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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사변이 발발하고 관동군 참모 이시하라 간지는 소련이 군사적으로 약체이면서 중소관계가 최악일때 창청선 이북의 지역을 군사점령하여 포괄적으로 지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소련이 제정러시아 시기에 맺은 조약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적백내전 말기 550만 명에 달했다고 운위되는 적군병력이 1928년 시점에서는 병력 63만 명과 전차 92량의 규모로 축소되어 군사적인 역량도 매우 부족한 시기였다. 두번째로, 위안스카이의 군벌세력이 타도되고 장개석의 정부가 조약거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장쉐량의 정권이 국민정부하에 들어가고 소련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이들의 연합가능성이 낮고 실효적인 대항조치를 취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그러나 연맹의 규약과 9개국조약, 부전조약을 넘기 위해서는 침략의 논리를 넘어서 방어와 민족문제에 대한 논리를 전개해야했다. 따라서 만주국이라는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고 이는 단순히 중국 자체에서 일어난 분열작용의 결과라고 하였다. 즉, 장쉐량의 악행으로 만주의 의지를 잃어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 독립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부전조약에 대해서도 만주사변을 침략의 행위라 하지 않으며, 단순히 자위권을 발동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익침해에 대한 첫번째 논리로, 일본은 조약에 기반하여 일본이 정당하게 취득한 권익을 배신 혹은 불법행위에 의해 중국측이 저해하고 있다고 하였다. 특히, 남만주 철도 부근에 그것과 병행하는 간선 및 이익을 해하는 철도를 부설하지 않는다고 하는 「만주에 관한 청일조약 부속결정」에서의 조약을 깨고 병행선을 부설한 것, 남만주에 있어 각종 상공업상의 건물을 건설하기 위한 토지 혹은 농업을 경영하기 위해 토지를 임차하는 권리가 인정되었음에도 조선농민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철도에 관한 문제는 해석의 여지가 많았다. 규정문 가운데 '부근'의 정의가 중국측에서는 구미에서의 말하는, 12마일에서 30마일로 파악한 반면, 일본은 1902년 중국과 영국간에 체결된 협정에 80마일 이내의 철도금지를 두고 자신들 역시 80마일이라고 한 것이다.
상조권 문제는 1909년 간도협약에서 대한제국 국적 주민은 청국측에서 사법권을 관할한다고 승인되었는데, 한일합방을 계기로 새로운 조약개정을 하거나 기존의 조약을 지킬 필요가 있으나 일본측에서는 어느 것도 행하지 않았다. 이는 간도 주재 조선인의 사법적 처우를 둘러싸고 일본측과 중국측의 해석문제로 이어졌고, 사법적 처우가 명확히 되어있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였다.
두번째는 중국에서 일본통화 배척 및 대일 보이콧이 중국측의 조직적인 지도에 의해 행해졌다는 것이다. 부전조약 제2조의 조문에서 본다면, 중국이 예컨대 일본의 산동성 출병 등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서 보이콧을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일본 국민들은 중국에 대해 연맹차원에서 흑백의 심판이 내려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국제연맹조사단은 일본 국민들이 바라는 것과 다른 방향을 향했다. 리튼조사단은 우선 만주국이 건국 승인과 관련하여 만주 현지인들의 신국가에 대한 태도를 보았다. 거기에서 현지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새로운 국가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살을 확인하였고, 만주 내에 있는 각 민족의 순수하고 자발적인 독립운동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만주문제의 해결을 위해, 중일쌍방과 중일이 각각 추천하는 만주지역의 현지대표자를 더한 3자에 의한 직접교섭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중국이 일본의 경제적 이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부분에서는 이를 인정하고 있지만 일본 국민으로서는 중국에 대한 심판이 내려지지 않고 쌍방에게 잘못이 있다고 하는 것에서 큰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만주를 분리한 중국 본토에 대해 일본은 무역의 대상 및 기업의 시장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관동주와 만주를 제외한 중국 본토와의 무역량은 점차 감소하였다. 이는 당연히 만주국 괴뢰화에 따른 일본에 대한 대항적 보이콧과 관세자주권을 회복한 중국이 보호주의적 관세정책을 취하여 일본제품이 중국 내에서 부진하게 된 것이다. 이후 루거우창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군사충돌로 중국에서 전쟁이 터졌는데, 일본은 미국의 전쟁억지 플랜으로 큰 문제가 발생하였다. 최초에는 전쟁을 행하지 않고 중화학공업화에 매진하려는 찰나에 전쟁이 발발하여 미국과의 연계가 필요한 시점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과의 선전포고시 일본의 함대에 의한 중립국 선박의 임검과 전시봉쇄가 가능해지고, 교전권 행사가 가능해지지만, 이전 조약의 위반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고 중국내의 권리를 모두 상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전포고를 하지 않는 딜레마 속에서 일본 국민들은 전쟁에 어떻게 집중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도쿄제국대학의 행정학 교수인 로야마 마사미치는 이렇게 답했다. - 일본의 군사력에 의해 타파되지 않으면 안되는 두개의 장해가 있다. 하나는 중국 민족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민족주의를 이용하면서 이와 제휴한 서구제국주의이다. - 동아시아의 지역주의적인 질서원리에 반대하면서 그것을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중국의 민족주의이고, 그것을 후원하는 것이 서구의 제국주의였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반봉건상태의 이유는 주로 마르크스주의에서 비롯되었다. 맑스주의자들은 아시아적 생산양식으로 여전히 아시아가 반봉건상태에 있으며 거기에 제국주의 착취까지 겹쳐 아시아 인민들이 고통받는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해방하기 위해서는 아시아의 연대를 통해 서구 제국주의를 타파하고 동아시아 신질서를 건설해야하며 서구자본주의하에 있는 구질서를 타파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내셔널리즘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세계에서 수행해온 것과 같은 보편적 질서원리로서 역사적 역할은 벌써 끝난 것인데, 중국 국민정부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난하였으며, 내셔널리즘의 대립은 아시아의 상태와 농업생산의 실태를 반봉건반식민지로 자리매김하고, 월슨 류의 민족자결주의 이론이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인식을 방해하는 것이 중국의 내셔널리즘이고 그 담당세력인 국민정부와 국민정부를 지탱하는 중앙군은 타도되지 않으면 안되고 그를 원조하는 영국과 미국의 제국주의 국가도 타도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설명되었던 것이다.
