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보참모 중에 퍽 유능해 보이는 빌 윌리엄스라는 소령이 있었다. 그해 이맘때쯤 된 어느 날 그는 롬멜이 독일군 보병부대를 그 믿을 수 없는 이탈리아군 부대 사이에, 그리고 어떤 곳에서는 이탈리아 군대 후방에 배치되도록 전개시켜 놓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윌리엄스의 생각으로는 그 양국군대를 분리시킬수만 있으면 우리는 이탈리아군만으로 구성된 전선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관통해 나갈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소령의 생각이 알라메인의 최후승리로의 길을 닦아놓았다.


10월 23일에 나는 8군 장병들에게 다음과 같은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8군 사령관으로 취임할 때 본관은 우리가 받은 명령은 롬멜과 롬멜군을 격파할는 것이며, 그 일은 준비태세가 되는 대로 즉시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 바가 있다. 이제 우리는 준비가 다 되었다."


그날 저녁 나는 책을 좀 읽다가 일찌감치 취침하디로 하였다. 바 9시 40분, 1,000문 이상의 화포가 일제사격을 시작하고 제8군은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때 나는 막사 안에서 잠들어 있었따. 내가 할일은 별로 없었으며 이따가 내가 필요할 때가 있으려니 하는 생각에서였다. 어느 전투에 있어서나 일이 아슬아슬할 때는 꼭 무슨 변이 일어나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될 수 있으면 쉴 수 있는 동안에 쉬어두는 게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에는 예측한 것보다 일찍 내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되었따. 


제1군단의 기갑사단이 통과할 북부측면의 관통로는 10월 20일 오전 8시엔 완전히 열리지 못했다. 나는 그때 기갑사단이 명령대로 관통로를 향해서 진격하려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 동안에 얻은 인상으로는 그 기갑사단이 활발하지 못한 전투활동을 궁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군단장 허버트 럼젠 중장을 오라고 해서, 사단장들을 앞으로 내보내라고 하면서 만약이 이 이상 더 머뭇거리면 모조리 해임하고 보다 더 용기 있는 사람을 사단장으로 임명하겠다고 말해 주었다. 이렇게 한 것이 그 자리에서 효과가 나타났다. 그날 저녁 6시에는 제1군단의 1개 기갑여단이 북부측면의 관통로에 진격하고 있었다. 그러자 적의 제15기갑사단이 이에 공격을 가해 왔다.


11월 25일은 일요일이었는데 이날에야 말로 정말 위험한 국면이었다. 오전 2시 3분에 제1기갑여단에서 보고가 들어왔는데 남부측면에 관통로를 뚫는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느 사단장은 이 전투에 참가한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 거기서 전진하게 되면 더욱 거북한 입장에 서게 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의 사단은 훈련이 부족했으며 그러한 곤란한 작전에서는 적당치 않으므로 현위치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해 달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군단장인 럼스던(Lumsden) 중장은 사단장의 말에 동의하는 듯한 어조였다. 드 귄간드 참모장은 눈치 빠르게도 오전 3시 3분에 내 작전본부에서 회의가 있으니 참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래놓고 나를 깨워서 여태까지의 경과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잘 했다고 했다.


리즈(Leese) 군단장과 럼스던 군단장이 왔을 때 나는 뒤쳐졌던 제1기갑사단의 1개 연대가 이미 남부측면 관통로에 진격하고 있었으며 새벽까지는 더 많은 연대가 출격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단장은 자기 사단에 너무 많은 사상자를 내고 싶지 않으므로 사단 전체를 지뢰부설지대 후방으로 철수시키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단장을 전화로 불러내어 알아본 즉 사단장 자신이 자기가 지휘하는 기갑여단보다 10마일이나 후방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고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나는 사단장에게 즉시 전진하여 전투를 지휘하라고 단호한 어조로 명령했다. 사단장은 앞으로 진격하는 동시에 자기 사단의 후방이 아니고 선두에서 싸워야 한다고 일러 주었다.


나는 두 군단장에게 작전계획은 절대로 변경이 없다고 말해 주었다. 라는 럼스던만 조금 남으라고 해서 아주 분명하게 말해주었다. 기갑사단은 전진해야 하며 뒤쳐진 기갑사단의 군단장인 그 자신이 그러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을 임명하겠다고 말이다.


오전 8시에 휘하의 모든 기갑전력이 전진하고 있었으며 그날 오전 8시에 내가 완수하기를 원한 진지에 이미 도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