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주거 형편을 기록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보면 고려 때 이미 풍수지리설과 음양, 도참사상의 영향을 받은 주거 건축이 유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민거조(高麗圖經 民居條)에는 “송악의 지세는 평평하지 못하고 자갈과 산 도둑이 많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의 집은 마치 벌집이나 개미집같이 보였고 지붕은 띠풀로 이었는데 그 띠의 크기는 서까래 양쪽을 간신히 잇대어 놓은 정도였다. 다만 열 집에 한두 집 정도는 기와를 덮은 집도 있다.”라고 적혀 있어 일반 백성들의 집은 대다수가 보잘 것 없는 움집의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권28 와탑조(臥榻條)에 있는 주거 내부 생활에 관한 기록을 보면 “침상 앞에는 낮은 평상이 세 틀 놓여 있고 난간이 둘러 있으며 각각 무늬가 그려진 비단 보료가 깔려 있고 바닥에는 큰 자리가 놓여 있다.”라고 적혀 있어 귀족계급이나 왕궁에는 여전히 온돌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일반 백성들은 대부분 흙 침상을 만들고 땅을 파서 아궁이를 만들어 그 위에 눕는다.”라고 적힌 것으로 보아 역시 고구려 사람들의 장갱과 비슷한 채난방식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 고려 시대까지 평범한 백성들은 열악한 움집에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