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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디씨 밀겔에서 문제중년님이 쓰신 글은 퍼 온 것입니다. 자유롭게 퍼 가도 된다고 하셨구요. 지금은 밀겔에서 활동하지 않으시지만 너무 좋은 내용들이라 올립니다. 그리고 디씨라서.. 하오체입니다. 지금은 디씨에서도 하오체 쓰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라고 블로그에 써있는거 다시퍼옴강선에 의해 탄도가 안정되는 원리를 간단하게 이해하려면 자이로(gyro)에 대해 찾아보시면 되오.
회전하는 물체는 회전축을 유지하려는 회전관성의 영향속에 있고 이 원리는 간단하게는 돌고 있는 팽이가 왜
쓰러지지 않고 제자리에서 돌아가는지, 즉 회전축을 유지하려고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에서 기계식 자이로컴
퍼스가 무슨 원리로 작동하냐는 것까지 말해준다오.
극악하게 줄여말한다면 일정 축(이 경우 총알의 비행방향)을 기준으로 회전이 먹여진 총알 = 돌고 있는 팽이
와 같다는 이야기오.

이전, 그러니 총알이나 대포알이 둥그런 구슬모양이었던 시절에 어느 누군가가 골치아픈 화약찌꺼기를 긁어
내기 좋게 대포나 총신 내부에다가 긴 홈을 파는걸 생각하오.
그러다 우연인지 실수인지 모르지만 이 홈이 나선형으로 감겨들어가고 여기에 총알이나 대포알이 물리면 명
중률이 좋아진다는 것을 알게되오.
둥근 구슬모양도 회전시키면 회전축에 대해서 회전관성을 가지는건 마찬가지니.
이게 15세기의 일이었소.
그리고 15세기넘어설 때쯤에 이탈리아의 베레타가가 운영하던 총기제조 공방에서 그후 널리 사용될 강선이
파여진 총신 제조법을 완성하게 되오.
총신속에 갈고리 모양의 절삭날이 달린 막대기를 밀어넣고 일정 거리에 1회전 시켜가며 파낸다는 것이었소.

문제는 강선 총신의 가격이 비쌌다는 점이오.
제조하는데 손이 더많이 갔으니.
이런 이유로 인해 라이플은 18세기들어서기 전까지만해도 결코 흔하지 못했고 18세기 들어서서도 그렇게 일
반적인 것은 아니었소.
당장 그 당시 유럽군대중 라이플을 대대적으로 채용하려던 곳은 없었으니.
또한 라이플이 제역활을 하려면 총알이 강선에 잘물려야 하오만 문제는 이러면 전장식 총기에서는 장전이 힘
들어졌고, 심지어 납총알을 제대로 장전하기위해 망치까지 동원되야할 지경이었으니, 일제사격과 빠른 장전
이 요구되던 이 시절의 정규군으로서는 마음에 안드는 현상이었소.

그러나 라이플이 제역활을 하는 사례가 정규군과는 인연없던 동네에서 벌어지게 되오.
총이 생필품의 하나였던 북아메리카에서 이주민들은 잘맞는 총은 요구했소.
군대에서야 국왕의 호주머니 사정도 신경써야하고 일제 사격과 빠른 장전을 해야했으니 라이플의 인기가 좋
지 못했소만 안맞으면 자칫하다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던 개척자들에게는 값이 비싸도 잘맞는 소총이 필요
했소.
마침 펜실버니아(주로 독일인 이민들이 살았소)에 실력있는 총포공과 대장장이들이 거주했고 곧 이들은 이주
민들이 좋아할 정도로 잘맞는 총을 만들어내게 되오.
바로 라이플이었소.
처음에는 만든 지역의 이름을 따 펜실버니어 라이플로 불리던 이 총기는 변경이었던 켄터키 지역의 사냥꾼들
에 의해 켄터키 라이플이란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오.
구경보다 약간 작은 구슬모양의 납총알을 기름먹인 가죽으로 감싸 장전하고 쐈는데 잘쏘는 사람은 꽤좋은 명
중률을 보여줬다고 하오.

