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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135-137): 


미국 정부 메모랜덤


수신: Mr. 니콜라스 쏘온(Nicolas G.W. Thorne) 정치고문(???) / 사이공

일자: 1969년 4월 25일

발신: 제임스 맥(James F. Mack), POLAD/ 다낭

주제: 한국군 해병 2여단이 1968년 1월부터 1969년 4월 기간 쿠앙남 지방에서 행한 활동 개요

참조: 발신인의 4월 23일자 메모 (첨부문서 #16)



 한국군이 1968년 1월 쿠앙남에 진주한 이래 한국군 해병 제2여단의 심각한 결함이 알려져 왔고, 쿠앙남이 CORDS 고문단과 사이공으로부터 파견된 MACCORDS 평가단에 의해 끊임없이 보고되었다. 1968년 3월 18일 당시 쿠앙남의 PSA 였던 듀안 퍼켓(Duane Puckett)은 CORDS 부에 한국군이 의미있는 공격작전을 벌이기를 꺼려한다는 사실, 그들의 악명높은 암시장에서의 행동, 베트남인들의 감정과 민간정부에 대한 완전한 무시와 경멸에 관한 자세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첨부문서 #1) 그는 또 한국군이 쿠앙남에 주둔한 처음 두달간 (1968년 1월 - 3월) 한국군 순찰대가 인근의 촌락으로부터 가해진 소규모 총격에 대한 보복으로 민간인 인질을 살해한 사건이 적어도 3건 있었음을 강조하면서 한국군이 민간인들에게 보인 잔혹성에 대해서도 묘사했다. 그 당시까지 일어난 사건 중 가장 악명높은 것은 한국군이 79명의 여성과 어린이를 살해한 디엔반 구(區)의 퐁니엔 촌에서 일어났다. 나는 이 사건에 관하여 이미 상급 사령부에 제출한 바 있는 사진자료들을 4월 23일자 나의 메모와 함께 당신에게 보냈다. (첨부문서 #3A)

 첨부된 문건의 하나는 1968년 2월 12일 살해당한 사람들의 친척인 가족들의 가장들이 서명한 탄원서 (첨부문서 #2)이다. 사망자들의 1주기에 작성된 이 탄원서는 하원의장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지지하고 이와 같은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 개입해주도록 요청하면서 제출되었다. 


 1968년 3월의 퍼켓 보고서와 MACCORDS 의 1968년 3월 25일자 평가보고서 (첨부문서 #3) 는 한국군의 결함에 대해 유사한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현지의 관찰자들에 의하면 보고서가 제출된 이후 몇 달간 한국군의 행태는 개선되지 않았다. 더구나 디엔반, 휴논, 듀이쑤옌 등을 포함한 한국군의 전체 TAOR(전술책임영역)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지뢰의 부설과 매복은 증가했으나 적의 주력군과 NVA 부대들은 이 지역을 별다른 저항없이 통과했다. 1968년 7월까지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Acting CG III MAF인 로슨(Rosson) 중령은 듀안 퍼켓(당시 CORDS 부책임자)를 책임자로 특별연구반을 만들어 한국군 해병 2여단의 자기들의 군사작전과 GVN의 평정작전에 대한 지원에서 효울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방안을 내놓도록 하였다. (첨부문서 #4)


 7월 11일 코머(Komer) 대사는 앞의 MACCORDS의 평가 (그는 아직 III MAF 의 특별연구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에 대한 반응으로 CORDS부에 한국군의 상황이 개선되었는지를 문의하는 메모를 보내왔다. 그는 만일 상황이 “아직 나쁘다면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첨부문서 #5) 코머 대사의 문의에 대한 답변으로서는 아니지만, III MAF의 특별연구반이 1968년 7월 9일자로 CG III MAF에 제출한 보고서는 상황이 전과 다름없이 열악하며 개선을 위한 조치가 절실하다고 제안했다. 이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한국군과 지내면서 경험한 문제는 무수하다 - 적들에 대해 주요한 군사행동을 주도적으로 취하는 것을 꺼려하는 태도, 광범한 야간 순찰과 매복에 대한 거부, GVN 또는 MACCORDS 고문단 측과의 군사작전 및 민사 프로그램에 대한 부적절한 협조, 한국군 해병 BBD TAOR 전역에서 작전통제의 명백한 결여 및 베트남 시민에 대한 만행에의 가담 등등.


 이 보고서는 더 나아가 “위에 언급한 내용은 중대한 고발이지만, 각각의 주장은 다양한 사례들에 의해 입증된다”고 말하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군의 몇가지 결함을 시정하기 위한 방법을 제안했다. 1968년 7월27일자 MACCORDS의 두 번째 보고서(첨부문서 #6)는 특별연구반과 의견을 같이하면서 “한국군 해병 제2여단은 공세를 취하고 있지 않으며 민간인들에 대한 만행을 범했고 평정계획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보고서는 “정치적 상황과 작전상의 상황이 허락한다면, 한국 해병 제2여단은 평정작전이 벌어지지 않는 지역에 재배치되어야 하며 ...” “그런 지역은 바로 (한국의) 비무장지대이다...”라고 제안했다.


