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글은 김평원 교수의 [거북선 논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참고하여 쓴 글. 해당 서적이 도움이 많이 되니 꼭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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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이 2층이냐 3층이냐는 수십년동안 진행된 논쟁이다. 그럼 누가, 언제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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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미국의 선교사 언더우드는 현재 기록으로 남아있는 자료 중에서 "유일하게" 거북선 실물을 목격했으나, 그는 당연히 조선 수군이 아니기에 내부 구조는 추정만 했다.

만약 그가 사진가를 섭외해 촬영했거나, 혹은 수군 출신이었던 자와 대화해 기록이라도 남겼다면 어떨까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거의 반세기 가까이 논쟁할 수고가 줄었을텐데.


1974년 서울대 선박공학 권위자 K 교수는 언더우드의 도면을 바탕으로 2층으로 복원했고, 적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K 교수의 2층 도면이 정설로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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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76년 서울대 물리학자 N 교수가, 앞서 말한 K 교수를 포함해 해사 교수와 모형 제작자를 직접 자신의 발표회에 초청하고 논문도 발표한다.

거북선은 3층이고, 앉아서 젓는 "서양식 노"가 아니고 서서 젓는 "한국식 노"를 썼다고 최초로 주장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거북선 논쟁의 시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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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저격 당한" K 교수는 1977년 2층설을 유지한다. 그런데 여기서 K 교수와 N 교수의 감정싸움이 시작되는데, N 교수는 "K 교수가 내 발표를 듣고나서 "한국식 노"로 수정했다"고 주장한 반면, K 교수는 "애초에 한국식 노로 수정할 생각이었고, N 교수 발표와는 무관하다"고 대응한다. 

한편, K 교수는 1999년 세상을 뜬 반면, N 교수의 논리를 따르는 후배 학자들이 적극적으로 3층설을 지지하며 현재는 3층설이 유력해졌다. (대표적으로 한산, 노량 등이나 역사 다큐에서도 3층설을 지지한다)


...그런데 좀 문제가 있는 것이 K 교수는 (조선)공학자, N 교수는 물리학자다. 뭔가 쎄하지 않나?

그렇다. 두 교수는 역사 학위가 없다. 이렇게 꽤 큰 논쟁에 주류 사학자들은 거의 참여를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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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문제는, N 교수는 이렇게 서서 젓는 방식을 "한국식 노"라고 주장했고, 거북선은 전통군함이므로 당연히 한국식 노를 썼을거라고 개인적 의견을 펼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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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건 세키부네를 서서 젓는 일본 노꾼의 모습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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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대동강에서 노 젓는 노꾼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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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명나라에선 이렇게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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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N 교수는 노 젓는 방식은 국적과 큰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서 저으면 한국식! 앉아서 저으면 서양식!"이라는 이분법 사고를 주장했고, 감정의 골이 생긴 K 교수도 별 반박을 안했으며, 당시 주류 사학자들도 별 말을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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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이 되어서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앉아 젓는 전통도 있음을 확인. 수직형 노가 아닌, 대각선으로 젓는 노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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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N 교수에게 크게 실망한 부분인데, 이충무공전서(1795)에서 통제영 거북선이 자신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자, 포혈(총 쏘는 구멍)을 거북선 뚜껑에서 거북선 옆구리로 옮겨버렸다...

교수 씩이나 되는 분이 사료를 막 바꿔도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