이런 분위기에서 북아메리카에서는 영국의 식민지 운영에 불만을 품었던 이주민, 무관심한 영국국왕과 식민
지에 우호적이지 못한 영국 관리들 덕분에 독립전쟁이 터지게되고 곧 라이플은 영국군을 공황상태에 빠트리
게 되오.
특히 미개척지역에서 사냥이 일상이던 변경의 이주민들이 영국군을 향해 라이플을 쏴대자 이 현상은 더욱 골
치아픈 양상으로 변해가오.
100야드에서 3피트정도의 오차를 가진 총기로 2열횡대로 일제사격을 하는 영국군들은 소수의 반란자들이
100야드에서 3인치짜리 원안에 총알을 박아넣는 라이플로 장교부터 깔끔하게 조지고 차례차례 저격을 하는
데 질려버리게 됐으니 말이오.

1777년 10월 7일, Timothy Murphy라는 민병이 당시의 활강총으로는 도저히 명중시킬 것이라 보이지 않는
400야드 떨어진 곳의 영국군 장교를 라이플로 조준하고 사격을 가한 일은 그 중 가장 압권이었소.
그 날 영국군의 정찰대에서 티모시 머피의 저격에 당한 장교는 Simon Fraser장군으로 밝혀졌고 그의 죽음은
후일 사라토가 전투(the Battle of Saratoga)의 결과를 다르게 만들어 버리오.
영국은 뒤늦게 라이플로 무장한 헤센(Hessen)인들을 고용했으나 어제까지만해도 농사를 짖던 이들은 살기
위해 총을 쏘던 식민지 라이플 사수들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오.

짤방 첫번째는 독립전쟁 당시의 병사들.
1880년대에 미육군의 의뢰로 그려진 그림중 하나라 하오.
가장 왼쪽이 라이플 사수, 그 오른쪽이 미니트 맨, 앉아있는 자는 식민지군 출신의 의용 보병, 가장 오른쪽은 기병이오.

그리고 좀 더 후인 1812년, 뉴올리언스(New Orleans) 전투에서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 휘하의
4,000명이 안되는 라이플 사수들은 목화 짐짝뒤에 숨어 10,000여명의 영국군과 맞서게 되오.
이 전투는 라이플의 위력을 극명하게 보여줬소.
미국인 21명이 사상된데 비해 영국군은 3,336명이 사상당했으니.

18세기가 끝나자 라이플의 가치는 더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버리오.
당장 유럽의 군대들이 바로 라이플을 제식으로 채용했으니 말이오.
그러나 여전히 장전과 효율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었소.
곧잘 병사들은 총알을 총구로 밀어넣고 장전봉을 대고 나무망치로 두들겨서 밀어넣었고 총알은 라이플에 그
렇게 어울리지 않는 둥근 모양이었소.

1826년, Delirque라는 프랑스군 장교가 둥근 총알의 중간부분에 넙적한 띠를 감은 총알을 개발했소.
넙적한 띠를 감아 강선에 물리게한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총구에 밀어넣는 순간 총알 중간의 띠와 강선에 꽉
물리니 장난아니었소.
결과적으로 이 탄을 장전하려면 여전히 나무망치가 필요했소.
총알을 총구에대고 꽉 누른 다음 장전봉을 대고 나무망치로 두들겨서 넣기 위해서 말이오.

1835년, 영국의 Greener란 사람이 길이가 지름의 1.5배인 장방형 총알을 개발했소.
이 그리너 탄은 소총의 구경보다 약간 작아 전장식 강선총에 장전하기도 쉬웠고 뒤에 쇠로 만든 쐐기가 꼽혀
져 있어서 총을 쏘면 쐐기가 총알뒤에 박히며 총알 전체를 팽창시키고 그 결과 강선에 꽉 물리게 되어있었소.
그러나 쐐기가 총알을 절반으로 쪼게고 날아가려는 경향이 있었다 하오.

1840년대에 들어서며 미니에(Joseph Minie)란 프랑스 육군대위가 그리너 탄처럼 전장총에서도 깔끔하게 장
전되며 발사직후 팽창하며 강선에 꽉 물려지는 장방형 총알을 만들어 냈소.
원리는 간단했소.
구경보다 약간 작게 만든 장방형 총알의 뒷부분을 파내고 거기다가 쇠로된 고깔을 하나 박아넣어준 것이오.
총이 발사되어 가스가 총알을 밀면 파낸 부분에 박아둔 쇠고깔이 총알속으로 파고들어가고 그 덕분에 총알은
부피가 증가, 강선에 꽉 물린다는 것이었소.
적어도 그리너탄의 쐐기보다는 좋은 방식이었소.
그의 이름을 딴 미니에탄(Minie ball)은 곧 각국 군대가 채용하게 됐소.

