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앞서서, 30년 전쟁은 1차 대전 이전까지 유럽 최대 규모의 국제전이고, 뤼첸 전투는 그 30년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들 중 하나에 속하는 전투임.
스웨덴의 사자왕이라 불리던 구스타브 아돌프와 제국측의 명장 발렌슈타인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면승부한 전투로도 유명하고, 앞으로 시대의 주류로 자리잡게 될 스웨덴 군의 화력/충격력 위주 교리와 기존의 교리가 맞붙은 전투기도 함.(너무 도식화된 설명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큰~ 틀에선 이렇다는 이야기임.)
전투의 승자는 애매한데, 공격자였던 스웨덴군이 제국군을 패퇴시키는데는 성공했지만 그 대가로 제국군 기병들에게 당시 스웨덴의 군사개혁을 주도하였고 그 자신도 명장이었던 사자왕 구스타브를 잃었고, 스웨덴 군이 입은 피해도 대단히 커서 퇴각할 수밖에 없었음. 피냄새가 짙은 30년 전쟁 중에서도 혈전으로서 양측의 피해가 컸던 편. 이런 맥락을 대~충이라도 알고 읽으면 더 괜찮을 거 같아서 설명해봤음. 이제부터 사상자 비율 인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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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직후 나움부르크의 스웨덴군은 비츠툼의 850명의 강력한 수비대와 4,000마리의 말을 포함해 약 8,000여 보병의 유효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날짜가 없는 사상자 명단에 따르면 보병 2,575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이로 인해 약 3,300명의 보병이 죽거나 행방불명이 되었고, 2,000마리의 말이 죽거나 부상을 입거나 행방불명이 되었을 것이다.
일부 탈영병이 나중에 합류에 성공하거나, 혹은 많은 병사들이 상처에서 회복되었을 수도 있지만, 스웨덴군은 일시적으로 7,875명, 즉 40%의 병사를 잃었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병사가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개신교 목격자인 조지 플리트우드만이 사망자 수를 언급했을 때 그는 사망자를 1,500명으로 추정했는데, 6시간에 걸친 전투에서 스웨덴군이 공격자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너무 적어 보인다. 보통 사망자 수가 부상자 수보다 많지 않기에, 사망자 상한은 3,900명 미만이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추정치는 3,000~3,500명 정도이다.(역자 주: 스웨덴 전군의 약 20%) 이들 중에는 구스타프 아돌프, 브라헤 소장, 스텐보크 소장, 게르스도르프 장군, 닐손 장군 등이 있었다.
각 연대별 손실율은 날짜 미상의 스웨덴 보병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대를 가리지 않고 장창병과 머스킷병의 사상자 수는 다음 두 부대를 제외하고는 비슷했다. (두 부대에 해당하는) 오래된 파랑 여단(Old Blue Brigade)의 장창병은 88.0%의 사상자율을 기록한데 반해 머스킷병은 42.6%의 사상자를 냈다. 스웨덴 여단(Swedish Brigade)에서 그 비율은 장창병 손실율 84.3%, 머스킷병 손실율 22.1%로 더욱 분명하다. 스웨덴 장창병들은 아마도 동료들의 후퇴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희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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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사상율 2.5할을 기록하면 부대가 전멸이라고들 하는데, 이 시기의 군대는 정말 악귀처럼 싸웠음을 알 수 있음.
출처는 Schürger, André (2015) The archaeology of the Battle of Lützen: an examination of 17th century military material culture. PhD thesis.
30년 전쟁 전후즈음부터 진짜 치열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서로 궤멸할 때까지 싸우는게 참 무섭네 ㄷㄷ
이때부터 규율이나 사기, 훈련도가 다른 지역 대비 미친듯이 높아진 것 같음
장창병이 이후 빠르게 사라진 것도 30년 전쟁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막대한 손실률을 보여서 그런건가 싶기도 하네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