편성할 것을 지시했음. 이때문에 그 바쁜 퇴각 와중에 북괴군은 점령지에서 젊은 남성들을 닥치는대로 잡아 끌고 가버렸음. 이때 엄청난 규모의 납북자가 발생해버렸음.
포로교환 협상할때도 북괴는 전쟁으로 젊은 남성들을 대거 잃어버려 노동인구가 크게 부족했기 때문에 국군 포로 상당수를 포로 명단에서 누락시켜 북한에 억류시켜 노예로 부려먹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