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경제를 구성하기 위해서 국가가 나서서 무기 또는 군수품 생산을 위한 생산자원(생산수단, 인력 등등)의 구성과 배치, 생산품의 분배 우선 순위 결정 및 분배 구조의 개편, 이를 뒷받침할 각종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결정해야 하는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함.
2차세계대전 참전 국가들을 보면 그걸 본궤도에 올리는 데에 최소 3년 이상의 세월을 보내야 했음.
미국의 경우 2차에 걸친 뉴딜 정책과 1939년 2차대전 참전을 지켜 보며 무기대여법을 바탕으로 전쟁을 위한 전환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1943년 초반은 되어야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 병기창의 마르지 않을 거 같은 샘물을 완성하게 됨.
소련의 경우에는 모든 것을 국가 또는 당이 결정할 수 있음에도 직전에 있었던 중공업화 5개년 계획과 홀로도모르, 대숙청의 후유증 속에서 전쟁을 맞이해야 했고 우랄트란스마쉬로 대표되는 우랄 산맥 서부 지역으로의 플랜트 이전이 완료되고 각 공장별 케파와 수율이 안정화되기 전까지 무기 부족을 견뎌내야 했음.
물론 서방 연합국으로부터 무기 수입을 했지만 대서양에서의 손실과 북해-바렌츠해에서의 손실을 견디고 수령하는 물량은 전체 소련군의 필요량에 비하면 너무 적었고 1943년 성채 작전 전후로는 T-34-76에서 T-34-85로의 생산 라인 전환 및 증설 과정에서 중형 전차 생산 케파 전체가 떨어지면서 일시적인 대규모 전차 부족 사태를 경험했음.
이 때문에 성채 작전 당시 근위전차사단마저 T-34로 완편 못하고 T-34에 T-70을 비롯한 함량 미달의 경전차와 혼성편성할 수 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성채 작전에서 전략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전술적으로는 큰 피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제공했음.
독일의 경우에는 1933년부터 재무장 선언을 한 후 수정의 밤과 같은 온갖 합법적, 불법적 방법을 동원하여 주요 산업종별 콘체른(가령 철강의 크루프, 화학의 이게 파르벤)을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개편하는 동시에 플랜트 건설에 착수한 상황이었음. 문제는 이 작업을 마무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 권력자의 벼랑끝 전술 끝에 예기치 못한 개전을 1939년에 맞이했단 점이었음. 독일이 1939년 개전 이후 완전한 총력전 체제로 전환을 안했다고 말한 경우도 있었는데 실질적으로 준비 부족으로 못했다고 보는 게 맞음.
결국 1943년 스탈린그라드 전투 종료 직후 있었던 괴벨스의 총력전 선언은 다르게 말하면 그제서야 독일의 전시경제 체제가 본궤도에 올랐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었음. 실제로 독일 무기 생산량의 정점은 1943년~1944년간에 달성했음.
그러니 우크라이나가 전시경제를 선언했다는 건 두 가지 의미 중 하나일 거임.
1. 이제 전시경제 체제에 돌입했다.
2. 이제 전시경제로 개편할 준비를 마쳤다.
둘 중에 어떤 것이라도 이상한 건 아님. 우크라이나의 국가 전체의 역량을 고려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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