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군에서 근무하는 여성이 크게 늘어났다. 전쟁 중반인 1942년 말에 독일 본토와 점령 지역에서 근무하는 여성 참모보조원은 약 12,500명이었다. 독일해군에서 근무하는 여성 보조원은 20,000명 선에 이르렀고, 무장친위대에는 친위대 여성보조원 5,000여 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독일 육군은 독일 적십자사에 의뢰해서 선별한 여성 인력을 여성통신보조원 학교에서 조련했는데, 이들은 병영에서 지냈고 군 계급과 흡사한 계급을 부여받았다. 야전군에서 근무하는 여성통신보조원은 1942년에 8,000명에 이르렀고, 이 수는 전쟁 기간 내내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독일국방군에서 여성 인력을 가장 널리 활용한 병과는 독일 공군이었다. 영미군의 전략폭격이 행해지지자, 독일공군은 여성 공군보조원을 편성해서 대공 업무에 여성을 투입했다. 이들은 대부분 사무원이나 통신원이었지만,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전투 지역에 근접한 곳에서 근무했다. 1941년 말에 35,000명이었던 여성 공군보조원 수가 1945년에는 100,000명을 웃돌았다. 특히 많은 여성이 대공포 보조원으로서 근무했다. 이들은 탐조등과 방공기구와 레이더를 작동하는 일을 맡았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350개에 이르는 탐조등 중대에 여성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1개 탐조등 중대마다 여성 보조원 44명이 배치되어다. 따라서 독일 여성이 전투 근무 수행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병과는 공군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독일군에서 근무하는 여성 인력은 영국의 경우에 비해 비록 수는 적었지만 영국군에서 복무하는 여성 군인과 거의 다르지 않은 일을 했다. 그런데도 독일은 군에 고용된 여성 인력에게 끝까지 군인 지위를 주지 않았다. 독일군에서 근무하는 여성 보조원은 군복을 입고 군율 적용 대상이었고, 사실상 미군의 여성 군인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도 독일은 여성 보조원을 결코 여성 군인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끝끝내 "군에서 근무하는 민간인"으로 분류했다. 유독 독일군에서 여자는 군인의 일을 하되 군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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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내의 여성 보조원들은 화기 사용 훈련을 받지 않았으며, 규정상 화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독소전쟁의 절정기인 1943년에 독일국방군 최고사령부는 아무리 적에게 생포되기 직전의 상황에서일지라도 여성 보조원들은 화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훈령을 내렸다. 독일이 패전의 위기에 몰린 1944년 11월이 되어서도 히틀러는 여성은 화기 조작 훈련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공식 명령을 내렸다.


류한수, 「제2차 세계대전기 여군의 역할과 위상: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비교 연구」, 『서양사연구』제35집 (2005), pp. 140-41, 145-146.


결론: 총기를 사용하는 나치의 여성 전투 인력은 그 존재가 매우매우 의심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