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3장에 휘갈겨 쓴 "논문"


종이 4장 짜리 "논문"


북한 최고의 엘리트 대학, 김일성 종합대학 로비에 전시된 김정일의 "논문"들



(중략)

남산 고급 중학교 교원 출신 탈북자의 증언이나 김정일과 중·고등학교 생활을 함께 한 사람들의 회고를 종합해 보면, 김정일의 성적은 중간 정도였다고 한다.

축구와 낚시, 사냥에 관심이 있었고 남산고중 시절 이미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것을 즐겼으며 학업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며, 황장엽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은 책이나 긴 글을 읽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고 한다.


남산고중을 졸업한 김정일은 당시 북한 사회 지도층에게 널리 퍼져있던 소련 유학 대신에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과 진학을 택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아버지와 소련을 방문했을 때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를 둘러보면서 안내하던 소련 공산당 관계자가 김정일에게 당연하다는 말투로 "이제 동무도 곧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 입학하겠지요?"라고 묻자 "평양에도 김일성종합대학이라는 훌륭한 대학이 있어요, 나는 거기에서 공부할 겁니다."라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이는 소련과 같은 강대국의 오만한 대국주의 성향에 한 방 먹이고 조국의 자존심을 지킨 사례로 북한내에서 선전되고 있다.


이 결정대로, 김정일은 1960년 9월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해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입학날 학교 뒤에 있는 용남산 언덕을 오르면서 즉석에서 삘 받아 지었다는 <조선아 너를 빛내리>라는 시는 북한에서 유명하며 시비도 건립되었고 노래로도 만들어졌다.

이후 재학 중에 '10,000페이지 읽기 운동'까지 전개하면서 장서 5만 권을 독파하고, 갖가지 논문을 저술하면서 학구열을 불태우며 천재성을 드러냈으며, 어은동 군사 훈련에서 학우들을 모범적으로 이끌었다...

라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우상화를 위한 선전이며


김정일은 초중고 시절과 마찬가지로 학업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거의 매일 수업을 빼먹으며 중앙영화보급소로 나와서 영화를 보는 등, 영화에 빠져 지냈다. 심지어 중앙영화보급소에서 김정일을 위해 특별 영사실을 따로 마련해주기까지 할 정도였다.

어쨌거나 김일성종합대학에서도 김정일은 학업에 잘 집중하지 못했으며, 미모의 여학생들을 수시로 농락해 임신시키는 등의 행동을 했다.

대학 시절 발표했다는 졸업 논문을 비롯한 무수한 논문들도 아이디어 초안 정도는 자신이 작성했더라도, 대부분 지도 교수였던 경제학 박사 전용식이 대필해 준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