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델 하트나 레지널드 패짓을 비롯한 기소된 독일국방군 고위급 장성들을 변호한 사람들의 논리를 보면 독일군을 이용해 소련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보다는, 승자이며 신사적인 영국이 패자에 대한 관용과 아량을 베풀어 패자인 독일의 명예를 존중해 주어 영국 국민이 진정 명예로운 신사들임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논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들은 패자인 독일군 장성들을 전범재판으로 기소하여 재판정에 새우는 것이 명예로운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며, 적의 명예를 존중해 주어야 우리의 명예도 산다고 역설했습니다.


만슈타인의 변호사 패짓의 변론을 봅시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정복자의 힘은 정복당한 쪽의 명예를 훼손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닙니다. 만슈타인은 독일 국민들 사이의 최고의 영웅이고 영웅이 될 것입니다. 만슈타인은 승리의 설계자이자 트로이가 무너질 것을 알고 느꼈을 때처럼 큰 후퇴를 하면서도 지휘를 하던 패배한 헥토르입니다. 그리고 이 법정에 오르기 전에 만슈타인은 마지막 전투에서 군의 명예를 위해 용감히 싸웠고 그의 지휘 아래서 전사한 이들에게 봉사했습니다. 재판장님께서 그의 동상에 순교자의 왕관을 씌워주시건 말건 그는 독일인의 특성인 용기, 불변성, 그리고 로마인들이 '엄숙함'이라고 불렀던 기질을 최고로 보여주는 사람으로 그에게 맞는 적절한 말을 우리가 찾기 힘듭니다. 만슈타인의 명예에 상처를 주는 것은 재판장님의 권한이 아니고, 그리 하신다면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힐 것입니다."


즉 영국인들은 영국군이 명예롭고 신사적이며 기사도정신을 갖추고 정치와 거리가 먼 순수한 군인과 싸워야만 자신들의 명예도 산다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딱히 반공주의가 아니라도 적의 명예를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관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명예 관념이 영국인들의 군사사 서술과 인식에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끼치는지 관련된 연구가 없어서 더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이 명예 드립이 군사사 서술에 적지 않은 장애물이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