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사실 멸망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음
당이 여러개의 야전군인 도행군이란 편제로 나누어서 요동과 압록수 평양을 동시에 공략하는 바람에 고구려가 대응을 전혀 못했고 요동쪽 병력이 수도를 지원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연개소문이 중앙에서 동원할 수 있는 최대치의 병력을 아들인 남생에게 줘서 압록수에서 당군이 내려오는걸 막으라고 했지만
결과는 그냥 대패였음 모든 방어선이 무너져서 평양성까지 포위당해서 고구려도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
철륵이란 나라가 그때 군사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662년에 멸망했을거 같음 아무리 생각해도 평양성 포위를 풀어낼 방법이 없어보임
이런거 보면 고구려가 남진하려고 똥꼬쇼 한게 이해됨 저때 당나라때 투사력을 호왈 감안해서 보더라도 이후 한반도 남부까지 세력 투사한 명군이랑 비교하면 그 투사력 차이가 존나 나더라
타임라인을 보면 연남생 이후에 연개소문이 소정방과 계필하력의 합동 공세를 한번 깬 다음 12월부터 말려죽이기 들어갔다고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