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웃음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말에 공군 예비역 병장 C의 미간이 슬며시 구겨졌다.



서울 대학가의 한 고깃집, 그 날 8시간짜리 기본 훈련을 이수한 C는 훈련장에서 바로 식사 자리로 온 탓에 전투복 차림새 그대로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를 한 점 집어 먹은 C는 불판 밑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을 지긋이 응시하였고 곧 몇 시간 전 예비군 훈련장에서 겪은 일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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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시간, 잘못된 곳에 마침 줄을 섰던 C는 하필 “분대장”으로 임명되어 내심 불편하였다. 불편하다는 게 단독군장에 추가로 쥐어진 펜과 결재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냥 뭐가 불편했다.



오전 일과로 사격과 심폐소생술을 이수한 C의 분대는 병영식당에서 대충 한 끼를 채우고 오후 일과를 시작하였다.



C는 결재판을 펼쳐 남은 교육 일정과 그동안 분대원들의 훈련 퍼포먼스를 확인하였다. 확실히 조기퇴소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계산이 서자 C는 그냥 맘을 편히 비우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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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일과로 남아있던 <각개전투>와 <정신 교육> 중 전자를 먼저 하기로 한 C의 분대는 훈련장 산비탈에 자리잡은 <각개전투> 교육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사건이 터진 <각개전투 훈련장>에 C의 분대가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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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들은 이 엄폐호에서 출발하여 -”



병장 계급의 조교가 교육을 시작하자 C는 앞을 올려다 보았다. 산비탈을 따라 온갖 엄폐물이 있었고 멀리 끝에는 타이어를 잘라만든 마네킹 혹은 무언가가 있었다. 지칠대로 지친 예비군들이 휘두르는 M16 개머리판을 맞아줄 샌드백인 것이 분명하였다.



C는 다시 조교를 바라보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녹색 견장을 찬 조교는 엑스반도에 연막탄까지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조교가 연막탄을 까면 그 신호에 맞춰 약진하라는 내용을 전달하는 동안 C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M16을 움켜쥐었다.



이미 현역 때도 잡아봐서 익숙하다 못해 친숙한 M16의 개머리판에 잔뜩 난 스크래치가 문득 처량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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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막탄 투척!”



조교가 호기롭게 적색 연막탄의 핀을 뽑고는 뒤로 집어 던지자 C의 전투화 밑창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 적색 연막이 시야를 가리면 움직인다는 생각에 C는 엄폐호 위로 고개를 들어보았다.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조교의 모습이 보였다. 평소 관상을 믿지는 않지만 군필이면 대충 보이는 그런 관상이었다.



“잘못 걸리면 ㅈ되는 빡쎈 관상.”



C는 한숨을 내쉬며 빨리 연막이 터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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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조교야 저거 뭐냐?”



분대원 누군가가 외치는 말에 C는 다시 엄폐호 위를 올려다 보았다. 조교 등 뒤로 공기가 일렁이는 게 보였다. 마치 만화에서 오오라가 묘사되는 것 마냥 공기가 일그러지는 게 보이자 C는 순간 혼란스러웠다.




“야! 저거 불난 거 아니야?”




자신의 옆, 그러니까 2번 분대원인 육군 포병 출신 아저씨가 소리치자 C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그래도 후반기 교육이라 산에 가을 낙엽이 많았는데 그 낙엽이 건조한 날씨 그리고 연막탄에서 튀어 오른 불꽃과 만나 불이 붙은 것이었다.




C는 조교를 쳐다보았다. 아까 그 빡쎄 보이던 조교는 어디가고 그저 당황해서 머리가 하얗게 된 전투복 차림 대학생 한 명만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얼타고 있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불길은 낙엽과 마른 공기를 먹어가며 점점 커지고 있었다. 결국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2번 분대원, 그러니까 포병 출신 아저씨가 제일 먼저 몸을 움직였다.




역시 포병 출신이라 그런지 이런 상황에 익숙한듯 하였다.




“조교야, 너는 가서 간부들 모셔오고 아저씨들은 같이 사낭 옮겨서 불끕시다.”




