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가장 많은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은 나라 중 하나였던 프랑스는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건 바로 전장에서 전사한 참전용사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전투 도중 군번줄이 날아가거나 얼굴이 훼손되거나 해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참전용사의 시신이 태반이었다는 것임.
사실 전사자 식별 문제는 현대에도 나오는 것이고 나폴레옹 전쟁기등 이전에도 '무명용사'라는 단어는 존재했지만, 군인을 전열보병 소모품 1로 보던 시기가 가졌던 전사자에 대한 예우는 근대 이후 프랑스와 다를 수 밖에 없었음.
1차세계대전 시기에는 참호에서 참호로 진격하다가 '이름도 모른채 뒤엉켜 싸우다 기관총에 맞아 죽은 수만 단위의 보병'들의 시신이 떼거지로 나왔고,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과 네셔널리즘의 보편화 등으로 이전보다 전사자에 대한 예우가 중시되고 1차세계대전 자체가 프랑스 입장에서 정말 온 국가를 다 바쳐 싸워 이루어낸, 러시아로 치면 대조국전쟁의 위치에 있는 성전처럼 기억되면서
'참호에 버려진 무명용사들을 어떻게 해야하는가?'는 프랑스의 숙제가 되었음.
1920년, 베르됭과 솜등 1차대전의 지옥들에서 관에 매장된 신원을 식별할 수 없는 참전용사의 시신들이 파리로 몰려들었고, 이 관들은 나폴레옹이 세운 그 유명한 개선문 근처 마련된 '무명 용사의 묘(Tombe du Soldat inconnu)'에 매장되었음.
비록 프랑스 파리에서 에펠탑 다음으로 가장 상징적인 장소에 매장되었다지만, 이 매장은 영 찝찝할 수 밖에 없었음.
일단 처음엔(1916년) 베르됭에서 발견된 8구의 시신을 '무명 용사의 시신'으로 지정하고 상징적으로 대포와 함께 마차에 실려 매장되었지만, 신원 확인 과정이 순탄할 거라는 프랑스 정부의 예상과는 다르게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참전용사들의 시신은 끝도없이 나와버렸고 결국 상징적인 몇구의 시신만 무명 용사의 묘에 안장되고, 대부분은 베르됭과 솜 등 전장 인근 지역에 임시로 설치된 무덤에 가매장됨.
프랑스 전역에서 아들이 전사했다는 통지서를 아직 받지 못해 희망의 줄을 잡고있던 수많은 시민들은 곧 아들의 시신을 수색중이라는 편지를 프랑스 정부로부터 받게되고, 희망은 통곡의 소리로 변해갔음. 이런 상황속에서도 참호와 참호사이에 널부러진 수 많은 신원미상 시신을 확인할 방법이 프랑스로서는 없었음.
이때 예술가 그레구아르 칼베(Grégoire Calvet)가 1921년 아이디어를 내니, 현실적으로 무명용사들의 가족을 찾아줄 수 없다면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나마 그들을 기리자는 것이었고, 그것이 바로 꺼지지 않는 영원의 불꽃(Flamme éternelle)을 개선문 밑에 피워 '프랑스는 영원히 그들을 기억한다'라는 상징성을 부여하자는 것이었음.
이것이 당시 파리 사령관이자 1차대전 영웅중 하나였던 앙리 구로 장군을 중심으로 탄력있게 추진되었음.
프랑스의 난다 긴다하는 디자이너들과 예술가들이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장치를 만들기 위해 모여들었는데, 결과적으로 건축가 앙리 파비에(Henri Favier)가 디자인하고 당시 천재 석공으로까지 불렸던 에드가 브란트(Edgar Brandt)가 제작한 불꽃을 발생시키는 장치가 1923년 10월 마련되었고,
1923년 11월 11일 저녁 6시 정치인 앙드레 마지노가 불을 지핀 것을 시작으로-그때부터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후 6시 30분마다 재점화하는 관례를 만들었으며 오늘날까지 '일단 공식적으로는' 단 한번도 어긋나지 않고 이 글이 쓰여진 2023년 12월 기준 100년 1개월 동안 빠지는 일 없이 재점화되었음. (1940~43 나치 점령기간에도!)