미군은 1850년대에 미니에탄을 도입했고 한 병기 기사가 미니에탄의 고질적 문제점 하나를 개선해 지급을 시
작했었소.
미니에탄의 쇠고깔은 종종 총알을 그대로 관통해서 지혼자 발사되버리는 환장할 일을 벌이기도 했다 하오.
이렇게되면 총신속에는 둥그런 납고리(원래는 총알이던)하나가 끼어버린 셈이되고 이걸 제거하는건 매우 어
려웠다고 하오.
미국인 병기 기사는 이 쇠고깔을 없에버리고 그냥 움푹 파낸 구멍만 남겨둔 것이오.
이렇게 개량된 미니에탄은 곧 미국내에서 벌어진 남북전쟁에서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했소.
이 시대의 표준적인 라이플들은 400야드에서도 사람만한 목표를 충분히 명중시키고 쓰러트릴 정도로 발전했
었던 판이고 미니에탄에 맞으면 그 부분을 되도록 깨끗하게 절단해버리는게 가장 좋은 치료법이었소.
그 결과 군의관들은 어떤 환자보다 미니에탄에 맞은 환자부터 먼저 치료했고 배나 가슴, 머리에 맞았다면 그
건 사망과 동일하게 취급해버릴 정도였소.

1870년대에 들어서며 전장총대신 후장총이 표준화되고 총알의 비행속도가 빠를수록 탄도가 더욱 평탄화되어
명중률이 좋아진다는 경험적인 지식을 얻게 됐소.
그에 따라 총알의 비행 속도를 증가시킬 아이디어가 등장하기 시작했소.
가장 먼저 손을 댄 부분은 총알의 형태를 날씬하게 만드는 것이었소.
같은 질량을 가졌다쳐도 짧고 지름이 큰 쪽보다 길고 가는게 더 빠른 속도가 얻어졌으니.
이에 따라 50이나 60구경대의 소총탄용 총알은 40구경이하로 내려가게 됐소.

한편 총알의 속도를 증가시키는건 좋았지만 한가지 문제가 발생했소.
납으로 만들어진 총알을 총신속에서 빨리 밀어내다보니 물러빠진 납이 그 마찰을 견뎌내지 못했다는 것이오.
대략 200ft/sec이상의 총구속도로 발사될 경우 납으로만 만든 총알은 거의 총강면에 눌러붙다 찌그러지고 부
숴져서 발사되어 버렸고 이건 해결해야만할 문제였소.
결국 해답은 질기면서 유연하고 부드러운 구리나 구리 합금을 납총알겉에다 씌워주는 것이었소.
바로 오늘날 FMJ(Full Metal Jacket)라 부르는 총알이 등장한 것이오.

FMJ가 출현하고 난 뒤, 영국의 한 장교가 새로운 총알을 개발해내게 되오.
이 장교는 막 지급이 시작된 FMJ 총알을 물린 303 Enfield탄의 저지력을 더 증가시키고 싶었나 보오.
그래서 그는 FMJ의 앞부분을 깍아내어 납을 노출시켰소. 오늘날 SP(Soft Point)라 불리는 총알처럼.
곧 그의 고안은 영국군에 채용됐고 이 새로운 총알을 물린 탄약은 영국내만이 아니라 몇십년전 미니에탄을 생
산해 지급하다 세포이의 난을 촉발시킨 인도의 덤덤 병기창에서도 생산되게 됐소.
인도의 부족간 혈투나 혹은 말안듣는 부족들을 때려잡기위해 파견된 영국군 병사들에게도 덤덤 조병창의 신
형 탄약이 지급됐고 병사들은 이 탄이 인체에 그럭저럭 효과를 낸다는걸 알게됐소.
그런데 언론이 설쳤소.
이미 인도의 세포이의 항쟁덕분에 유명해진 덤덤 조병창에서 만든 총알은 기자들이 가장 잘하는 과장 작업을
거쳐 다시 한번 더 유명해졌고 이제 사람들에겐 파괴적인 총알하면 덤덤탄(Dumdum bullet)이란 별칭을 먼저
떠올릴 정도가 되버렸소.
덕분에 \'신사적 전쟁\'을 \'규정\'한 제네바 협약이 이런 총알을 금지시키는 쾌거(?)를 이루게 되오.

