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역사저널그날 최근회차에서 고려사 전공 교수랑 동아시아 유목제국사 전공 교수 2명이 나와서 서로 거란 침공군의 규모가 사실인가에 대해서 짤막하게 논쟁했었는데
고려사 교수는 부정적이었고 10만 명도 많다는 입장
유목사 교수는 다소 긍정적이었음 40만까지는 안되겠지만 그에 준하는 규모였을 거라고
방송이라 짤막하게만 토론했지만, 논쟁을 보면서 느낀 생각은 일단 두 교수 모두 자기 주장에 신념이 매우 강하다는 점이고
다만 유목사쪽 교수가 방송분 기준으로만 따지면 논거가 다소 부실해보였음
1.유목민족이랑 농경민족은 다르다 유목민족 특유의 음식(육포 같은 거)문화 + 현지약탈로 인해서 농경민족보다 식량부담이 더 적고 더 대규모 군대를 동원할 수 있다
2.황제의 친정인데 대규모 군대가 동원됐을 거다 라는데
진술이 다소 주관적인 거 같음
명나라쪽 전선 안정시키고 쳐들어온 병자호란도 홍타이지의 친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몽골군 1만2천명 포함해서 3만4천명 정도였음
몽골도 순혈병사는 수만 명 정도였고 남송과의 전쟁에선 한족병사들도 동원했었는데,
중원에서의 세력이 고작 연운16주에 불과한 거란이 40만명을 저 멀리 떨어진 고려 원정에 보낸다는 것부터 도저히 무리라고 봄 40만은 커녕 15만명도 가능할까 말까인데
당시 거란 인구 해봐야 200만명 남짓일텐데 전체 인구의 20%에 달하는 규모를 고려땅에 모조리 몰빵시킨다.... 글쎄임
금나라가 송나라와 전쟁할 때도 10만명이 좀 안됐던 걸로 기억함
고려사 교수의 근거는 이랬음
1.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고려군 병사 1명이 하루에 먹는 군량미는 700g 이고(오늘날 정량은 한끼에 100g임) 이는 한달에 20kg에 해당하는 양임 당시 고려군이 30만명이라면 한달에만 6천톤의 쌀이 필요하고 3달 정도 전쟁을 치렀으니 18000톤의 쌀이 필요하다는 얘기(10톤 트럭 1800대 분량)
2.임진왜란때 명나라 파병군도 연인원 최대 4만명이었는데, 명나라의 국력으로 이정도 규모의 군대의 보급을 유지하는 데도 그렇게 힘들어했는데 거란군 40만이란 수치는 비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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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인구가 40만아닐까 - dc App
40만까진 아니고 100~150만 정도일 거 같음 200만도 좀 많이 잡은 수치 같은데
여기보단 대체역사 갤에 어울릴 글인듯 - dc App
옛 유목 민족 중에는 전쟁시 자신의 주요 가산, 가족들을 전장 후방까지 대거 끌고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긴 했지만. 거란한테 그런 문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네.
그건 나라 멸망하고 유민들 데리고 망명할 때나 그렇지 나중에 금나라 시대때 거란유민들이 몽골과 손잡고 금나라를 공격하고 나서 멸망시키는데 이때 거란유민세력이 친몽파와 독립파로 나뉘어서 내분이 일어났다가 친몽파가 패배했는데 이때 친몽 계열 거란유민들이 가족들 죄다 이끌고 고려로 들어와서 난리난 적은 있었음 강동의 역이라고
나누기 4하면 될듯? 2차 여요전쟁 거란군 약 10만이 침공, 통주성 앞 집결 고려군은 7~8만.
유목민이라 40만은 솔직히 좀 오바인거같음 - dc App
ㄹㅇ 중국 왕조처럼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도 아니고 - dc App
유목민들은 빠른 기동력이 장점이지 대군이 장점은 아니거든 당장 몽골도 최대 파병이 3~4만명 정도였고 그걸로 유라시아를 휩쓸었는데, 나중에 홍타이지도 조선으로 친정올 때 몽골군 1만2천명 포함해서 3만4천명이었다는 게 학자들의 설명인데, 그러므로 단순히 황제의 친정인 데다가 유목민족 특유의 특징이 있으니 40만명에 조금 모자라는 규모의 원정이 가능하다는 건 다소 두루뭉술하고 막연한 표현이라고 느껴지더라
그 중국 왕조도 명나라가 임진왜란에 1년 예산의 3배인가를 투입했다고 알고 있는데 자국의 경제가 휘청할 정도로 무리한 국력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인원 파병 병력이 최대 4만명에 불과했고 그정도 규모의 병력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했다고 하니까 ㅇㅇ
수렵으로 살아서 라는것도 개솔인게 거란이 유목제국중 정주문화 정착한 케이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