(왜 '일단 공식적으로는'이냐면 중간에 아나키스트 단체의 반달리즘이 있었기 때문. 후술.)
옛 프랑스에 있던 81 보병연대가 이 불꽃을 점화하는 행사를 1년에 한 번씩 해서 '불꽃연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고, 불꽃의 점화는 여러 참전용사 단체에서 돌아가며 맡다가 지금은 '영원의 불꽃 위원회'라는 단체가 조직되어 매일 불꽃 점화를 하고 있으며
보통은 이 단체가 점화하지만 20세기엔 프랑스 대통령이나 총리, 참전용사나 허가받은 단체등에 한해 기념비적인 날에 점화하기도 했고 21세기가 된 지금은 국빈, 유명 정치인등이 이벤트성으로 점화하기도 함.
(본문하곤 별 상관 없는데, 이 불꽃을 최초로 지핀 앙드레 마지노는 2차대전때 그 마지노선 건설과 연관이 깊은 사람임. 이름부터가 이 사람에서 따왔고.)
(플랑드르에서 있었던 영원의 불꽃 운송 작전)
이렇듯 개선문 밑 영원의 불꽃은 처음엔 순수하게 프랑스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이름없는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제작되었고, 이후로도 그 순수한 의도가 이어져야 했을터였음.
그러나 오늘날 영원의 불꽃은 여러 정치적 이슈와 기사거리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그 과정에서 불꽃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마저 수 없이 이루어졌음.
이 불꽃을 만든 예술가들이 아무리 순수한 의도로 불꽃을 만들었다고 해도, 영원의 불꽃은 특히 1차대전 이후 강하게 분 프랑스 네셔널리즘의 영향으로 '오직 프랑스인만이 지필 수 있으며, 프랑스에서만 불타는 불꽃'으로서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샌가 정의되어 왔었음. 21세기 이전엔 이 불꽃의 점화를 프랑스인 외 외국인이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정도.
몇 안되는 예외가 1954년 미국의 흑인 전투파일럿이자 참전용사 유진 불라드(Eugene J. Bullard)가 샤를 드골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불을 지핀 사례였는데, 애초에 이 사람은 어렸을 때 농장에서 탈출해 유럽으로 망명, 프랑스군에서 복무하다 베르됭에서 기관총 사수로 훈장을 받은 휘 항공기 기총사수를 거쳐 파일럿이 된 사람으로,
말이 미국인이지 2차대전때도 프랑스 육군 소속으로 보병을 지휘하다 패전 뒤엔 레지스탕스 활동까지 했던 사람임. 결국은 미국을 잊지 못하고 미국에서 엘리베이터 관리인으로 생을 마감하지만 샤를 드골이 직접 목에 슈발리에 훈장을 걸어주며 기사임명까지 했던 사람인 만큼 이걸 미국인에게 점화의 기회를 주었다기도 뭐했음.
21세기부턴 영원에 불꽃에 이런 네셔널리즘적인 정의를 하는것에 대한 이의제기가 있어 이례적으로 벨기에 플랑드르(1차대전 최대 격전지였던)에 여성 참전용사들이 불꽃을 옮겨붙인 램프를 운반하는 행사를 하며 영원의 불꽃을 해외로 가져가기도 하고, 2003년에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파리방문때 점화하는 등(20년 전이었던 만큼 유럽 러시아 관계가 지금같지 않았고 푸틴도 초임이었던 시절) 무조건적인 국가주의적 정체성에서 더 다양성을 가진 정체성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도 있었음. (당연하지만 반발도 있었고)
영원의 불꽃이 어느샌가 프랑스 국가주의의 상징물이 된 건 1927년 사코와 반제티 사건(아나키스트 사코와 반제티가 미국에서 누명을 쓰고 사형당한 사건)의 여파로 일부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반달리즘을 당한 적이 있었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전국적인 폭력적 안티아나키즘 운동이 벌어졌는데, 이때부터 점점 영원의 불꽃을 '감히 왼쪽 놈들이 건들 수 없는, 프랑스의 국가주의적 상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음.
