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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국은 망했지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남습니다. 이번 글에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뤄보자고 합니다.
동프로이센. 과거 호엔촐레른 왕가로 대표되는, 독일을 통일했던 주체인 프로이센의 정신적 고향이자 독일의 또다른 중심지였던 곳입니다.
동부전선이 거의 붕괴하다시피 한 그때, 그곳은 미친듯이 밀고들어오는 소련군에 의해 포위되어있었죠. 베를린이 이미 함락당한 상황에서, 동프로이센을 지켜낼 가망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야전을 벌일 야전군도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고, 기동방어를 할 기동부대도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 동프로이센은 소련군을 피해 들어온 피난민들로 가득했죠. 그 이유요? 뭐, 간단했습니다. 죽기 싫으니까요. 적어도 죽음의 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었던겁니다.
소련군은 그들의 조국에서 독일군이 무슨짓을 했는지 똑똑히 보았고, 복수심에 미쳐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복수심은 전쟁범죄를 낳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네멜스도르프 학살을 들수 있죠. 소련군의 대표적인 집단적 전쟁 범죄 행위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는 나치당의 프로파간다 덕분에 당대 독일인 모두가 잘 알고 있었죠.
자신들이 동부전선에서 어떤짓을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었으며, 이것은 그저 업보일뿐임을 동프로이센군의 독일군 대부분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발악했습니다.
이미 수많은 난민들이 대피한 상황이었습니다만, 그래도 무려 400만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아직 동프로이센에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군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독일군의 찌꺼기는, 이들을 지키기위해 눈물겨운 분투를 벌이기 시작합니다.
동프로이센 근교의 소련군 사단은 수십개. 직접적으로 공격을 해오는 전선군만 해도 3개. 합하자면, 170만으로, 거의 이백만이었죠.
네, 확실히 감당하는것은 불가능한 숫자였습니다.
비록 '그 게임'때문에 꽤 유명해진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부터 카이저가 제국을 지배하던 시절에 뽑혀나온 구식 야포까지, 모든 포병세력을 동원하여 독일군은 방어작전을 실시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44년 10월부터 시작된 메멜 공방전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둔 이반 바그랴만 대장이 지휘하는 제1벨라루스 전선군은 동프로이센 북부로 밀고오며 두들겨 대기 시작했으며,
이반 체리냐코프스키 대장이 지휘하는 제3벨라루스 전선군은 동프로이센 남부를 맡아, 독일 국방군의 잔해를 쓸어버리기 시작했고,
콘스탄틴 로코소프스키 원수가 지휘하는 제2벨라루스 전선군은 단치히 회랑에 대한 공세를 개시, 서쪽으로 난 마지막 육로를 틀어막았습니다. 1월 23일까지 이어지던 육로를 통한 탈출은 엘빙시가 이들에 의해 점령되면서 끝나게 되었죠.
이들에게 독일인들이, 그들의 이웃의, 부모의, 자식의, 연인의, 친우의, 그리고 조국의 원수들인 독일인들이 안전한 서방연합국의 점령지로 탈출하게 놔둘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자우켄 장군과 라쉬 장군 이하 70개 사단의 독일군이 시간을 버는동안, 민간인들은 꾸역꾸역 탈출했습니다. 수십만의 피난민이 고텐하펜항과 단치히항을 통해 서쪽으로 탈출했죠. 동프로이센 대관구지휘자이던 - 그러니까, 나치당 고위 당원입니다 - 에리히 코흐는 게거품을 물며, 히틀러가 내린 '모두가 전투병'명령을 언급하며 시민들의 탈출에 반발했지만,
이미 역사의 찌끄라기가 되어버린 나치새끼의 말을 누가 듣겠습니까? 그것도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요. 난민들은 이미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엘빙이 함락된 1월 23일, 되니츠 제독은 발트 함대에 탈출 작전 명령을 하달했으며, 그 명령을 받아든 발트 함대는 한니발 작전을 개시, 동원가능한 모든 함선들을 동프로이센으로 파견했으며,
난민들은 마지막 희망이었던 해로로, 서쪽을 향한 탈출을 이어갔습니다.
