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된 거북선 모형이나 명량 시리즈, 불멸의 이순신 등에선 바퀴달린 목함에 고정되어 화포가 운용되는걸로 묘사한다.
이걸 "동차"라고 부르는데 살짝 문제가 있다.
(참고로 "움직일 동"이 아니라 "아이 동"을 쓴다. 학자에 따라 유모차로 쓴게 기원이라 추정하기도)
문제는 이 동차가 최초로 문헌에 등장하는건 19세기 병법서 "융원필비"라는거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당시엔 없던 물건일 가능성이 높다.
임진왜란 직후 편찬된 서적인 신기비결에서는 (육군 기준) 화포를 쏠 때 흙을 파내고 단단히 다져 구덩이를 만든 후 거기에 화포를 놓고 쐈다한다.
그러면 갑판을 파낼수도 없고, 수군은 어떻게 화포를 쏜건지 의문만 커진다.
그래서 김평원 교수는 사진처럼 생긴 포가砲架를 쓰거나 그냥 갑판 위에 얹어놓고 쐈을거라 추측했다. 당연하지만 이러면 반동 흡수, 재장전이 어마어마하게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승전한 이순신 장군과 수졸들이 대단할 다름
융원필비에 천지현황도있지않나? - dc App
갑판 위에 얹히고 쏘면 이거 계속 파도 울렁거려서 쏘기 개빡셀거같은데
정보탭 ㄱㄱ
반동이 딱히 현대 포에 밀리지 않았다고 아는데 포좌가 손상되지 않을까?
사낭 쌓고 쏘지 않았을까?
포차(砲車)에 화포 올려놓고 쏘는건 화포가 처음 등장할 무렵부터 사용된 방식이라, 동차가 그런 통상적인 포차에서 크게 벗어난 물건도 아니고 임란 무렵에도 동차와 비슷한 포차에 올려놓고 쏘았을 거임. 프레임 형태의 포좌를 만들어 썼다면 포좌가 반동에 의해 이동이 가능하게 밧줄로 여유있게 묶여있었을 것. 어차피 동차도 반동 때문에 밧줄로 묶어서 고정해서 사용해야 했음.
그건 아님 서양도 백년전쟁 시절 화포는 대충 땅에 묻어놓고 쐈음
백년전쟁 후반부엔 바퀴가 달린 수레나 나무로 만든 포대 프레임이 사용됨. 반동 심한 대포를 땅에 파묻어 고정하는게 상당히 곤란한 일이라 좀 더 안정적인 고정 수단을 만들어내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음.
저래쓰면 재장전은 어케하나... 특히 대장군전 같은건 1회 이상 사격은 불가능해보이는데 - dc App
후장식 장전 하지 않을까 - dc App
이열 오버테크놀로지 - dc App
고정끈 풀어서 대포 뒤로 뺀뒤 장전하겠지
fact)당시엔 동차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유압유와 질소실린더로 반동을 흡수하는 원시적인 방식을 썼다. - dc App
팩?트 - dc App
아 좀 아무리그래도 16세기말인데 그정도 원시적인 방법을 썼겠냐
아이 동이었어?
오... - dc App
장전하려면 뒤로 빼야하는데 저러면 어캐함 - dc App
사실 저 동차가 서구 해군 화포방식이라 박연(벨테브레)가 전해준거 아닌가 추측도 있더라 유럽 화포도 육상식은 저 모양이 아니고 중국에 전해진 화포운송 방식도 저 동차 스타일은 아닌지라 유럽해군 포술장 출신인 박연과 동료들이라면 그럴듯 해짐
울퉁불퉁한 육상에서는 동차 질질 끌고 다니기 힘들지만 평평한 선상은 환경이 다르지 않나. 동차가 누가 전해줘야 할 만큼 어려운 발상은 아닌 거 같은데.
이 댓글은 게시물 작성자가 삭제하였습니다.
이건 교수가 틀린 거 같은데
초상화 장군님 인상으로 추정켄데 수병들 어께위에 올려놓고 쐈을거임 반동제어 가능하고 높낮이조절도 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