그래도 영원의 불꽃은 대략 7~90년대까지는 그렇게까지 심각한 논쟁의 주제가 되진 않아왔음. 일례로 1970년 프랑스에서 한창 여성운동이 벌어졌을 때(프랑스에선 1차대전 이후 전세계적으로 여성참정권을 부여할때 이례적으로 1946년에서야 평등한 참정권을 부여했는데, 이에 대한 반동으로 전후 여성운동이 많이 벌어졌음) 프랑스 정부에서 여성단체에게 이벤트성으로 점화하게 해주었고 여성단체는 영원의 불꽃을 재점화하며 '참전용사들만큼이나 기억해야할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부인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아무런 논란 없이 프랑스 시대 전환의 계기로 좋게 받아들여지는 등 오늘날같은 진흙탕 싸움으로 가진 않았음.
문제는 대략 90년대쯤부터 프랑스 특정 정치세력 일부에서 이 영원의 불꽃을 프랑스의 상징물, 프랑스 네셔널리즘적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음. 이에 반대세력이 대응하면서 영원의 불꽃은 대략 '특정 토템을 두고 벌어지는 프랑스 좌우간 진흙탕 싸움'의 대표적인 피해자가 됨.
영원의 불꽃보다 먼저 이런 싸움에 휘말린 본좌가 바로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군 지휘관이었던 잔 다르크(1412~1431)였는데, 대략 보수쪽에서 잔 다르크의 "군인, 애국자, 군사지도자"적 면모를 강조하며 자기들 상징으로 쓰고 잔 다르크 동상 앞에서 이민자 추방 연설을 하면, 반대쪽에서 잔 다르크의 "여성, 농민출신"적 면모를 강조하며 또 자기들 상징으로 쓰며 잔 다르크 거리에서 여성인권 시위를 하다가
결국에는 어느샌가 "백년전쟁 때 프랑스를 구원한 위인이자 영웅"으로서 순수하게 기억되지 못하고 정치적 토템으로 지나치게 사용된 나머지 대중적인 사용이 기피되는 현상이 벌어졌음. 그리고 이 루트를 영원의 불꽃이 아주 그대로 따라감.
영원의 불꽃이 정치 토템화되는 과정은 대략 이랬음. 보수 세력쪽에서 이 불꽃이 1차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기념물이라는 것에서 '전쟁과 애국주의'쪽을 유난히 강조하며 자기들 상징물로 써먹으려 하고
그럼 또 반대쪽에선 1차세계대전때 무슬림이나 흑인 출신 참전용사들이 있었다는 걸 강조하며 '느그들한테 안뺏긴다' 모드 들어가고
정치인들은 이걸 진정시키기는 커녕 열심히 편승하고 이것이 반복되는 결과, 어느샌가 대중들은 영원의 불꽃 앞에서 늘 하던 경례를 기피하고. 늘 하던대로 영원의 불꽃 앞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 의미를 설명하던 부모들은 어느샌가 "우리 이거 극우처럼 보이는건가?"라고 불안해하기 시작하고.
순수하게 전쟁의 비극속에서 목숨을 잃고 성향을 떠나 나라를 지켰던 젊은이들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서 사용되지 못하고, 정부에선 이걸 막으려고 또 앞서 말한 플랑드르에 가져가고 외국인들을 초청해서 점화하게 시키는 퍼포먼스를 하고 그거에 대한 반발여론이 또 조성되고.
불행한 사실로, 영원이 불꽃이 가장 논란에 휩싸이고 갈등이 벌어지게 된 해는 바로 영원이 불꽃이 점화되고 100주기가 되는 2023년, 즉 올해였음.
