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런 놈들 상대로 20만 대군 동원해놓고 한반도 남부도 못뚫고 돈좌된 일본새끼들은 100년 실전경험 어쩐거임?
댓글 9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2026-07-26 04:04
답글
또 이순신장군이 보급로 차단 한것도 있고
익명(ecjxh8x0rtlb)2023-12-11 18:18
사르후 전투에서 만주족이 미친 기동력을 보여줘서 그런거지 일반적인 상황이면 어어어어? 하다가 허투알라 포위되고 몰살엔딩임 그뒤로 원숭환이 잘 버틴 거 보면 명나라 무시 못함
ㅇㅇ 1(61.4)2023-12-11 18:16
나도 잘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명나라의 군사력 자체는 강력했음. 인구가 1억 5000만에다 서양에서 들여온 대포도 있었으니 인구가 150만인 청나라한테 도무지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는데 일단 명나라가 자폭을 했다고 봐야 함. 만력제가 30년 동안 태업을 하면서 나라가 치매 상태에 접어들었는데 그가 기껏 죽으니까 위충현이란 환관이 등판해서 조정 내의 유능하거나 충직한 신하들을 다 없앴고 그런 그가 제거되고 나서는 또 황제인 주유검이 군의 고위 지휘관들을 갈아치우거나 죽이면서 의심병을 발휘했으니 일단 조정에 정상적인 새끼가 없었음
익명(211.229)2023-12-11 18:27
명 후기는 전투력 그 자체보다는 군을 뒷받침해줄 국가 내부의 정치,경제적 상태가 박살난 쪽이 더 큰 문제였어서 애매함
익명(cz1234)2023-12-11 18:30
또 명나라의 국방을 보면 기본적인 상식이지만 명나라는 농업 국가였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어느 한 나라나 부유한 지방을 장악해 다 털어먹거나 한나라의 서역 점령처럼 무역상의 요충지를 장악해 꿀을 빨지 않는 이상 국력과 민생에 타격이 갈 수 밖에 없었음. 나중에 (명나라를 정복하고 농업 국가로 전환된)청나라가 건륭제 때에 준가르를 정벌할 때도 준가르의 군사력 자체가 허약해지던 시점에서 정작 원정으로 인한 손실은 전투가 아니라 보급과 전쟁 물자, 인력의 동원에 있었듯이 농경 제국이 방어전도 아니고 원정을 떠나는 일은 매우 심한 고역이었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익명(211.229)2023-12-11 18:32
거기에 명나라는 수도의 위치나 전선의 형태가 좀 특이한 편이었다. 지금의 요하의 동쪽에도 거점들을 마련해서 조선과 교통하고 여진족을 제어했는데 그런 여진족이 통일되어서 명나라 전역은 동시에 칠 여력이 안 되지만 요동 지역같은 규모는 충분히 쓸어버릴 수 있는 위협적인 군사력을 갖게 되었다. 청 태조가 제위에 있을 때 요하의 동쪽을 공격하면서 무순과 청하 두 곳에서 사람과 가축 30만 마리를 획득하고 요양과 심양, 개원 등을 함락하며 어디서는 6만 명을 죽이고 어디서는 이재민이 한 번에 100만 명이 발생하게 만들었는데 그곳들은 청나라군이 한 달음에 내달릴 수 있는 곳이었던 반면에 명나라는 수도인 북경이 북동쪽에 치우쳤음에도 불구하고 요동을 지원하거나 원정을 하기도 버거웠음
익명(211.229)2023-12-11 18:43
그래도 한 번 힘을 쥐어짜서 20만 대군을 파견했으나 사르훠 전투(사르후는 틀린 발음)에서 절반이 죽고 많은 대포를 잃는 등의 참패를 당하고서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리다가 요하의 동쪽을 잃었음. 조금 전에 잘못 언급했는데 개원, 심양, 요양은 사르훠 전투 후에 함락됐음. 요양을 함락한 시기에 부근의 70개 성을 함락했으며 다음으로 요하를 넘어 광녕을 공격할 때에는 한 때 요동에서 3년 간이나 청나라가 공격하지도 못하게 잘 막던 웅정필의 의견이 무시당하고 무능한 왕화정이 군을 지휘하는 바람에 14만 대군이 대패하고 40여개 도시가 금나라에 함락됐는데 정작 웅정필은 참수되고 조리돌림을 당하는 최후를 맞았고 나중에는 영원성을 잘 지키던 원숭환은 능지처참을 당했으니 명나라 조정은 유능한 지휘관은 죽이거나 짜르고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또 이순신장군이 보급로 차단 한것도 있고
