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은 막을 의지가 없어서 미드 오픈 해줬다고 알고 있었는데 요즘 보니까 막을 의지는 있었던거같은데
댓글 17
보안사 정보력 + 하나회 사조직을 이용한 하극상의 시너지효과
드루s(jyunlim)2023-12-01 14:10
그리고 영화에선 누가 하나회인지 다 오픈되어 나오는데 실제론 하나회 여부 파악 안 된 영관급 장교 제법 있었다고 하더라
넴미(mili01)2023-12-01 14:16
답글
어쨌든 탱크들 진입 못하게 막으면 됐던거 아님?
설마 피아식별도 안 될 정도로 혼란스러웠나
tidore(tdr3620)2023-12-01 14:19
1970년대의 수경사는 현대의 수방사같은 거대한 조직이 아님.
30경비단과 33경비단이라는 연대~여단급 전투단 2개를 중심으로 지원부대가 붙어있고, 그것들을 총괄하는 구조가 수도경비사령부였음.
전차대대 역시 이 두 경비단에 분산 배속되어 대대본부 1개 소대만 사령부에 있었고, 야전포병단은 김포에, 방공포병단은 서울시내 각 대공진지에 분산배치돼있음.
익명(nobabynowar)2023-12-01 14:43
답글
남은 유의미한 규모의 직할대는 헌병단 하나인데 요즘처럼 35특공이 딸려있는것도 아니라 사실상 사령부 수비대 수준 이상으로 운용이 힘듬
그리고 12.12당시 30경비단과 33경비단이 휘하에 배속된 전차부대까지 싹 들고 반란군에 붙어버렸으며 헌병단도 단장과 부단장이 모두 하나회였음.
익명(nobabynowar)2023-12-01 14:46
답글
휘하의 실질적인 전투부대가 전부 반란군에 넘어간 상황이니 수경사는 대전복작전/충정작전 상황시 수경사에 배속받게 되어있던 수기사와 26사단 지원을 기다릴수밖에 없었음
영화에서는 육본과 국방장관이 '신사협정'에 넘어간 사실을 중심으로 각색돼서 무능한 밥버러지로만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았음. 반군 1공수를 회군시킨건 육본의 명령이었고,
익명(nobabynowar)2023-12-01 14:49
답글
초기 행적으로 존나 까이는 국방장관조차도 가족 대피가 끝나자 마자 뒤늦게나마 육본에 돌아왔으며 합수부의 반란이라는데 동의하고 수기사와 26사단 출동에 동의했으며 타이밍이 그렇게 늦지도 않았음
근데 한미연합사, 정확히는 미8군이 이들의 동원에 동의하지 않아서 어그러지기 시작함.
사실 미군 입장에선 당연한건데, 미군에게 제일 중요한건 북괴의 남침 대비임.
익명(nobabynowar)2023-12-01 14:51
답글
한국군이 전부 뭉쳐서 맞서싸워도 북괴군에게 전력으로 열세하고, 주한미군이 붙어서 간신히 힘의 균형이 유지되던 시대임. 그런데 한국군이 반쪽나서 내전 직전의 상황에 가 있으니 전/평시작전권을 모두 가지고 한국 방위를 최우선으로 상정해야하는 주한미군 입장에서는 대북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을수가 없음.
반군은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라며 전방병력 무단 동원에 거리낌이
익명(nobabynowar)2023-12-01 14:53
답글
없었지만, 진압군은 '상식적으로' 북한을 경계하였으며 평시작전권을 가진 주한미군이 바로 그 북한 문제로 병력이동을 거부하고 있으니 실질적으로 동원 가능한 병력이 저 멀리 충청/경상/전라의 예비사단이나 공수여단들같은, 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 있는 일부 부대로 제한되어버림.
그리고 알다시피, 실질적으로 이날 밤 유의미한 전력이던 4개 공수여단중 3개가
익명(nobabynowar)2023-12-01 14:56
답글
반란군 부대였음.