거기에, 또, 소련 육군이 있었습니다. 잠수함대가 막아서는 역할이었다면, 육군은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열세. 분투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단치히가 함락당했고, 고텐하펜항과 노이파르서항이 함락되었습니다. 너덜너덜해진 독일군은 남은 몇뙈기의 땅덩이로 철수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건 헬라항뿐. 희망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지만, 아직도 기백만에 달하는 민간인과 30만에 달하는 부상병이 남아있었고, 독일군은 그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최후의 희망이 남아있는 비스툴라만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45년 5월, 베를린은 함락되었으며, 히틀러는 자살했습니다. 동프로이센 역시 함락 일보 직전이었지요. 패전이 그야말로 눈앞에 다가와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플렌스부르크에 있는 독일 정부 수반인 칼 되니츠 원수는 포기하지 않고 프로이센의 민간인들을 구하기위해 노력했습니다. 되니츠는 서방연합국에게 민간인들의 탈출을 위해 소련과의 전투를 지속할것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서방연합국은 거절했습니다. 그들이 내놓은 조건은, '무조건 항복. 아니면 궤멸'이었죠.
상황이 이렇게 되자 되니츠 원수는 최후의 명령을 내립니다. 독일에 남은 모든 함선을, 물에 뜰수 있는거라면 뭐든 싹싹 긁어모아 동프로이센으로 향해 민간인들을 구해오라고요.
해군 최고사령부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빈약한 연료 비축분을 풀었습니다. 이조차 모자랐는지 최후의 독일 잠수함 선단의 연료까지 빼서 풀었죠. 이용 가능한 모든 석유 엔진 선박들은 독일의 최후의 연료나 다름없는것을 받아들고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몇일간의 항해 끝에, 최후의 선단이 헬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셀수없는 나룻배들이 그 뒤를 이어 도착했죠. 과거 됭케르크 탈출당시 영국군을 태운 선단을 연상시키는 구성이었죠. 아이러니컬하다면 아이러니컬한 모습이었습니다. 항복 직전인 5월 5일과 6일의 일이었습니다.
야영중이던 잔류병들과 피난민들은 배를 타기위해 우르르 몰려나갔습니다. 포위망 안의 최고 지휘관인 디트리히 폰 자우켄 대장은 질서를 유지하기위해 노력했으나, 역 부족이었죠.
그럼에도 불구, 헬라 항에 모인 함선들은 최대한 피난민들과 부상병들을 태우고자 노력하였습니다. 5월 7일, 황혼무렵에 태울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태운 선단은 이제 킬 항과 코펜하겐 항으로 가망없는 탈출을 시작하였습니다.
온갖 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수km나 이어진 선단이 바다로 나아갔습니다. 예인선, 해상기중기선, 소형증기선, 나룻배, 활어선 등등... 동력이 없어 앞의 배에 끌려가는 배도 있었죠.
소련군의 항공기와 날씨의 궁합으로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으나, 민군을 합쳐 140만여명은 마침내 탈출에 성공하였습니다. 기적이라면 기적이죠. 독일이 항복하는 그 순간에도 탈출은 이어졌습니다. 그 와중에 포위망 안에 남은 70여개 사단의 독일군은 50만이 넘는 사상자를 내며 버텼습니다. 독일이 항복한 5월 8일에도 그들은 전쟁이 끝났고 독일군은 항복했음을 알았지만, 피난민들의 탈출을 위해 전투를 이어 나갔으며, 5월 10일에야 항복하게 됩니다. 최후의 항복의 순간에 남아있던 독일군은 5만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희생으로, 수백만의 피난민과 부상병들은 서방연합국의 손이 닿는 안전한곳으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배에 타지 못한 피난민들은 복수심에 불타는 소련군에 붙잡혀 온갖 고초를 겪고 죽거나 자신들의 고향에서 쫓겨났으며, 탈출에 성공한 피난민들 역시 모두가 영구적으로 고향을 잃었습니다. 최후까지 싸우다 항복한 5만의 군인들 중에서도 오직 40%가량이 독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며, 나머지는 시베리아의 수용소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죠.
그리고 이 탈출작전의 배경이 되었던곳, 동프로이센도 그 이름을 잃어, 칼리닌그라드 주가 되었습니다.
동부전선에서의 온갖 악행은 그런 형식으로 돌아왔습니다. 기적과 업보의 씁쓸한 콜라보였죠.
여담.
탈출작전이 거의 끝난 5월의 동프로이센.
마지막으로 남은 현장책임자중 하나이던, 쇠퍼 대령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한무리의 남자들이 접근했습니다.
이들은, 동프로이센 지방에서 전통적으로 농사를 지어오던 농부들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촌부들. 아마도 그의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융커들의 소작농이었겠죠.
전쟁의 끝물에서야 징집되어, 군인들과 피난민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해주고, 짐을 나르거나 사람을 나르는 등의 허드렛일을 하던 사람들이었죠.
그들은 대령에게,
"대령님, 우리들은 몇주간 열심히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혹시 우리도 그 철십자 훈장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을까요?"
쇠퍼 대령은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잠깐동안요.