아저씨가 말하는 사낭은 바로 각개전투 훈련장 곳곳에 진지구축용으로 설치된 그 사낭을 말하는 것이었다. C는 순간 소화기나 소화전을 떠올리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C의 분대원 모두 불길을 보며 아드레날린이라도 치솟았는지 포병 출신 아저씨 말에 일사불란하게 엄폐호에서 튀어나와 쌓여있던 사낭을 집어들기 시작했고 C 또한 M16을 등 뒤로 돌려메고는 앞에 있던 사낭을 잡아들었다.




이 상황을 진지하게 보자면 C의 분대 지휘권이 2번 분대원에게 넘어간 모양새였지만 어쨌든 공군 출신인 자신보다는 육군 그것도 불길 잡는 데 익숙할(?) 포병 출신이 지휘를 하는 게 적절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불길이 산 중턱에서 옆으로 번지고 있었고 C의 분대는 산 아래에서 사낭을 쥐고 올라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낭을 양 손에 들고 올라와서 끈을 풀고 흙을 열심히 뿌렸지만 도저히 불길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C는 전투화로 잔불을 전투화로 비벼도 꺼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변은 마른 낙엽 천지에 훈련장이라 흙이 전부 강하게 다져져 있어서 불이 너무나도 잘 번지고 있었다.




그렇게 사낭을 옮기고 흙을 뿌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조교가 후임 조교, 예비군 동대장들과 장교들을 데리고 올라왔다. 그들은 모두 등짐 펌프와 야삽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렇게 예비군 분대와 현역들이 불을 끄기위해 합심해서 달려 들었다.




마침 1호차를 타고 날아온 대대장님은 그대로 달려와서는 부대 경계철조망 밖으로 빠져 나가는 불길부터 잡으라고 악을 질러 대셨다. 등짐 펌프를 짊어진 대위의 표정은 절망감에 물들기 시작했다.




C의 두뇌는 아드레날린에 절여진 두뇌덕분인지 그 이유를 나름 빠르게 추론해볼 수 있었다. 불길이 부대 밖으로 나가 번지면 인근 소방서도 출동할 것이고 그렇다면 부대 자체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를 영영 상실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대대장님의 커리어에 “아주 작은“ 스크래치가 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C는 다시 사낭의 끈을 풀고는 흙을 불길 위로 뿌려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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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불길이 잡혔다.




불에 탈 수 있는 인근 낙엽을 다 미리 치워 화재의 지속성을 억제하는 전략이 먹힌 것이었다. 결국 불이 꺼지자 C의 분대는 이제야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인근 벤치에서 물을 마시던 C의 분대에게 대대장님이 다가왔다.



“고생 많으셨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대장님의 감사와 함께 동대장 영감님들이 예비군들 없었으면 불을 제 때 끄지 못했을 거라고 너도나도 옆에서 거들었다.




“이 분대는 이제 교육 뭐 남았습니까?”




대대장님의 질문에 C는 각개전투 빼고는 <안보 교육>만 남았다고 하였다. 힐끔 손목에 찬 시계를 보니 교육이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C의 손목에는 흙과 검댕이 뒤섞여 묻어 있었다.




C는 이따가 집으로 갈 때 더럽다고 손가락질이나 당하지 않을까 속으로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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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그거 훈련하다 불 좀 난 거 가지고 너무 양념칠 하는 거 아니냐?”



거기에 뒤늦게 합류한 다른 친구놈도 동조하자 C는 친구를 살짝 째려보고는 맥주를 한 모금 머금었다. 알싸하며 시원한 맥주가 그나마 속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나름 공공의 이익(?)을 위해 뺑이를 쳤는데 그런 소리를 듣자 C는 속으로 씁쓸함이 올라왔다. 그것도 공교롭게 전투복 차림으로 그런 소리를 들었으니 말이다.



C는 속에서 점차 퍼져오는 씁쓸함이 과연 아까 전 불을 끄면서 마신 흙먼지랑 연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그런 상황에 대한 익숙함 때문인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