 이런 연구들이 한국군 해병의 문제점에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1968년 10월 21일 밤, 베트콩 1개 소대는 호앙차우 마을에서 야간방어 중이던 한국군 소대에 대해 히트-앤드-런 지상공격을 가해 한국군에 여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첨부문서 #7) 베트콩이 철수하고 여러 시간이 지난 이른 아침 한국군은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고 수류탄을 던지는 등 마을에 대해 반격을 가했다. 이 일방적인 행동으로 22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했으며, 적어도 50여호의 가옥이 100퍼센트 파괴되었다. (첨부문서 #8은 이에 관한 사진이다.) 한국군의 과잉행동에 대한 항의시위는 이틀이 지나서 구장이 개입하여 겨우 잦아들었다. (첨부문서 #7) 그러나 사건이 종결된 것은 아니었다: 10월 31일 CORDS부는 SG III MAF에 대해 “최근의 한국군 해병이 취한 일련의 행동은 쿠앙남 지역의 베트남 사람들의 감정을 아주 악화시켰다. 나는 어제 호이안에서도 작은 시위 여러 건이 발생했고, 성장은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할 기분이 아니라는 보고를 받았다”고 알려 왔다. (첨부문서 #9)


 한국군 해병의 불미스러운 행동은 1969년에 들어와서도 쿠앙남 성 고위고문이 1월 30일자 평정계획에서 지적한 것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변함이 없었다. (첨부문서 #10) 보고서는 한국군이 “고의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NVA 및 지방의 베트콩 주력부대를 피하고 있으며, 평정계획과 지방군대, 또는 FWMAF에 대해 완전한 독립성을 갖고 이를 전적으로 무시하면서 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군의 가장 성공적인 노력은 그들이 암시장에서 벌인 작전이었다. 쿠앙남의 PSA의 2월 보고서는 한국군의 행동을 똑같이 스산하게 그리고 있다. 이 보고서는 ”디엔반, 휴에논, 듀이쑤엔 지역의 대부분이 이 동맹군의 TAOR에 포함되어 있다면, 한국군의 과거의 행태를 고려할 때 이 지역의 평정작전은 이 지역에 다른 동맹국 부대를 대대적으로 투입하는 것을 상급 사령부에서 즉각적인 관심사항으로 삼지 않는 한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첨부문서 #11)

 1969년 2월, 3월, 4월의 상황전개를 보면 이 비관적인 예측이 사실로 들어났다. 구정 이후 2월말에 전개된 공세에서 한국 해병은 아무런 작전에 참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의 주둔지에서 가깝게는 300m, 멀리는 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성의 수도를 방어하는 것을 도와달라는 성장의 요청을 거부했다. (첨부문서 #12) 3월에는 한국군의 암시장에서의 행동이 디엔반, 휴에논, 듀이쑤엔 지역의 MACCORDS 요원들이 자기들이 직접 목격한 사례들을 채 기록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급속하게 증가했다. (첨부문서 #13, #14) 한국 해병은 GVN을 하나의 독립적인 정부로 보지 않는 태도를 견지했다. 또 쿠앙남의 성장, PSA, ???등은 토벌과 군사적 공격작전 두 분야에서 공히 한국군의 무기력이 계속되었다고 보고했다.


 한국 해병들에 대한 민심은 아주 좋지 않다. 성장은 정부 관료와 일반 시민들 사이에 퍼져 있는 반한감정의 깊이와 강렬함 때문에 여러차례 경고를 발했다. 한국군의 또다른 과잉행동(첨부문서 #16)이 있고난 며칠 후인 1969년 4월 22일 성장은 자기 관할 지역 내의 구장들에게 지시문 (첨부문서 #15)을 보내 반한감정이 더 이상 퍼지지 않게 노력하라고 지시했다. 실상 한국군이 동맹군으로서 행동하기보다는 아시아의 점령군과도 같이 행동하는 상황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성장 자신도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성장의 지시가 효과를 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실 성장은 이 문제는 한국군의 TAOR을 병사들과 민간인들의 접촉이 없는 평정작전이 벌어지지 않는 지역으로 옮겨야 해결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첨부문서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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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전을 주도적으로 펼치지 않음.

2. 야간 순찰과 매복을 거부함.

3. 사상자 발생하면 화풀이로 마을을 조져놓음.

4. 고의적으로 NVA와 베트콩 주력부대와의 교전을 회피함.

5. 작전 중이 아님에도 방어요청을 거부.

6. 민심은 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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