1880년 이후로 이제 속도를 더욱 증가시키며 반동까지 좀 더 줄이기위해 7mm이하의 구경을 가진 소구경 경
량탄에 대한 관심도 나타나게 됐소.
또한 이 시기의 총알들은 점차 앞부분이 뾰족하게 만들어지기 시작하오.
그 이전만해도 앞부분이 그저 둥그스름하고 뒤는 길쭉한 원통형인 총알이 흔했소.
그런데 이런 모양의 총알보다 앞이 뾰족하고 길게 늘어진 모습에 원통형 뒷부분이 짧은 총알쪽이 속도면에서
상당히 좋다는걸 알아낸 것이오.
1910년이 넘어가기까지 각국 군대가 채용한 많은 군용탄들이 뾰족하고 길쭉한 앞부분을 가지게 됐소. (오늘
날 Spitzer bullet이라 불리는 것이 이 시기에 정착된 것이오. Spitzer는 독일어로 뾰족한 것이란 의미를 가지
오.)

그후 공기역학적인 연구가 항공기 연구에 맞물리면서 발전하게 되고 덕분에 총알의 모양도 더욱 공기역학적
이며 세련된 곡선으로 다듬어지게 됐고 마침내 총알 뒷부분에 경사를 넣은 boat-tail까지 등장하게 됐소.


p.s:
베레타가라고 했는데 이 집안은 진짜 패밀리 비지니스가 뭔지 보여주는 곳이오.
1526년, 이탈리아 북부  Brescia의 Gardone Val Trompia라는 동네에서 바르톨로뮤 베레타(Bartolomeo
Beretta, 아마도 1498년에 출생한듯 싶은)라는 총포장인이 가업을 이어받아 베레타사를 설립했다 하오.
이 당시, 이 베레타사에 대한 기록은 베니스에서 이 집안에서 총과 총신을 얼마 샀다는 식으로 공문서에 남아
있소.
그 때의 기록을 우리 말로 번역해보면 대충 다음과 같소.

오늘(1526년 10월 3일), Brescia에 있는 Gardone의 장인 바르톨로뮤 베레타로부터 185개의 아쿼버스 총신
을 296 두캇(ducat, 당시의 화폐단위)에 사들였다.

그후 18세기에 들어서며 이 회사는 1대 피에트로 베레타(Pietro Beretta, 1791 ~ 1853)에 의해서 덩치가 더욱
커지게 되오.
그후 그의 아들인 쥬세페 베레타(Giuseppe, 1840 ~ 1903)에 의해 베레타사의 부싯돌 격발식 권총이나 총기,
총기 부품등이 해외 판매도 이뤄지게 되오.
19세기, 1차대전과 2차대전을 거치며 베레타사는 이탈리아군의 주요한 총기 구입처가 됐고 국가 조병창의 역
활까지 하게 되오.

그후, 베레타사는 2대 피에트로 베레타(Pietro, 1870 ~ 1957) 시대에 이르러 더욱 현대적인 생산기법을 가져
와서 총을 만드오.
그의 아들들인 쥬세페(Giuseppe, 1906 ~ 1993)와 카를로(Carlo, 1908 ~ 1984)는 아버지가 확립한 방법을
통해 베레타를 오늘날 세계 유수의 총기회사중 하나로 만들어 버리고.
유명한 베레타 M92시리즈도 이 두 사람 시절에 만들어진 총기고 개발에 이 두 사람이 크게 관여했다 하오.


p.s:
소총이 강선을 채용한 것에 비해 대포의 강선 채용은 좀 늦게 시작되오.
이러나저러나 19세기초에 강선포들이 등장하고 기존에 사용중이던 활강포들도 강선포로 개수되버리오.
당시 활강포의 개수는 다음과 같이 이뤄졌소.

1. 대포의 내면(포강면)을 깍아내고 여기에 강선이 파여진 두께가 얇은 포신을 덧끼워넣소.
가령 10인치 포라면 2인치 깍고 두께 2인치짜리 강선 포신을 끼워넣어 8인치포로 변경하는 식이오.

2. 청동제 대포중 비교적 작은 것은 강선을 바로 파내버리오.

