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전 조선의 외교관계와 근대 일본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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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정한론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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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의 진출논리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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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 대조선 정책의 변화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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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선을 통해 본 청일전쟁 이전의 일본 위정자의 의견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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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이전 일본 군중의 전쟁논리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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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불 언제 한번 저 위에 있는걸로 글목록 만들어야지 글 본문마다 덕지덕지 붙이는것도 못해먹겄다


여튼 청일전쟁은 다들 알다시피 일본이 두들겨패면서 끝났어. 전쟁이 끝났으면, 조약을 맺는데 새로운 토지와 배상금의 획득은 일본 국민들에게 큰 자극으로 다가왔지. 특히 전쟁 막바지에는 야마나시현 등에서 군사공채를 사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이것은 국위선양 뿐만 아니라 가장 안전한 저축법이라고 광고를 하는등 군붕이들이나 할법한 발상들이 이어졌어. 


그리하여 전쟁을 하여 승리한다면 새로운 토지를 얻고, 또한 경제적인 이득도 확실하다는 것이 일본 국민들 사이에선 퍼지게 되지. 하지만 한국사 배우면 알겠지만 텐진조약의 결과가 그대로 일본에게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 주지 못해. 바로 삼국간섭이 시작된거야.


러시아는 청일전쟁 이전 영국과의 그레이트 게임에서 극동지역 부분에서는 어느정도 우세를 점하고 있었어. 시베리아 철도 완공이 목전에 앞두었고, 블라디보스토크만 활성화된다면 이를 발판으로 진정한 부동항을 찾아 영국의 간섭없이 무제한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거든. 근데 영국이 조선의 거문도를 점령하고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하면서 러시아 내의 극동정책에 비상이 걸리기 시작한거야. 자신들은 블라디보스토크를 발판삼아 동해로 진출하거나 태평양으로 진출하면 만사가 좋을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전쟁이 터지면 동해가 생각보다 봉쇄되기 쉽고, 블라디보스토크가 활성화되기전에는 극동에서 연료를 공급받을 항구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함대를 파견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그래서 1886년 이홍장과 라디젠스키는 조선의 현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고 조선의 불가침권을 서로 유지하자는 구두협약을 맺어. 또한 이를 성문화하기 위해 청과의 교섭을 시작하였고 태평양 함대의 증강과 이들을 공급할 항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 조선이 타국에게 점령될 경우를 대비하여 1887년 2월 7일 극동문제 특별회의에서 베스티니크라는 쾌주선을 조선에 파견하지. 물론 조선의 중립보호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틈을 타서 지들도 항구 하나 먹겠다는거야.


또한 러시아의 시베리아 철도계획에 박차를 가하고 조러관계와 한반도 문제가 극동문제에 중핵이며 조선이 영국, 일본, 청의 주요 대상이라는 것을 간파하게 되지. 그래서 이듬해 1888년 극동문제 특별회의에서 조선에 대한 청의 태도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조공체제라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조선에 대한 신중한 정책을 펼치게 시작해. 따라서 조선과 청의 관계가 타열강의 병합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하지.


근데 세상만사가 계획한대로 돌아갈 리가 없자나? 일본이 선빵치고 청일전쟁이 승리해버리니 러시아 입장에서는 기존의 정책을 완전히 바꿔야할 상황이 온거야. 어차피 일본은 이긴건 기정사실화되었고, 일본의 강화조약에 어떤내용이 들어갈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어.


여기서 조약에 나온 랴오닝 반도 점령을 러시아는 개빡친거야. 당연히 만주를 먹고 한반도를 둘러싸버리면 조선이 점령되는건 시간문제니까. 러시아의 비테 재상은 극단적으로 대만과 여순항, 한반도 남부까지는 일본이 처먹을 수는 있어도 만주만을 먹는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며 입에 개거품을 물며 반대하지.


