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초기 조선 군인과 백성들뿐만 아니라 선조에게도 조총은 ‘공포의 신무기’였다. 올라오는 전황보고서마다 ‘조총의 예봉을 꺾지 못해 우리 군대가 패했다’는 말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탐구심이 강했던 선조는 직접 조총 만드는 일을 진두지휘했다. 물밀 듯 밀려오는 왜군에 놀라 의주까지 파천(播遷)을 해야 했던 선조는 이후 한양으로 돌아와 전쟁을 진두지휘하면서 조총 만들기에 ‘올인’한다. 전쟁 발발 1년이 채 안된 선조26년(1593년) 2월10일 선조는 중국사람 중에 조총과 화약 제조에 능한 사람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전문가를 보내 제조법을 알아내라고 병조판서 이항복에게 은밀하게 지시했다.


한 달 후인 3월11일 선조는 승정원에 내린 분부를 통해 “조총 만드는 법은 이미 익혔으나 염초(焰硝-화약)굽는 법은 익히지 못했는데 마침 포로가 된 왜인 중에 염초굽는 법을 아는 자가 있다고 하니 죽이지 말고 장인(匠人)들을 데리고 가서 그것을 알아내도록 하라”고 명했다. 

이후에도 일본인 포로 중에서 조총이나 염초 제조법을 아는 사람이 있을 경우 우리나라 장인들이 배워서 익히도록 조치를 내렸다. 이어 7월14일에는 무과 시험을 볼 때 조총 사격을 포함시키라고 명한 것을 볼 때 어느 정도 조선판 조총이 제작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조의 조총 탐구는 마침내 11월12일 자신이 직접 신형 조총을 만드는 단계로 나아갔다. 


이 날 선조는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던 영의정 유성룡을 불러 자신이 개발한 조총을 보여준다. 기존의 조총은 화약을 넣은 시간이 길어 그 사이에 적의 화살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이 교대로 사격과 화약 장진을 할 수 있도록 ‘이런 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실록에는 ‘이런 총’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없다. 다만 “이런 총으로 한 사람은 사격을 하고 또 한 사람은 화약 장진을 할 경우 연속해서 사격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만 있다. 흥미로운 것은 실록의 사관이 선조의 이같은 무기연구를 노골적으로 폄하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총이 비록 적을 막는데 관계가 있는 것이긴 하지만 임금 자신이 무기의 정교함을 논한다는 것은 도리(道理)의 본말에 어두운 것이 아니겠는가?’ 사관의 이같은 관념주의에 동의하기 힘들다. 오히려 선조는 적의 첨단무기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 적과 대항하겠다는 지극히 실리적인 입장에서 조총을 직접 만드는 단계까지 나아갔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선조는 20일쯤 지난 윤11월2일 유성룡과 전황(戰況)을 점검하던 중 이런 말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습속이 글을 읽는 것만을 알고 군사를 몰라서, 문자를 알면 귀한 사람으로 여기고 궁시(弓矢-무기)를 지닌 자는 으레 천하게 여긴다. 그리고 적의 장기(長技)는 조총(鳥銃)뿐인데, 이것을 막을 물건이 없는가?” 

마치 훗날 자신의 조총 연구에 대해 사관들이 어떤 비판을 할지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들의 논리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발언으로 읽힌다.


12월2일 선조는 보다 흥미로운 지적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조총은 모두 거칠게 만들어서 쓸 수가 없다. 이제부터는 왜군의 정교한 조총을 준적(準的-모델)으로 삼아 철저하게 그것과 똑같이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각도별로 조총을 제작하라는 선조의 명은 제대로 먹혀들지도 않았다. 선조가 조총 만들기에 얼마나 열의를 쏟았는지는 이듬해(선조27년) 2월11일 병조판서 이덕형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상께서 조총에 대해 가르치자 사람들은 모두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웃었고 또 그 일을 천하고 비루하게 여겨 군인들조차 서로 피하기를 도모하였습니다. 상께서 특별히 권장하고 또 과거를 마련한 다음에야 양반들도 와서 배우는 자가 자못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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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류성룡 에게 전교하였다.

조총(鳥銃)은 천하에 신기한 무기인데 다만 화약을 장전하기가 쉽지 않아서 혹시라도 선(線)이 끊어지면 적의 화살에 맞아 죽게 될 것이다. 과인이 이를 염려하다가 우연히 이런 총을 만들었는데, 한 사람은 조종하여 쏘고 한 사람은 화약을 장전하여 돌려가면서 다시 넣는다면 탄환이 한없이 나가게 될 것이다다만 처음 만든 것이라 제작이 정교하지는 못하다. 지금 경(卿)에게 보내니 비치해 놓고 한번 웃기 바란다.”

【사관 : 옛부터 중흥(中興)한 임금들은 영웅(英雄)을 맞아 들이는 것과 민심을 기쁘게 하는 것을 급선무로 여겼고 무기를 정교하게 갖추기에는 구구히 마음쓰지 않았다. 조총이 적을 막는데 관계가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임금 자신이 무기의 공졸(工拙)을 논하게 된다면 도리의 본말(本末)에 어두운 일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천하에 위엄을 보이는 것은 병혁(兵革)으로 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오늘의 급무는 진실로 여기에 있지 않은데도 대신이 임금의 뜻에 아첨하여 그대로 순응하느라 묵묵히 한마디 말도 없었으니 통탄스럽구나. 】

ㅡ 《조선왕조실록》 선조 26년 (159311월 12일)



선조는 과연 뭘 만든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