여기서 아무리 변명하고 쉴드쳐주려고 해도 그럴수 없는 육본 진압군 수뇌부측의 실책인, 반군의 '<신사협정> 기만책'에 기만당하는 이야기가 나오는거임
실질적으로 서울 외곽에서 동원가능한 병력이 4개 공수여단뿐인 상황. 9공수만이 진압군에 남아있었지만 용케도 이들이 육본/국방부와 제일 가까이 주둔중이었음. 통행금지도 없던 시대라
익명(nobabynowar)2023-12-01 14:59
답글
그냥 악셀밟고 달려 오면 무조건 제일 먼저 도착함.
반란군도 그걸 알아서 먼저 1공수를 출동시켰는데 부대방악이 제대로 안돼서 육본 명령에 1공수가 회군을 해버렸던거고, 여기서 반군이 '신사협정 훼이크'를 걸고 그거에 육본측이 어이없이 넘어가버리면서 사실상 승패가 결정난거.
익명(nobabynowar)2023-12-01 15:01
답글
결국 진압군의 진압실패 요인은 '북한 남침 리스크 + 평시 작전권이 없던 당시 군 명령체계 + 반란군의 사조직 체계가 정식 명령체계를 대신함 + '신사협정' 훼이크에 속아넘어간 순진함'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음
익명(nobabynowar)2023-12-01 15:03
답글
첨언하자면, 만약 주한미군이 북괴의 남침리스크를 과대평가하지 않고 수기사/26사 출동을 승인했더라도 바로 출동하진 못했을거임. 두 부대 모두 사단 예하 보안부대와 하나회원들의 공작으로 심각할 정도의 사보타주가 들어가고 있었거든.
익명(nobabynowar)2023-12-01 15:07
답글
하지만, 하나회때문에 3군지사의 차량지원이 차단되어 여단 수송부로 1개 대대만 출동가능한 상태였던 9공수였지만, 그 9공수의 1개 대대만이라도 먼저 행주대교를 건너서 육본과 국방부를 수비하면서 13일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날이 밝을때까지 버틸수 있었다면 분명 전세역전의 여지는 충분했음.
진압군 상대하기도 바쁜 반군 입장에서 대통령과 내각의 반발을 무마할
익명(nobabynowar)2023-12-01 15:09
답글
명분도 마땅찮고, 합수부 반군에게 경찰 지휘권도 없는 마당에 이상을 감지하기 시작한 시민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도 장담할 수 없고, 사태가 장기화되면 필연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될 미 카터 행정부의 평소 '인권/민주주의 행보' 역시 주한미군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를 일이고...
9공수 서울 진입은 분명 진압군이 전열을 가다듬을때까지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카드
익명(nobabynowar)2023-12-01 15:10
답글
였고, 그 점에서 육본과 육참차장 윤성민 중장이 제일 중요한 결정적인 순간에 개병신짓을 한거임.
보안사 정보력 + 하나회 사조직을 이용한 하극상의 시너지효과
그리고 영화에선 누가 하나회인지 다 오픈되어 나오는데 실제론 하나회 여부 파악 안 된 영관급 장교 제법 있었다고 하더라
어쨌든 탱크들 진입 못하게 막으면 됐던거 아님? 설마 피아식별도 안 될 정도로 혼란스러웠나
1970년대의 수경사는 현대의 수방사같은 거대한 조직이 아님. 30경비단과 33경비단이라는 연대~여단급 전투단 2개를 중심으로 지원부대가 붙어있고, 그것들을 총괄하는 구조가 수도경비사령부였음. 전차대대 역시 이 두 경비단에 분산 배속되어 대대본부 1개 소대만 사령부에 있었고, 야전포병단은 김포에, 방공포병단은 서울시내 각 대공진지에 분산배치돼있음.
남은 유의미한 규모의 직할대는 헌병단 하나인데 요즘처럼 35특공이 딸려있는것도 아니라 사실상 사령부 수비대 수준 이상으로 운용이 힘듬 그리고 12.12당시 30경비단과 33경비단이 휘하에 배속된 전차부대까지 싹 들고 반란군에 붙어버렸으며 헌병단도 단장과 부단장이 모두 하나회였음.
