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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78권, 세종 19년 8월 6일 계해 3번째기사 1437년 명 정통(正統) 2년 [김종서에게 4진의 형세와 앞으로의 추세를 보고하게 하다]



나는 생각하기를, 경인년의 변[여진과의 1410년 충돌]에 여러 의논하는 신하들이 혹은 말하기를, 

‘공주는 사방이 트인 곳이라 방수(防守)가 지극히 어려우니, 혁파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하였고, 혹은 말하기를,

‘경내 수백 리의 땅을 버려서 오랑캐에게 주는 것이 옳겠습니까. 반드시 서로 거느리고 들어가서 살게 할 것입니다.’

하니 태종이 말씀하기를,

강역(疆域)안에 오랑캐가 사는 것은 실로 옳지 못하다. 즉시 이를 쫓아내면 어찌 근심이 있겠는가.’ 

하시어, 혁파하자는 의논을 따른 것이다. ... 근년 이래에 올량합 수백 호가 공주 등지에 침입하여 들어오므로, 내가 이를 쫓아내려고 여러 대신들에게 의논하니, 모두 말하기를,

‘야인들은 강제로 몰아내지 말고 그대로 두고 위무(慰撫)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였다. 의논하는 신하들의 말이 이와 같으니, 태종의 바로 쫓아내라는 뜻에 어떠한가. 수십 년이 못 되어 야인들의 사는 것이 반드시 퍼질 것이다. ... 만약에 '태종께서 쓰시지 않던 계책을 이제 행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옳지 아니하다. 태종께서 즉시 쫓아내라고 말씀하신 것을 능히 봉행하지 못하면서, 다만 이런 말만 하는 것이 옳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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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야인들은 강제로 몰아내지 말고 그대로 두고 위무하는 것이 옳습니다"라는 대신들의 의견을 "강역 안에 오랑캐가 사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태종 발언을 인용해서 반박.
















문종실록 1권, 문종 즉위년 3월 13일 정사 3번째기사, 1450년 명 경태(景泰) 1년 [허후·정인지 등이 대행 대왕의 시호를 고치고자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아니하다]


허후(許詡)·정인지(鄭麟趾) 등이 의논하여 아뢰기를,

"역대(歷代)에 세종(世宗)이라고 일컬었던 군주(君主)는 혹은 중흥(中興)하였기 때문이거나 혹은 창업(創業)하였기 때문이었는데, 대행 대왕(大行大王)은 이와 같지 않은데도 세종(世宗)이라고 일컫게 되면 덕행(德行)을 기록하는 뜻에 결점(缺點)이 있어서 역대(歷代) 칭호(稱號)의 뜻과 같지 않습니다. 청컨대 문종(文宗)이라고 고쳐서 실제의 덕행을 기록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비록 칭호는 세종(世宗)이라고 하지마는, 선왕(先王)의 덕행은 누가 이를 알지 못하겠는가? 더구나 북방(北方)에서 공훈(功勳)이 있었으니, 세종(世宗)이라고 일컫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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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들은 이도의 심볼은 '덕행'이라며 '문종'을 밀었음. '세종'이라 하면 선왕의 덕행에 안 맞는다는 이유.


반면 이향(훗날의 문종)은 부왕이 '정복군주'라며 '세종'을 밀었음. 

최소한 조선 정부 인식으론, '세'는 패왕의 이름이었다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