이에 대해 프랑스도 러시아 편을 들게 되는데, 프랑스는 나폴레옹 시대 이후 유럽의 적으로 찍혀서 비스마르크의 외교정책으로 유럽내 편이 없는 상황이였어. 근데, 빌헬름 2세가 러시아와의 동맹을 손절하고 프랑스에게도 드디어 러시아라는 든든한 동맹이 생긴거야. 그래서 일단 러시아의 입장에 편을 들어주지. 한편 빌헬름 2세는 영국과 러시아 세력권 사이에 위치한 산동반도를 자국의 세력권으로 획득하고자 결정하였어. 근데 일본이 바로 반대편인 곳을 점령한다고 하니 당연히 반대하는거고.


유럽제국의 강력한 반발은 일본으로 하여금 움츠러둘 수 밖에 없었어. 상식적으로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연합국이 제대로 무장하여 공격한다면 도쿄와 교토가 노릇노릇해지는건 순식간이니까. 따라서 야마가타 – 로바노프 의정서는 어쩔 수 없이 일본에게 불리한 상태에서 조약을 맺었고, 한반도내 영향력을 잃을 수 있겠다고 판단한 일본은 1896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때, 아예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할해 먹는건 어떠냐고 제안하지.


근데 러시아 입장에서는 고종의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의 영향력은 날로 갈수록 커지고 일본의 영향력은 축소되는데 이참에 한반도 남부해안까지 쓰고 싶다는 생각이 안생길 리가 없자나? 그래서 당연히 좆이나 까잡수고 조선의 중립화에 힘쓰자고 하였지.


다른 한편으로 청에 대해서 러시아는 일본에 대한 배상금을 프랑스와 함께 차관을 제공해주기로 했어. 또한 앞서 언급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때 참석한 이홍장에게 요동지역을 한정으로 한 15년짜리 대일동맹을 맺고 러청철도건설에 대한 허가장도 받는등 만주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착실히 쌓아가고 있었어.


근데 미친 독일황제 빌헬름 2세가 앞서서도 말했지만 산동반도를 먹고 싶어하여 눈깔이 뒤집혀있는 상황이였어. 그래서 중국의 교주만에 외교관을 파견하여 트집거리를 잡아내여 군함을 파견하지. 근데 맨처음에 아직 블라디보스토크가 활성화되지 않아 러시아 함대에 대한 지원을 해줄 항구가 필요하다고 했지? 거기가 바로 교주만이었어. 교주만은 카시니 비밀협정에 의거해서 청도에서 월동하기로 했었거든. 물론 독일이 교주만에 있던 러시아 함대한테 니들 여기서 사는거냐고 물어봤지만 비밀협정인데 러시아가 내 맞줘요 라고 순순히 답변할 수 없으니 이번년도만 있는거라고 구라를 쳤지


암튼 비밀협정을 까버릴수도 없고 그렇다고 항구없이 겨울에 바다위에서 앵커박고 사는 거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짓이자너? 그래서 중국한테 항구 하나만 다시 열어달라고 부탁해. 그 항구가 바로 여순항이었던거야. 그렇다면 어차피 청도쪽은 날라갔고 전세계가 중국에 러시아 함대가 있는 걸 알게되었으니 이참에 여순항에 눌러앉으면서 블라디보스토크랑 여순항을 연결하는 철도를 깔아버리면 훨씬더 안보위협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겠지? 근데 갤럼들이 지도 열어서 여순항 – 블라디보스토크간 철도를 깔 시공관계자라고 생각해봐. 한반도 바로 위를 지나가는 선을 긋거나 아예 한반도를 경유하는 선을 긋게 될거야. 한마디로 러시아 입장에서는 한반도의 안보상황이 존나게 중요한 상황이 된거지.