휘하의 실질적인 전투부대가 전부 반란군에 넘어간 상황이니 수경사는 대전복작전/충정작전 상황시 수경사에 배속받게 되어있던 수기사와 26사단 지원을 기다릴수밖에 없었음 영화에서는 육본과 국방장관이 '신사협정'에 넘어간 사실을 중심으로 각색돼서 무능한 밥버러지로만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았음. 반군 1공수를 회군시킨건 육본의 명령이었고,
초기 행적으로 존나 까이는 국방장관조차도 가족 대피가 끝나자 마자 뒤늦게나마 육본에 돌아왔으며 합수부의 반란이라는데 동의하고 수기사와 26사단 출동에 동의했으며 타이밍이 그렇게 늦지도 않았음 근데 한미연합사, 정확히는 미8군이 이들의 동원에 동의하지 않아서 어그러지기 시작함. 사실 미군 입장에선 당연한건데, 미군에게 제일 중요한건 북괴의 남침 대비임.
한국군이 전부 뭉쳐서 맞서싸워도 북괴군에게 전력으로 열세하고, 주한미군이 붙어서 간신히 힘의 균형이 유지되던 시대임. 그런데 한국군이 반쪽나서 내전 직전의 상황에 가 있으니 전/평시작전권을 모두 가지고 한국 방위를 최우선으로 상정해야하는 주한미군 입장에서는 대북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을수가 없음. 반군은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라며 전방병력 무단 동원에 거리낌이
없었지만, 진압군은 '상식적으로' 북한을 경계하였으며 평시작전권을 가진 주한미군이 바로 그 북한 문제로 병력이동을 거부하고 있으니 실질적으로 동원 가능한 병력이 저 멀리 충청/경상/전라의 예비사단이나 공수여단들같은, 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 있는 일부 부대로 제한되어버림. 그리고 알다시피, 실질적으로 이날 밤 유의미한 전력이던 4개 공수여단중 3개가
반란군 부대였음. 여기서 아무리 변명하고 쉴드쳐주려고 해도 그럴수 없는 육본 진압군 수뇌부측의 실책인, 반군의 '<신사협정> 기만책'에 기만당하는 이야기가 나오는거임 실질적으로 서울 외곽에서 동원가능한 병력이 4개 공수여단뿐인 상황. 9공수만이 진압군에 남아있었지만 용케도 이들이 육본/국방부와 제일 가까이 주둔중이었음. 통행금지도 없던 시대라
그냥 악셀밟고 달려 오면 무조건 제일 먼저 도착함. 반란군도 그걸 알아서 먼저 1공수를 출동시켰는데 부대방악이 제대로 안돼서 육본 명령에 1공수가 회군을 해버렸던거고, 여기서 반군이 '신사협정 훼이크'를 걸고 그거에 육본측이 어이없이 넘어가버리면서 사실상 승패가 결정난거.
결국 진압군의 진압실패 요인은 '북한 남침 리스크 + 평시 작전권이 없던 당시 군 명령체계 + 반란군의 사조직 체계가 정식 명령체계를 대신함 + '신사협정' 훼이크에 속아넘어간 순진함'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음
첨언하자면, 만약 주한미군이 북괴의 남침리스크를 과대평가하지 않고 수기사/26사 출동을 승인했더라도 바로 출동하진 못했을거임. 두 부대 모두 사단 예하 보안부대와 하나회원들의 공작으로 심각할 정도의 사보타주가 들어가고 있었거든.
하지만, 하나회때문에 3군지사의 차량지원이 차단되어 여단 수송부로 1개 대대만 출동가능한 상태였던 9공수였지만, 그 9공수의 1개 대대만이라도 먼저 행주대교를 건너서 육본과 국방부를 수비하면서 13일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날이 밝을때까지 버틸수 있었다면 분명 전세역전의 여지는 충분했음. 진압군 상대하기도 바쁜 반군 입장에서 대통령과 내각의 반발을 무마할
명분도 마땅찮고, 합수부 반군에게 경찰 지휘권도 없는 마당에 이상을 감지하기 시작한 시민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도 장담할 수 없고, 사태가 장기화되면 필연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될 미 카터 행정부의 평소 '인권/민주주의 행보' 역시 주한미군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를 일이고... 9공수 서울 진입은 분명 진압군이 전열을 가다듬을때까지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카드
였고, 그 점에서 육본과 육참차장 윤성민 중장이 제일 중요한 결정적인 순간에 개병신짓을 한거임.
같은 국군에게 발포하기가 쉬울까? 더 강한 의지가 있는 군대가 이기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