이후 미일교섭이 파국으로 치닫고 일본은 미국의 회답을 매우 고압적으로 인식하고 9개국조약을 지키라는 미국의 압박을 교섭결렬로 인식하였다. 이것을 일본과 미국의 양대 혈전의 시작으로 인식한 일본은 이를 천우신조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국민의 결의가 견고하게 될 것이고 국론의 일치 또한 용이할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12월 8일 진주만 기습이 시작되면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다.
갓본영 가즈아
ㄴ 결국 도쿄핫 하나 찍은거죠 뭐
일본 얘네는 중국도 벅차면서 미국이랑 붙는 병신짓을 했네 ㅉ.. - dc App
ㄴ 지들입장에서는 교섭결렬을 곧 전쟁으로 인식해서 그래요 이전부터 주적으로 상정했는데 교섭까지 깨졌으니 뭐...
사실 헐 노트 내놓기 전부터 전쟁각 세우고 있었자너요~
ㄴ 사실 국력이 후달리면 교섭과 국제관계로 풀어야되는데 저것들은 선빵때릴 생각하는게 소름이라니깐요
뭐, 동조영기랑 내각이랑 소화천황은 어케 해보려고 나름 했죠. 늦은 게 문제죠.
근위문마 내각 때부터 글렀는데 뭘 하갔어요. 전쟁 전날에 질질 짜기나 하는 게 답이자너요~
엄... 저는 사실 천황도 전쟁의 단순한 거수기로 생각하지 않아가지고 글쎄요...
그러니까 동조영기 그 자리에 앉히고 조졌죠.
늘 잘 보고 있읍니다
80마일이면 100킬로미터가 넘는데 우리나라 서해안에 철도지으면 동해안에 못짓는 수준이네 논영 인성... - dc App
청일 러일 전쟁이 버릇 발못 들였네 - dc App
본문이 바로 일본의 국가방침에서 주객전도현상이 일어난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지. 분명히 미국같은 열강을 상대하기 위해서 일본의 국력을 늘릴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중국을 침공하는 것인데...... 중국 침공에 미국이 방해되니까 바로 미국을 기습공격하는 어이없음을 보여줌. 결국 일본은 제대로 준비해도 힘든 싸움을 이미 몇년간 전쟁을 치루는 상황에서 전선을 2개로 늘리는 치명타를 스스로 가하면서 개박살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임.
그리고 만주 빼앗으면 당연히 나머지 중국 본토에 사는 사람들이 일본 제품을 사줄 거라고 믿는게 병신임. 일본 제품이 가까운 곳에서 조달가능하고 상대적으로 싸서 구입하는거지 이미 철천지 원수가 된 상태에서는 약간 비싸지만 품질좋은 미제, 영제, 독제등 구미열강들의 물건을 구입하는게 바람직하지. 당연히 일본 제품 판매량이 떨어지니 그걸 이유로 삼아서 중국인에게 물건 강매하려고 본토까지 침공하는 꼬라지 보면 당시의 일본은 먼 미래를 보는 시야는 고사하고 지금 당장 닥칠 일에 대한 생각이 있는것인지 의문이 감.
ㄴ 재미있는점은 조사단이 이에 대해서는 중국의 잘못이 있다고 한거인데요 열강으로 구성된 조사단인지라 일본이 자신들에게 왜 승산이 있을거라 생각했는지 알수있는부분이죠
암튼 일본도 또라이라지만 서구열강도 영 맛탱이간건 매한가지였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