이런 상황에서 1900년 초 중국 인민들은 반기독교, 반외세적 성향을 띄고 있는 의화단 사건이 발생하는데, 만주지역까지 급속하게 번져나가기 시작해. 이 사건은 러시아의 극동정책에 큰 영향을 주는데 블라디보스토크와 여순항을 잇는 철도를 만들려는 러시아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었어. 만주 현지의 책임자 알렉세예프는 인명의 손실을 무릅쓰고라도 러시아의 군대가 청국정부의 자산인 철도를 점령하고 이를 방어해야 하며, 적어도 의화단이 진압되기 전까지는 우리 수중에 있어야 한다고 까지 주장하지. 따라서 러시아는 만주로 군대를 파병하고 람즈도르프와 쿠로파트킨은 중국에게 러시아의 공식적인 요구안을 작성하는데, 이게 바로 람즈도르프 – 양유 협약이야. 이 조향을 살펴보면


제1조. 만주를 반환하며 민간 행정권을 청국에게 이양한다.

제2조. 질서가 회복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일단의 군대를 주둔시킨다.

제4조. 청국군의 만주 파병을 금한다.

제5조. 만주의 질서 유지를 위해 러시아정부의 의사에 따라 양국의 우호관계에 부응하지 않는 고위 행정 관리는 해임한다. 치안목적을 위한 보병대와 기병대의 수는 러시아와 협정에 의해 결정한다.

제6조. 청정부는 보병대나 북양함대의 외국인 교관을 허용하지 않는다.

제10조. 러시아는 동청철도의 손해를 보상한다.

제12조. 동청철도의 간선 혹은 지선으로부터 북경을 향해 곧바로 만리장성에 이르는 철도부설권을 보장


일본 입장에서는 러시아의 만주점령이 큰 자극일 수 밖에 없는데, 이를 계기로 러시아와의 일대 전쟁을 벌여야한다는 노선이 급속히 커지게 되지. 따라서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영일동맹을 체결하고, 러시아의 만주점령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해. 러시아는 전세계에서 이런 성명을 발표하자, 특명전권사절을 파견하여 러청만주철병협정을 조인하게 되지.


하지만 1차철병이후 러시아 각료들 사이에서는 만주철병이 과연 옳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라는 의견이 퍼지기 시작해. 각료들은 만주가 아예 러시아에 속해버리거나, 러시아와 만주와의 결속이 공고해질 때만이 철병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이에 니콜라이 2세는 제2차 만주철병을 중지하고 쿠로파트킨을 보내 만주에 대한 보고와 영토편입 필요성에 대해 알아보라고 파병하도록해. 이후 1903년 8월 12일 관동지역과 흑룡강지역을 동아시아 총독구로 삼고 동아시아 총독부를 설립하며, 총독에게 동아시아 3국의 외교 통할권과 군사지휘권을 위임하도록 하지.


이에 일본은 삼국간섭때, 라오닝 반도 할양 철퇴로 개빡쳤는데 그곳을 능욕하듯이 자국함대 항구로 삼고, 나아가 만주를 먹고 결국 한반도까지 소유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을 하게 되지. 하지만 군비가 아직 극동세력을 이길만한 군비가 나오지 않아 시간이 필요한 일본이였지만 정작 시베리아 철도가 완공되면 군비확충이고 나발이고간에 개털릴게 뻔하니 전쟁 시작시간은 군비가 어느정도 갖춰지면서도 시베리아 철도가 완성되기 이전인 그 애매모호한 시간에 맞춰야 하겠지? 


이에 발맞춰 일본국민에게도 전쟁의 당위성을 주장하는데, 러시아를 문호개방을 하지 않는 비문명의 국가로 인식시키고 러시아는 전제군주정의 국가이니 만일 일본이 승리한다면 러시아 내의 자유민권론이 세력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일본이 패배한다면 러시아 국민들은 전제정에 더욱 시달릴 것이니 일본의 승리는 결국 러시아의 인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선전하면서 러시아와의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으로 포장하는데 성공해.


뭐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러일전쟁이 발발하지. 러일전쟁 이후 이야기는 다음번에 하자 기말고사가 아주 좆같거든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