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간지와 싸울 때도 수군이 해상봉쇄에 성공하기 까지
육지 싸움에서 계속 난관었다가 혼간지를 뿌리 뽑은 것도
큐슈 침공 때에도 수군의 역할이 컷던 것도 있었고
호조 가문의 거성인 오다와라성을 포위할 때도
수군이 해상봉쇄를 했기 때문에 포위가 더 효과적이었음
이미 알고 있었음 그리고 실전으로 증명했음
그런데 조선침공에서는 그 수군작전이
충무공에 의해
꼬르르르르륵
근데 이게 충무공이 대단한게
그 균 새끼는 시마즈 요시히로한태
140여척 꼬르르륵 당하고 12척 남았는데
그걸로 또 이겼다는 것임
ㄷㄷㄷㄷㄷㄷㄷ
- dc official App
???:아, 우리는 144척이고 상대는 12척인데 어떻게 꼴박을 참냐고 ㅋㅋㅋ
히데요시는 수군의 중요성은 잘 알았지만 조선 침공에서 수군 관련 작계는 엉망이였음. 그냥 조선에 병력과 물자를 옮기는거만 생각했지 재해권 장악하고 서해로 이어지는 보급로를 만들 계획 같은건 제대로 만들지도 않았음. 심지어 충성심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전국시대에 수군으로 활동했던 해적 군벌들을 배제하고 신생 수군 부대를 건설했는데 이들만 수군으로서 참전시킴. 그 결과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일본 수군이 조선 수군보다 열세였음.
https://namu.wiki/w/%EA%B5%AC%ED%82%A4%20%EC%9A%94%EC%8B%9C%ED%83%80%EC%B9%B4#s-2
구키 요시타카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고 자신이 틀렸음을 좀 알았으면....
틀린바 없음. 히데요시가 자신이 만든 수군만 조선으로 보냈다가 당포 옥포에서 연이어 개박살 나니까 일본에 남아서 성 쌓고 배 만들고 있던 해적 출신 구키를 부산으로 지원 보낸거임.
왜군 상륙은 1592년 4월 안골포해전은 92년 8월인뎁쇼....... 구기 요시타카의 기함은 이미 침공 이전에 건조가 끝난 것이었음
구키가 부산으로 오는 건 옥포 해전 이후로 알고 있는데?
옥포해전 92년 5월 .... 군을 나누어 차례차례 상륙해왔는데 님 말하고 있는 게 너무나도 억지 그 자체임
일본측에서도 그야말로 총력전이었고 해상전을 배제했다 이거 말이 안돼는거임
해상전을 배제한게 아니라 그쪽 계획이 개판이였다고. 해적들 거느리고 있던 고니시, 시마즈도 임진년엔 모두 육군으로만 활동함.
개판이었다고 하기엔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 너무 진심인뎅 ;;;; 그야 관점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난 그렇다고 생각을 안하는지라;;;;
그리고 구키 요시타카를 언급한건 본문에 써둔 내용에 전부 직접 관여한게 구키 요시타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