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고당 전쟁
타임라인 분석
당 고종, 도합 40만 대군으로 소정방/방효태/임아상으로 하여금 평양 상륙 작전 - 계필하력으로 하여금 압수 진군 - 소사업/정명진으로 하여금 요동 공략 지시
-> 고구려 연개소문, 정예군 3만으로 장남 연남생으로 하여금 계필하력의 당군에 맞서 압수 사수 지시
-> 6만의 계필하력군 vs 3만의 연남생군, 압수에서 대접전 발발
-> 연남생군, 전멸하여 빤스런
-> 계필하력군, 역시 막대한 피해 입어 더이상 진군 불가
-> 계필하력군, 결국 당 고종의 복귀 명령 받고 퇴군
-> 소사업군, 요동방어선 북단의 신성에 당도
-> 6만의 소사업군 vs 신성의 고구려군, 공성전 개시
-> 소사업군, 대패하여 당 고종의 복귀 명령 받고 퇴군
-> 정명진군, 곧이어 신성에 당도
-> 6만의 정명진군 vs 신성의 고구려군, 공성전 개시
-> 정명진군, 신성 공략 실패로 요동 우회하여 평양으로 진군
-> 신성의 고구려군, 정명진의 당군 추격 개시
-> 소정방의 당군, 고구려 수군의 탐망을 회피하여 평양 상륙
-> 소정방의 당군, 시가전에서 고구려군을 밀어내고 평양성에 당도
-> 7만의 소정방군 vs 연개소문의 고구려군, 공성전 개시
-> 소정방군, 대패하고 연개소문군에 의해 평양성 앞 목진지까지 따이며 고립
-> 고립된 소정방군, 방효태군 / 임아상군 / 김유신의 신라군에 구원군 요청
-> 방효태군 / 임아상군 / 김유신군, 평양으로 출발
-> 연개소문군, 소정방군을 평양성 밖으로 밀어내고 포위망 해체
-> 연개소문군, 신성주의 정명진군 추격 보고 접수 후 누방으로 진군
-> 연개소문의 고구려군 / 정명진의 당군 / 신성의 고구려 추격군, 누방에서 조우
-> 6만의 정명진군 vs 연개소문군 & 신성군, 회전 개시
-> 포위망에 갇힌 6만의 정명진군, 고구려군에 의해 섬멸
-> 신성에서 보낸 추격군, 임무 완수 후 신성으로 복귀
-> 연개소문군, 정명진군 섬멸 후 평양으로 회군
-> 7만의 방효태군 / 8만의 임아상군, 사수에 당도
-> 연개소문의 고구려군, 사수에 당도
-> 8만의 임아상군 vs 연개소문의 고구려군, 회전 개시
-> 연개소문군, 8만의 임아상군 섬멸
-> 7만의 방효태군 vs 연개소문의 고구려군, 백투백 회전 개시
-> 연개소문군, 7만의 방효태군 섬멸
-> 연개소문군, 사수에서 당군 모두 섬멸 후 평양성으로 출발
-> 김유신군, 평양성에 당도 후 소정방군에 보급품 전달
-> 소정방군, 보급품 전달받자마자 연개소문군 당도 전에 황급히 빤스런
-> 김유신군, 역시 고구려군과의 충돌을 회피하고 철수
-> 평양성의 고구려군, 소정방의 당군 / 김유신의 신라군에 추격군 급파
-> 평양성의 추격군, 소정방군 / 김유신군 후미 급습
-> 소정방군 / 김유신군, 배후 기습당했으나 수뇌부의 본군은 고구려 탈출
-> 연개소문군, 소정방군 / 김유신군 퇴군 후 평양성에 당도 및 종전
한줄요약
연개소문은 사람새끼가 아니다
고-수 전쟁은? - dc App
전투 기준으로는 고수전쟁의 살수 대첩이 있지만 전쟁 기준으로는 2차 고수전쟁이 2차 고당전쟁보다 더 압도적인 대승을 거둔게 아님. 2차 고수전쟁은 평양 수전에서 고구려 수군 이끈 영양왕이 수나라 수군한테 패전해서 전사할뻔했음.