그리고 그는 철십자 훈장을 한움큼 집어왔습니다. 이제는 휴짓조각보다 못한, 6년전에 비해 질이 현격히 떨어진 그 훈장을 말이죠.
그는 촌부들에게 엄숙히 훈장을 달아주었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럼. 자네들은 충분히 받을 수 있지. 그래, 받을 수 있고 말고."




병신 낙지새끼들과 다른 최후의 머독일으 기사니뮤ㅠ
허
개추 - dc App
갑갤시절에도 본 거 같은데. 낙지가 병신인거랑 별개로 동프로이센 주민들 살려보려고 저런 건 좀 찡하드라
ㄴ갑갤시절 작성자가 본인이고, 고증 오류 몇 발견해서 누가 고친걸 또 내가 고증 오류 발견해서 고쳐서 올렸
저건 좀 찡하네잉ㅠ - dc App
깔깔깔 낙지 놈들 업보 치루는거 봐라
제 12군은 대단하긴 한듯
독일제국이 얼마나 많은 짓을 저질럿길레 저런 일을 하게되었나 싶습니다 그래도 소련은 너무하는 군요
독일군이 학살한 소련 민간인만 수천만명입니다. 독일은 이들을 확살하기 위해 자국군 보급을 일부 포기했습니다. 시체는 구덩이를 파놓고 거기에 시체를 던지고 불태웠습니다. 학살을 위한 강제수용소가 있는 도시는 시체가 타고 남은 재로 한가득이었습니다.
대독일국이 했던 짓 반만 돌려줘도 독일인 멸종하는데 왜 너무함
바로 전판에 양면전쟁해서 찌발려놓고 또 양면전쟁에 절멸전까지 해서 또 찌발린 독일국방군최고사령부의 병신력은 정말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는 건 공산주의자들의 특기다. 비무장선박들을 무차별 격침시키다니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또한 독일인에 대하여 무차별 강간령을 내린 스탈린 수뇌부 역시 인간들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다. 공산주의자=사탄
ㄴ공산주의자가 사탄이면 나치는 대체 무엇인지?
사탄따위는 좆간의 어두운 일면만을 담은 하찮은 좆간의 창작물에 불과하고 대독일국의 국민들은 좆간 그 자체
이런거볼때마다 sabaton hearts of iron 생각난다 - dc App
그러니까 나치 = 소련 이거지? 둘다 개새끼네 - dc App
답은 제1세계다 - dc App
나치독일이 동부전선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소련의 보복이라는 뒷일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짓거리를 많이 했지. 독소전쟁 개전 초반의 소련군 포로 학대나 마을 약탈 같은 거야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후의 군정의 가혹함. 파르티쟌 청소를 위해 마을 소각및 주민 학살은 기본적으로 항상 있던 일임. 얼마나 소련 민간인을 죽여댔는지 해골로 지층이 이루어진 곳이 많음.
그리고 나치 독일이 밀려서 후퇴하기 시작하니까 벨라루스 초토화작전처럼 그나마 남아있던 소련 민간인을 학살하고 마을을 불태우며 뭔가 쓸만한 것은 몽땅 파괴해서 폐허만 남기는 짓거리를 조직적으로 수행했음. 그러니 영토를 탈환하는 소련군이 보는 것은 불탄 폐허와 학살된 시체뿐. 눈알이 안뒤집히는게 이상한 거지. 바로 그런 꼴을 끽해야 한두달 전에 봤는데 독일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겠냐? 독일이 소련에게 한 짓 절반만 그대로 갚아도 독일인이 전멸한다는 소리가 그래서 나온거지.
덤으로 소련군도 병력이 모자라서 영토를 탈환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살아남은 민간인 생존자로부터 병력을 차출하는 거고, 독일군도 그거 알아서 후퇴시에는 최대한 점령지내에서 군복무 가능한 소련 민간인을 몽땅 독일쪽으로 끌고 가는게 일임. 따라서 독일 영토로 진격하는 소련군중 일부는 방금 전까지 독일에게 핍박받던 탈환지 주민이 포함되어 있지. 그러면 그 뒷일은 안봐도 블루레이고.
상황이 어떻든 간에 민간인은 건드리면 안되는거지 나치가 됐든 소련이 됐든 - dc App
독일에서 본문같은 이야기를 최근에야 어느 정도 자유롭게 이야기하지만 러시아보고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개진하지 않는 이유가 다 있는거지. 전후반성같은 것은 제껴놓더라도 본문의 문제로 도화선에 불 붙이면 소련에서 쏟아져나오는 독일군의 전쟁만행의 홍수를 감당하기 어렵거든. 그래서 그냥 조용하게 있는거다.
