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 시험도 끝났겠다 간만에 술 한잔 했음 ㅡ,ㅡ 취한건 아님
아시다시피 1940년대는 일제가 중일전쟁 같은 침략전쟁을 치르면서 전쟁에 미쳐있을 때로, 당연히 언론에도 엄혹한 검거선풍이 몰아치던 때였음. 물론 1920년대부터 근 20년 동안 조져놔서(?) 그런지 상당히 언론이 고분고분했으나 그럼에도 사건이 터졌는데
1. 김진섭 필화 사건
2. 어린이 작문 삭제 명령
3. 단파방송 사건
이 셋임
1은 당시 매일신보의 김진섭이 "아즉은 염려 없다"라는 글이 문제가 되어 언론계에 종사하던 문인들이 신문사에서 물러나야했던 사건임
뭔말이냐 하면, 매일신보는 1940년 1월 신년호 특집으로 "전시하 예술조선 행진/예술 보국의 대이상"이란 주제로 문화계를 포괄하여 전망하는 기획을 실었음
뭐 제목이 거창하지만 결국 자기네 침략전쟁 선전선동인데, 김진섭이란 사람이 저 위의 제목의 글에서 뭐라고 주장했냐면
전쟁은 설사 그것이 정의를 위한 불가피의 전쟁일 경우에 있어서도 문화의 두려운 파괴자이다. 육탄과 폭격이 국가 최고의 자본인 인간의 생명을 무수히 살상하고 인간노력의 결정인 문화재를 여지없이 파쇄 하는 것이다
라고 적혀있었음.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었고, 언론 검열을 담당한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에서도 넘어갔지만, 조선군사령부(당연히 조선왕조가 아니겠죠?) 참모장 가토가 김진섭의 글을 문제삼고, 헌병대 사령부에 김진섭의 사상 경향, 집필 동기 등을 취조 하도록 지시함
이유가 뭐냐면, 저 내용이 전쟁을 전면적으로 배격하고 반전사상을 내포하고 있으며 암암리에 중일전쟁을 저주한다는 것이었음 ㅡ,ㅡ;; 이뭐병스러운...
아무튼 저 사건으로 인해 김진섭 본인은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서약서"를 쓰는 등의 곤욕을 치렀고(사실 그 전에 전과가 없고 사상적으로 용의점이 없다는 점이 작용했음)
김용만이 기사를 작성한 학예부(현재로 치면 문화부 정도) 부장 조용만은 기획과 원고청탁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물러나 있다가, 같은 해 6월에 재입사해 매신사진순보의 편집을 담당하게 되었음. 사실상 해임과 마찬가지의 처벌이었고
편집국장 김형원은 책임을 지고 사퇴, 사회부장 김기진도 해임되었음(의원해임이라는데... 사실상 권고사직 느낌)
부사장 이상협도 해임된다는 소문이 돌았고 국민신보(매일신보가 발행하는 일어판 주간지) 기자였던 평론가 백철도 연루되는 등, 5명의 문인 겸 언론인이 연루되었음
심지어 경무국 도서과는 니들이 똑바로 못했다는 질책을 받고, 김진섭의 기사가 실린 지면의 발매 반포를 금지하고 차압처분하도록 하였으며
신문지법 상 책임자인 이상협(발행인), 김선흠(편집인)에게 시말서를 쓰게 했고, 검열 담당자에게도 시말서를 쓰게 했음
이걸 본 조선군사령부는 '경무국의 대응이 미온하나 이를 계기로 조선어 신문에 대한 지도 감독과 검열을 강화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참모장 가토가 육군차관 아나미 고레치카에 보고서를 올리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
2는 더 재밌는데
조영희라는 당시 인천 금곡동에 살던 어린이가 '동사무소에서 다 배급해주는데 자기네 동네엔 전표(배급표같은)를 나눠주지 않았다. 그래서 쌀배급을 놓고 이전투구를 벌여서 쌀과 보리를 얼마 못가져왔다. 안그래도 흉년인데 비도 안와 어른들이 걱정이다'라는 글을 올렸었음(200자 원고지 2장으로)
경무국 도서과는 이 글의 삭제를 명령하면서, "어린이의 작품으로서는 명량하지 않고 내용 역시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인정된다. 조선일보는 이 작문을 가작으로 게재하였을 뿐 아니라 선자(심사위원)는 마치 이를 흥미있는 것같이 평을 쓰는 등 시국에 근신하지 않은 필치이다"라고 주장했음
상식적인 말 뿐 아니라 어린 아이의 눈에 보인 세태조차 말도 못하게 할 정도로 얼마나 전쟁에 미쳐있었는지 알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음
3은 검색하는게 더 편할걸? 나무위키에도 잘 나와있으니 스킵
정리하자면, 1940년대에 조차 언론탄압 사례가 있을 정도로 당시 총독부, 조선군 사령부는 소위 시국을 명분으로 엄혹한 검열과 탄압을 가하였음을 알 수 있음
총독부가 패스했는데도 조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