이렇게 개조된 활강포들은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프랑스군을 중심으로 꽤 사용되게 되오.
그런데 당시 포들은 대부분 전장식이었고 소총처럼 장전하는 것이 어려웠소.
그래서 포탄에다가 돌기를 달아주고 요 돌기가 강선을 따라 물리게 해주는 방식을 생각해내오.
오늘날에도 박격포나 무반동포등에서 사용되고 간혹 드물게 본격적인 화포에서도 사용되는 방식이오.
아마도 이런 류의 포탄을 군시절에 다뤄본 햏들도 있을 것이오.


p.s:
덤덤탄과 유사한 효과, 그러니 잘 변형되고 팽창하는, 를 가진 총알은 이미 18세기에도 알려진 것이었고 사냥
꾼들에게는 더 잘 알려진 것이었소.
일례로 18세기경의 사냥꾼이나 병사들중에서는 자신의 총알에 일자나 십자형의 흠을 파버리는 사람도 있었고
못을 박아넣는 경우도 있었소.
맞으면 파버리거나 못이 박힌 주변을 따라 총알이 뒤틀리고 갈라져버리게 말이오.
또 마치 오늘날의 파쇄성 총알처럼 납에 주석을 집어넣어 잘 부숴지게 만든 총알도 19세기에 사용된 기록이
있소.
미국의 버펄로 사냥꾼들이 이런 식의 총알을 꽤 썼다고 하니.


p.s:
총알이 인체의 근육등에서 회전하거나 불규칙한 운동을 하는건 총알의 회전이 없어져서만은 아니오.
총알이 길고 무게중심이 어정쩡하게 잡힐 경우 혹은 총알의 탄착각에 따라 회전과 관계없이 불규칙한 운동을
해버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소.
회전안하는 플레쉐트같은 놈도 불규칙한 운동을 해버리는데다 무게중심의 배분이 소총탄과 다른 권총탄의 경
우 불규칙한 운동을 거의 안하는 경우가 흔한 판에 단순히 회전이 없어져서 그렇게 된다라고 생각할 수는 없
다는 이야기오.
그리고 이런 회전과는 상관없는 것을 적극적으로 응용한 총알도 개발된 적이 있었소.
1970년초에 독일에서 연구된 것으로 영어로하자면 spoon-tip 혹은 spoon_pointed라 불리는 것이오. (독어
로는 Loeffelspitzung)
이 총알은 앞부분이 비스듬하게 움푹파여진 형태이고 이게 숫가락같다고 저런 별칭이 붙었소.
두번째 짤방 참고하시오.
탄착되면 숫가락처럼 움푹 들어간 부분 덕분에 총알에 전도현상(총알 엉덩이 부분이 앞으로 가려는)이 벌어지
려 하고 덕분에 총알 전체가 불규칙한 운동과 큰 상처를 남기게 되오.
문제는 이것 역시도 덤덤탄처럼 별로 좋은 소리를 못들었다는 점이오.
고로 연구단계로 끝나고 실제로 양산은 되지 못했다 하오.


p.s:
총알따위에 강선을 사용해 회전을 걸지않아도 비행중 안정화하는 방법이 있소.
잘 알려진 것으로 날개(안정익)를 달아주는 것이오.
이 역시 한때 진지하게 검토된 적이 있소만 2가지 큰 문제로 전면적인 채용은 안되고 있소.

1. 좋은 성능을 보여주려면 잘만들어야 하는데 잘만들려면 값이 비싸진다.

2. 발사될 때 날개 부분이 파손되는 경향이 크다.

아울러 총알보다는 폭탄이나 포탄에서 이런 날개달린 발사체(흔히 플레쉐트라 불리는)가 \'이미 만들어진 파편
\'으로 선호되고 있소.
클레이모어의 쇠구슬과 같은 파편보다 적은 속도 손실과 에너지 유지, 비행거리등에서 유리하나 위의 1번과 2
번 문제로 인해 역시 적용에 어려움이 있다 하오.
특히 폭탄과 같은 경우 자칫 잘못하다간 2번 문제가 크게 벌어져버린다나...


p.s:
이전에 한번 썼던 거지만...
강선 총신 만드는 법.

먼저 하는 일은 큰 쇳덩이를 하나 받아와 총신굵기의 철봉으로 만드는 것이오.
열을 가해 잡아빼거나 그냥 잡아빼서 철봉을 하나 만들면서 철봉 전체를 고르게 두들겨줘 재료내부의 특이성
을 없에주오.
이렇게 뽑은 철봉을 얼마나 곧은가 검사하고 겉을 다듬고 다시 어느정도 곧은 가를 측정하오.
이런 다음 철봉을 꽉 고정시킨 다음 드릴로 철봉 내부를 파내어 파이프처럼 만들어내오.
이 파이프 만들 때 내부에 만드는 구멍은 원하는 구경보다 좀 작게 만들어 내오.
예를 들어 구경 10mm짜리의 가상적인 총신을 만든다면 9mm정도의 구멍을 내버리고 나머지 1m정도는 좀 있
다 할 작업에서 다시 깍여져 나갈 부분으로 그냥 두는 것이오.
간혹 제조법에 따라 작은 구멍을 내고 그 속에 심봉(mandrel)을 집어넣은 다음 철봉 겉부분을 계속 두들겨줘
원하는 모양의 파이프(?)를 만들기도 할 수 있소.