쯧쯧. 그건 현대에나 나오는 소리고. 나치가 온갖 만행을 저질러놓았는데 너는 참고 있어라 하는 소리가 통하는 시대가 절대 아님. 히틀러의 동부전선 전후 계획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치가 승리하면 소련인은 조그마한 마을에 분산시켜놓고 심심하면 독일 폭격기로 폭격해서 동물사냥하듯이 스트레스 날리면서 죽일 계획이었음. 동부전선에서는 나치는 소련인 절멸전쟁을 수행하고 있었고 스스로를 반공십자군이라고 생각했으니 그 댓가를 받는건 정당하지.
이걸로 영화 만들어도 재밌겠다
당시 연합군도 이쪽 문제를 가지고 충분히 소련을 걸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다들 형식적인 언급 정도만 가볍게 하고 넘어갔음. 그만큼 대악마 집단인 나치를 두들겨잡는게 우선이기도 했거니와 이쪽 문제를 거론하면 아직 남아있는 나치가 피해자 코스프레 하면서 다시 조금씩 기어나와서 부활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전후에도 별로 따지지 않은거고.
아직도 슬라브놈들을 인간 취급하다니 정말 놀랍다
저건 진짜 나찌독일 업보지 - dc App
민간인한테 개짓거리하는데 업보고 나발이고가 어딧음
업보 그 자체. 찡하긴 하다만
길게 생각할 것 없이 피는 피로 값는다고 소련과 독일이 서로 희생자 비교하면 독일이 압도적으로 불리함. 독일이 입었다는 모든 손해 숫자 따위는 소련이 1941년도에 입은 손해를 넘을 수 없음. 그러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냐고? 지금 생존한 독일인중 무작위로 한 천만명 살해당해야 간신히 비슷해질 거다. 사망자만 해도 이 지경인데 부상자, 강간피해자 합치면 독일 내에서 소련의 피의 보복 안받을 사람이 드물지. 솔직히 말해서 본문 정도로 퉁친게 복받은 것임.
게다가 독일은 소련에게만 피해준게 아니잖음. 폴란드라는 그 쪽 방면에서는 만만치 않은 채권자가 기다리고 있고, 체코슬로바키아라는 상당한 수준의 채권자도 있음. 유고슬라비아는 말할것도 없이 채권자지. 서유럽 빼고 동유럽만 따져도 피값받아야 할 채권자가 수두룩한데다가 전부 독일이 선빵친 경우임. 이쯤가면 독일인중 살아남을 사람이 드물지. 괜히 독일이 자기네들 피해에 입다물고 있는게 아님. 하나씩 까보면 독일이 엄청나게 불리해지거든.
슬라브새끼들은 빨갱이니까 인간이 아니야 뒤져도 되잖아? 하지만 게르만족은 사람이지.
슬라브는 뒤져도 되~
ㄴ제정 러시아인 : ? 폴란드인: ?
낙지놈들도 민간인 조지게 죽였자너
저 당시 독일인 민간인 뒤졌다고 해도 걔들이 아이히만1 마이어1 인데 뭐가 문제죠? ㅎㅎ
솔직히 이런 글들 볼 때마다 베어마흐트는 다르다며 거품물던 독뽕 분들 떠올라서 별로임
상대가 혈통 다르다고 가스실 보내고 목매달고 생매장을 하는데 그 수가 천만을 넘겨. 누구라도 당한다면 절멸시키고 싶어하지 않을까?
뿌린대로 거둔거지 - dc App
솔찌 나라도 북한군한테 갑자기 나라 싹밀려서 살던곳 다 씹창나서 친구고 가족이고 뭐고 다 뒤져버리면 개빡쳐서 북한군 민간인이던 퇴각하는 부상병이던 걍 죽여버릴듯
2대0의 이차대전사에서 본글같은데
ㄴ 나름 유명한 에피소드니까 당연히 올라오지 않겠누...
여기서 나오는 메멜이 잊혀진 병사들이란 회고록에서 나오는 장소맞나? 되게 인상깊게 본 장면인데 고참병의 최후라거나 독일 해군의 함포사격으로 밀려오는 소련군을 겨우겨우 막는 장면들이 아직도 기억남 고등학교때 읽은 책인데도
생각해보면 그 책에 주인공도 이런 지옥속에서도 살아남았으니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실감이 되네
죽은 소련인들 2인당 독일인 한명씩 죽여도 독일인 멸종되는데 너무하긴 쥐뿔 Gong-Lyong SEX
저거보고 열등한 쏘-련넘들이 너무했다고 하는 새끼는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