2023년 5월 8일 마크롱 대통령이 대독 승전 기념일을 맞아 영원의 불꽃에 불을 지피는 행사를 할 때, 언제나 그렇듯 2차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이 구경을 하러 왔는데, 이때나 지금이나 연금개혁으로 프랑스에서 한창 시위가 계속되던 시점이었고 이에 시위대가 몰려올 것을 우려한 경찰이 대통령 신변보호를 위한다며 영원의 불꽃 주변을 통제하고, 허가받은 정치인만이 들어갈 수 있게 한 뒤 참전용사들이 접근할 수 없게 막는 사태가 벌어졌음. (웃긴건 시민사이의 격리는 전혀 없어서 재수 없으면 참전용사-시위대간 폭력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는 것)
물론 대통령이 나서면 주변 통제는 언제나 하지만, 이번엔 그 반경이 너무 넓었고 이전엔 논란에 좀 휩싸여도 적어도 점화할 때 만큼은 각계인사가 다같이 모여 화기애애하게 불을 지피는 모습을 언론앞에서 연출이라도 했는데 마크롱 혼자 독고다이로 불을 붙이는 모습이 연출된 것이 문제였음.
경찰이 예상한대로 연금개혁 반대 시위대가 오긴 했지만 선을 지켜줬던 덕에 참전용사들과 충돌도 없이 마무리되긴 했는데, 프랑스 언론에서 이 모습을 '군인들과 참전용사들을 바리케이트 뒤에서 지켜보게 하고 대통령 혼자 불을 지폈다.'고 묘사하면서 논란이 발생했음.
결국 여러 논란 끝에 2023년 11월 11일 최초 점화 100주기라는 기념비적인 행사는 예상보다 훨신 축소되어 열렸고, 많은 언론들이 영원의 불꽃이 '정치적 쟁점화 됨에 따라 대중적으로 기피화'되는 것을 한탄했음. 여기서 마크롱은 우리는 참전용사들을 기억해야한다, 무슬림 아프리칸 프리메이슨 그들도 참전용사중 하나였다 정도로 정치적 논란을 회피하기 위해 양측 의견을 모두 수렴하는 정도의 연설을 했음.
프랑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영원의 불꽃이 정치토템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는 가운데 202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80주기인 6월에 영원의 불꽃을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로 44명의 젊은이들을 뽑아 운송하는 프로젝트를 여야 중도적 정치인들이 힘을 모아 계획된 상태인데, 정치적 우려를 피하기 위해 정확히 남성 여성 22명씩 뽑고 미리 정치 활동등을 검색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선발된 사람만 참여 가능하다고 함.
정치적 토템이 되어선 안되고 순수한 상징물로서 기억되어야 할 기물이, 어느샌가 좌우간의 장난감이 되다가 종국엔 기피와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지경이 된 안타까운 사례중 하나라 볼 수 있겠음.
최대 피해자는 정치성향을 떠나 나라를 위해 싸우고 목숨을 바치다 이름도 없이 세상을 등진 베르됭, 솜, 플랑드르의 영웅들 아닐까.
비고 - 당연하지만 혹시 댓글에서 정떡 올리는 새끼 나오면 모두 뚝배기를 깨도록하자.
하하 개판이내
개선문에서 보았던 의식이 이거였구나..
모두의 말을 일단 들어줘야 되는 민주주의라 어쩔수가 없...
독일이 파리 점령하고 행진할 때도 무명용사의 묘는 밟지 않고 비켜서 행진했다고 하더라고..
아이고...
뭐든지 이상대로만 되면 참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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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ㅇㅋㅋ
근데 독일 점령 시기에도 저거 켰다는게 더 놀라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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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무명용사고 나발이고 관심있는 진영이 없구나. 참호에서 용감하게 나라믿다 벌집된 보병들만 개죽음 당해버렸지.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본다는데 이건 틀린듯
재점화인 걸 보면 중간중간 불을 끄는건가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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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사람 죽은걸 정치적 유불리로만 따지는 걸 보면서 씁쓸했는데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다 이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