이렇게 만들어진 관의 내부면을 다양한 지름을 가진 단단한 심봉을 회전시키며 집어넣었다 뺐다하며 파낸 면
을 다듬으면서 다시 깍아내고 단련시키오.
즉, 위의 9mm짜리 구멍이 난 철봉속에 지름이 9.1mm, 9.2mm, 9.3mm, 9.4mm하는 식으로 증가되는 다른 지
름의 심봉을 넣고 빼며 10mm지름까지 만드는 것이오.
그런 다음 내면을 거의 거울과 같을 정도로 매끈하게 다듬고 난뒤에 제대로 다듬어졌는지 검사하고 부숴지거
나 굽은게 없나 검사하오.
이렇게 검사까지 끝난 내부가 단련된 관을 barrel blank라고 부르오.

여기서 이제 강선 총신이라면 barrel blank에다가 내부에 강선을 만들어줘야 하오.
강선을 만드는 방식은 몇가지가 존재하오.

가장 고전적인 것은 갈고리처럼 생긴 절삭용구(갈고리 처럼 생겼다고 hook이라 부르오)를 넣어 barrel blank
의 내면(총강명)에 딱 붙이고 일정 길이 이동할 동안 회전시켜주며 강선을 파내는 것이오.
hook이라고 부르고 이미 500년도 전에 이 방식으로 강선을 만들었소.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이탈리아 북부 산악지방의 한 총기회사 도제가 개발해냈다 하오. (이 총기회사는 지금도
여전히 총을 만들고 피에트로 베레타라고 불리고 있소.)
가령 강선이 200mm당 1회전 하면 hook을 200mm 이동할 동안 1회전 시켜주면 되는 것이오.
이런 방식은 훌륭한 장인이 절삭기계를 사용하여 꼼꼼하게 강선을 한줄 한줄 파면 아주 정밀한 것이 나올 수
도 있소.
그러나 손이 너무 많이 가고 대량생산에는 적당하지 않소.

위의 hook을 쓰는건 느리니 hook이 강선 숫자만큼 달린 절삭용구 뭉치를 집어넣어 한번에 긁어서 강선을 만
드는 방법도 있소.
즉, 6조 강선을 판다면 6개의 hook을 뭉쳐둔 것같이 생긴 6날 절삭용구를 넣어 똑같은 요령으로 파내버리는
것이오.
이런 절삭용구를 broach라 부르오. (여자들 가슴팍에만 달려있는건 아니오.)
이 broach를 쓰는 방법은 지금도 사용중이고 2차대전전까지만해도 많은 강선 총신들이 이렇게 만들어졌소.

위의 hook과 broach는 제작 속도가 빠르다고는 못하오.
그래서 1950년대 미국 레밍턴사의 한 기사가 강선모양이 겉에 찍혀진 쇠뭉치를 집어넣어 확 밀어버려 barrel
blank의 내면에 강선모양을 찍는 법을 생각해 내게되오.
강선모양이 찍힌 쇠뭉치를 button이라 하며 이 button을 쓰는 방법이 현재 가장 널리 사용중인 것중 하나이오.

혹은 강선 모양이 겉에 파여진 심봉(mandrel)을 barrel blank속에 넣고 barrel blank의 겉을 순간적인 강한
힘으로 꽉 눌러버려 내부에 강선이 찍히게 한 다음, 심봉을 빼내는 방법도 있소.
이러면 단시간내에 아주 많은 양의 강선 총신을 제작할 수 있으며 폭이 좁고 단면이 뾰족한 강선을 만들기도
쉽소. (폴리고널 라이플을 만들기 쉽다는 이야기오.)
1930년대말 독일에서 개발된 것으로 hammer forging이라 부르며 지금 많은 총기의 총신 제조에 이 방식이
점점  더 자주 쓰이고 있소.

이렇게 강선을 만든 총신은 내면을 다시 다듬어주고 깨끗하게 만든 다음 내부 면을 보호하기 위해 크롬등으로
도금해버리게 되오.
이전에는 크롬 도금은 잘 안썼으나 2차대전후 크롬 도금은 기본적으로 사용되고 있소.
도금후 닦아내고 다시 다듬은 다음 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