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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름 뛰어난 정예군이 있다고 해도 병력이 지나치게 분산되어 있었다는 점임. 

아무리 북진을 포기하고 대게릴라 전에 치중한다고 해도 중요한 방어거점에 집중한다던가 그런게 이뤄져야 했는데, 그없.

당장 ARVN 레인저 50여개 대대만 해도 사분오열해서 대대단위로 땜빵하러 여기저기 불려다녔고, 2만여명의 ARVN 해병대 역시 한국 해병대나 미 해병대처럼 전략기동군으로써 취급받지 못하고 레인저들 그러듯이 대대단위로 찢어져서 흩어져 있었음. 타 부대들도 이런 사정은 비슷해서 사이공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쑤안록에서 월맹군 4군단 전체를 상대로 레인저/해병대대 몇개만 데리고 최후의 항전을 펼쳤던 18사단 역시 사단장 레민다오가 발악하면서 어떻게든 긁어모은 휘하 병력이 겨우 6천이었음. 표준 편제는 1만인데. 부대 배치가 이따위면 각개격파 당하는건 당연하고, 단급 제대들이 격돌하는 전면전에 대비가 되어있을리도 만무하지. 하위 부대들이 지역 전체에 찢어져 있어서 빼지도 못하는 상황에 대규모 훈련이 가당키나 했겠냐. 결국 월남이 애지중지 키운 ARVN 레인저 대대들은 전설은 만들어냈지만 승리는 쟁취하지 못했고, ARVN 해병대의 주력 역시 베트남 중부의 후에-다낭 지역에서 월맹군의 우회기동을 막지도 못하고 무력하게 대대단위로 1군단 섹터에 흩어져 있다가 그대로 포위당하며 나머지 1군단병들과 함께 몰살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