연개소문 제외하면 대부분 고구려의 야전 열세였는데 연개소문은 갈때마다 이김ㅋㅋ 사실상 원맨쇼나 다름없는 전쟁이었음ㅋㅋ - dc App
이것만 보면 거의 고구려의 가르친링인데? 없으면 깨지고 있으면 이기는게
가르친링이 딱 연개소문 하위호환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함. 일단 연개소문은 당시 당나라가 정관의 치 시즌이라 최전성기 달릴때 당태종, 당고종의 연달은 원정 전부 털어버리고 본인 대에는 확고하게 정권을 유지하고 승계까지 성공했음. 하지만 가르친링은 당고종 말기~측천무후 시기 당나라가 확장정책에서 조금 빗겨난 시점에 활동했음. 연개소문같이 당나라 최전성기에 대규모 원정군 상대로 싸운게 아님. 거기다 잘싸운것과 별개로 국내 반대파에 의해 결국 강제로 숙청당하고 자살했고 정권도 못지킴. - dc App
수 당 올스타가 들어간 고구려전과 병력 없어서 흑치상지와 백제군 잔당까지 동원한 토번전을 같은 격으로 올리면 고구려가 존나 섭섭하지
그리고 대부분 고구려 야전 열세도 아님. 지들이 진 건 귀신같이 기록 말살 해버리고 날조와 조작을 해서 자세히 모르지. 능연각 공신급이 나서지 않는 한 야전조차도 딱히 꿇리질 않음. 능연각 공신들도 2차 고당전쟁 당시 안시성 전투처럼 도행군급 병력을 이끌고 있어서 성 한 두 개에서 보낸 병력에 의표를 찔러서 수세에 몰린 걸 체급으로 찍어 누른 것처럼 이겼고
이게 맞는게 1차 고당전쟁도 2차 고당전쟁만큼은 아니지만 당군 피해가 어마어마했음. 차라리 안시성 전투는 덜 쪽팔리지. 그건 그냥 공략에 실패했다 정도지 대패는 아니거든. 근데 당군이 스스로 인정한 3대 패전을 보면 신성, 건안성, 주필산(이게 왜?)이고 여기서 주력군 엄청 갈림. 개전 초반에 수군의 힘으로 따먹은 비사성도 당 수군이 평양에서 출발한 고구려 수군(연개소문이 지휘했을것으로 추정)한테 참패하면서 다시 뺏겻고. 개모성, 요동성, 현도성, 백암성은 따먹었지만 확실히 점거못해서 퇴군할때 저길 거르고 죽음의 늪지대로 몰림. 한마디로 존나게 털렸다는거
주필산의 경우도 당나라측 기록으로는 자기네가 크게 이겼다고는 하는데 그 후 전개 보면 당나라도 주필산 전투 이후 한달이 훌쩍 넘게 그 자리에서 눌러앉아 재정비에 힘써야 했음. 본 군이 제대로 움직인건 두달 가까이 지나서였던거 보면 당나라도 큰 피해를 입었을거임. 막상 고구려 야전군도 재편성 된거 보면 지휘부가 잡힌것과 별개로 고구려군은 무력하게 패배하지 않았고 아마 어느정도 일선 지휘관들 중심의 지휘체계가 확립된 상태로 후퇴했음을 알 수 있음. 냉병기 시대 특성상 사람이 많이 죽는것보다 모랄빵나서 흩어지는게 더 큰데 그걸 모을 수 있었다는건 지휘체계가 살아있었다는 거지. 주필산 전투에서 지휘관들이 잡혔으니 패전이 맞긴한데 전쟁의 분기점이라고 보기도 애매한 이유임. - dc App
하지만 자식농사는 - dc App
ㅅㅂ
하지만 결말은 원소였죠? - dc App
팩트: 고려영은 북경에 있다
강남 좆밥도 아니고 위진남북조 혼란기, 수말당초 혼란기에서 살아남은 새끼들 상대로 야전에서 연승하는거 보먼 연개소문 이새끼 한국사 탑티어임 - dc App
너무 먼 일이라 그렇지 조선때 저런짓 했으면 걍 이순신급이었지
나폴레옹 생각나네. 그 치는 워털루에서 마지막에 털리기라도 했지 연개소문은 대체 뭐임?
나폴레옹은 러시아원정서 60만대군 다말아먹어서 60만중 1만~몇만명만 살아돌아오고 80%는 동사하거나 포로로 잡혀 노예빔 맞았음
연개소문도 마지막에 털림 인간은 자식농사가 마지막이니까
아하?
개쩌네
연개소문 사실상 한국의 카이사르
고당전쟁에서 고구려가 패한 이유는 연개소문보다 고종이 오래살아서 라는게 학계 잡설
애초에 중국에서 한반도 침략하는 세력은 거의 다 왕조 최전성기때임
ㄹㅇ로 반란과 자식농사만 아니었으면 함선명에 이름 오르고도 남으실 양반이지
아 그거 등에 칼꼽고 이기어검술하는 사람이죠?
전쟁은 잘했는데 자식 농사를 말아먹은 - dc App
괜히 짱개들 경극에서 개씹네임드급 보스가 아닌듯 - dc App
2차에서 말아먹어서 짱깨가 충격받고 정복 포기하려했는데 진짜 포기했으면 지금까지 국뽕으로 엄청 써먹었을듯 - dc App
대전 상대를 고려하면 이순신장군보다 연개소문이 위 아니냐 ㄷㄷ
대전상대의 머리숫자는 연개소문이 점수가 높은데, 상황적 난이도는 이순신이 점수가 높음, 나라 전력을 모두 운용가능한 연개소문이랑, 지원도 쥐꼬리만하고, 병력도 적은데 피해 거의없이 다 이긴 이순신이랑
대전상대의 머리숫자뿐만 아니라 체급 자체가 비교하기 좀 그렇지. 7세기 당 vs 16세기 일본. 지금으로 비교하면 미국 vs 한국 정도 될려나? 더군다나 연개소문이 상대한 부대는 당에서도 최정예군이고 이순신이 상대한 부대는 일본에서도 약체인 수군임. 명종대에 본격적으로 건조되던 함대 체급만 봐도 조선이 일본보다 압도적인 우위이고. 반대로 이순신에게 점수가 높을만한 요인은 지원이 쥐꼬리만하다는건데, 그걸 감안해도 명과 연합해서 일본을 상대한 조선의 입장과 반대로 당과 신라의 연합 사이에서 샌드위치인 고구려 입장을 비교해보면 이 역시 연개소문의 상황적 난이도가 더 높아보임
당뇨 무서운데 고당말고 저당 전쟁은 없음? 어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리봐도 거란3차 귀주대첩미만잡같은데
그냥 간단하게 비교하면, 3차 여요전쟁 끝나고도 요는 계속 국지전으로 도발했음. 근데 2차 고당전쟁 끝나고 당은 요동 일대에 아예 관심을 끊었음. 오히려 계림도독부 웅진도독부 철수까지 결심했지. 이것만 봐도 당시 요가 느낀 충격과 당이 느낀 충격은 비교조차 될수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