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군이 38선에 도달한 시점이 8월 23일인데
미군은 저기 오키나와에서 있었고 미군이 한국에 상륙한건 9월 3일임
맘만먹었다면 부산까지도 진격할 수 있던 시간적 여유랑 장비가 있었음
당시 일본군 대부분은 싸우지도 않고 항복했고 남한에 남아있던 일본군도 옥음방송 이후 싸울 생각 1도 없던 상황이었음
소련이 서울 점령은 안해도 조선 총독부 접수 정도는 했어야 하는거 아님?
한반도 전체를 지배한 기관인제라 상징성도 엄청나게 있고
한반도의 모든 자료가 총독부에 있는데 접수 안한게 참 의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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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의 실수인듯. 한반도 전체 접수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 38선에서 멈추고 홋카이도 간보려다가 그것도 실패
소련은 스탈린때도 그이후에도 그렇게 한반도에 목매지는 않았음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 38도선으로 나눠서 신탁통치 하자고 정한건 얄타 회담때 아니냐?
애초에 소련의 주관심사는 유럽이지 동아시아가 아니였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