사르후 전투에서 만주족이 미친 기동력을 보여줘서 그런거지 일반적인 상황이면 어어어어? 하다가 허투알라 포위되고 몰살엔딩임 그뒤로 원숭환이 잘 버틴 거 보면 명나라 무시 못함
나도 잘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명나라의 군사력 자체는 강력했음. 인구가 1억 5000만에다 서양에서 들여온 대포도 있었으니 인구가 150만인 청나라한테 도무지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는데 일단 명나라가 자폭을 했다고 봐야 함. 만력제가 30년 동안 태업을 하면서 나라가 치매 상태에 접어들었는데 그가 기껏 죽으니까 위충현이란 환관이 등판해서 조정 내의 유능하거나 충직한 신하들을 다 없앴고 그런 그가 제거되고 나서는 또 황제인 주유검이 군의 고위 지휘관들을 갈아치우거나 죽이면서 의심병을 발휘했으니 일단 조정에 정상적인 새끼가 없었음
명 후기는 전투력 그 자체보다는 군을 뒷받침해줄 국가 내부의 정치,경제적 상태가 박살난 쪽이 더 큰 문제였어서 애매함
또 명나라의 국방을 보면 기본적인 상식이지만 명나라는 농업 국가였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어느 한 나라나 부유한 지방을 장악해 다 털어먹거나 한나라의 서역 점령처럼 무역상의 요충지를 장악해 꿀을 빨지 않는 이상 국력과 민생에 타격이 갈 수 밖에 없었음. 나중에 (명나라를 정복하고 농업 국가로 전환된)청나라가 건륭제 때에 준가르를 정벌할 때도 준가르의 군사력 자체가 허약해지던 시점에서 정작 원정으로 인한 손실은 전투가 아니라 보급과 전쟁 물자, 인력의 동원에 있었듯이 농경 제국이 방어전도 아니고 원정을 떠나는 일은 매우 심한 고역이었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거기에 명나라는 수도의 위치나 전선의 형태가 좀 특이한 편이었다. 지금의 요하의 동쪽에도 거점들을 마련해서 조선과 교통하고 여진족을 제어했는데 그런 여진족이 통일되어서 명나라 전역은 동시에 칠 여력이 안 되지만 요동 지역같은 규모는 충분히 쓸어버릴 수 있는 위협적인 군사력을 갖게 되었다. 청 태조가 제위에 있을 때 요하의 동쪽을 공격하면서 무순과 청하 두 곳에서 사람과 가축 30만 마리를 획득하고 요양과 심양, 개원 등을 함락하며 어디서는 6만 명을 죽이고 어디서는 이재민이 한 번에 100만 명이 발생하게 만들었는데 그곳들은 청나라군이 한 달음에 내달릴 수 있는 곳이었던 반면에 명나라는 수도인 북경이 북동쪽에 치우쳤음에도 불구하고 요동을 지원하거나 원정을 하기도 버거웠음
그래도 한 번 힘을 쥐어짜서 20만 대군을 파견했으나 사르훠 전투(사르후는 틀린 발음)에서 절반이 죽고 많은 대포를 잃는 등의 참패를 당하고서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리다가 요하의 동쪽을 잃었음. 조금 전에 잘못 언급했는데 개원, 심양, 요양은 사르훠 전투 후에 함락됐음. 요양을 함락한 시기에 부근의 70개 성을 함락했으며 다음으로 요하를 넘어 광녕을 공격할 때에는 한 때 요동에서 3년 간이나 청나라가 공격하지도 못하게 잘 막던 웅정필의 의견이 무시당하고 무능한 왕화정이 군을 지휘하는 바람에 14만 대군이 대패하고 40여개 도시가 금나라에 함락됐는데 정작 웅정필은 참수되고 조리돌림을 당하는 최후를 맞았고 나중에는 영원성을 잘 지키던 원숭환은 능지처참을 당했으니 명나라 조정은 유능한 지휘관은 죽이거나 짜르고
무능한 놈들을 앉히는 특기가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