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미국은 아직 한창 독립전쟁 중), 의회는 군 장교들에게 전역 후에도 복무 당시 월급의 50%를 받을 수 있는 종신 연금을 약속했다.
하지만 고작 2년 뒤 (여전히 독립전쟁 중) 이 연금은 예산을 아끼기 위해 "나중에 주겠다"는 말과 함께 지급이 멈추게 되고
당연히 전역한 동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현역들은 의회에 "군인들의 처우로 실험따윌 했다간 치명적인 결과만이 있을 뿐이다"는 서한까지 써가며 항의했지만 돌아오는 공식 답변은 없었다.
의회는 전쟁 때문에 돈이 다 떨어진 상황에서 새로 돈을 꿔올 구석조차 없었기에 의도적으로 무시했던 것.
1783년 2월, 파리에서 종전협상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당연히 전역할 인원이 훨씬 많아질 것이기에 당시 재무부 장관 알렉산더 해밀턴도 워싱턴에게 "당신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라고 제언한다.
워싱턴에게는 자신과 함께 싸웠던 군인들에게 보상을 해주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었지만 애초에 지급할 돈이 없었던 의회의 입장도 이해하고 있었다.
3월, 미군 병영에서는 의회에게 최종통보를 보내야 한다, 야전장교들이 3월 15일에 모여서 이러한 의견을 내야 한다는 무기명 서한이 나돌았고
워싱턴은 이러한 무기명 서한이 "무질서하고 규칙에 따르지 않는 행위"라고 질타하며 15일에 본인이 따로 회의를 열겠다고 공식 발표하지만
바로 다음 날 병영에서 나돈 또다른 무기명 서한이 워싱턴의 15일 회의는 의회와 붙어먹기위한 수작이라고 주장한다
바야흐로 의회에 대한 미합중국군의 군사반란은 나날이 현실화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15일 고위 장교 회의는 워싱턴이 아닌 호라시오 게이츠 장군이 총괄하게 되었으나 회의 장소에 워싱턴이 급작 방문하여 장교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요청한다.
고위 장교들이 놀란 것도 잠시, 역시 워싱턴이 의회와 붙어먹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분노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워싱턴은 "우리가 피로 세운 제국에 난동과 폭력의 대홍수를 불러일으키러 하는 사악한 자들에 맞서야 한다"며 연설을 시작하곤 의회가 보낸 서한을 품속에서 꺼낸 후 역사에 남은 이 말을 남긴다.
"제군들, 허락해준다면 잠시 안경 좀 꺼내서 쓰겠네, 복무를 오래 하다 보니 이젠 머리가 하얘진 것도 모자라 눈도 거의 멀었거든"
18세기에 안경은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안경을 쓸 만큼 노안이 올 정도로 늙은 사람이 실제로 안경을 쓰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있기 때문인데
같이 복무하면서 워싱턴이 안경을 쓰는 걸 본 적 없었던 장교들은 새삼 워싱턴이, 자신들과 함께 미국의 독립전쟁을 이끈 영웅이 전쟁 끝에 안경을 쓸 정도로 노쇠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워싱턴이 나라를 위헤 한 희생을 직접 보고 나니 봉급을 가지고 뭐라뭐라하는 본인들이 초라해져 보였던 것
지금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시는 아직 군기 규율 하나만으로 장정들을 전열에 세우던 낭만의 시대, 하물며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은 그 낭만의 최전선, 현대의 기사, 장교들이었다.
워싱턴은 안경을 쓰고 의회 서한을 읽어준 후, 곧바로 자리를 나섰고
감동받은 장교들은 자신들의 의회에 대한 충성심을 확고히 하며 근일간 나돌던 서한을 비난하는 선언문을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킨다.
거의 만장일치라고 한 이유는 딱 한명의 장교가 거절했기 때문이다.
워싱턴은 이 장교들의 마음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예산 문제로 결국 종신 연금은 실패하고
장교와 의회의 합의를 통해 전역후 봉급 50% 종신지급에서 봉급 100% 5년 지급이라는 조금 조삼모사스러운 결론을 내린다.
한국에는 수천억을 주고 평화를 산 사나이도 있다 - dc App
몇개월짜리 평화 - dc App
끌올해달라고 하지 - dc App
추하게 재업하는김에 내용도 좀 보충함 ㅎ
굳
이런 이야기 좋네
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