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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의 ‘조선형’ 칙사 인선에 나타나는 한인 배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을 유구・베트남과는 다른 범주에 위치시키지 않을 수 없다. 흥미롭게도 이처럼 조선을 ‘대명’ 중심 질서의 바깥에 위치시키는 청나라의 인식은 강희 연간에 완성된 『황여전람도(皇輿全覽圖)』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황여전람도』의 여러 판본 가운데 1719년에 제작된 동판본(銅版本)은 중화민국(中華民國) 시기 선양에서 발견되어 진량(金梁)이라는 사람이 『청내부일통여지비도(淸內府一統輿地秘圖)』라는 이름으로 간행하였다. 『황여전람도』의 다른 판본들이 모든 지명을 한자로 표기한 것과 달리 이 지도는 일부 지역의 지명은 만주문자로, 나머지는 한자로 표기하였다.

『청내부일통여지비도』에서 산둥 성과 요동 지역, 그리고 한반도가 함께 그려진 부분을 보면, 직성인 산둥 성의 지명이 한자로 표기된 것과 대조적으로 요동의 지명은 만주문자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의 모든 지명이 한자가 아닌 만주문자로 표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청내부일통여지비도』에서 지명이 한자로 표기된 지역은 과거 명나라의 영토였던 직성뿐이고 나머지 지역은 모두 만주문자로 표기되었다. 이로부터 청나라가 자신들의 ‘세계’를 둘로 나눌 경우 조선을 한자로 표기한 ‘대명’ 공간의 바깥에 위치시켰음을 알 수 있다. 지도에서 지명을 한자로 표기한 지역은 한인 출신이 통치에 참여할 수 있던 지역, 즉 한인의 ‘순례권’이었던 반면 만주문자로 표기한 지역은 한인이 통치에 참여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이와 같은 ‘분류법’은 칙사 인선이나 지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만한전석에 관한 서술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청나라 궁정의 공식 연회 요리를 보면 조선의 사절, 몽골 출신의 부마, 달라이 라마, 판첸 라마 등에게는 5등급의 만주 연회 요리가, 기타 국가의 사절에게는 6등급의 만주 연회 요리를 제공하였다. 여기에서도 조선은 몽골・티베트와 같은 범주에 속하였던 것이다.

구범진,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민음사, 2012, [ebook]






1. 청나라는 자신들의 영향권을 둘로 나눴음. 만주(입관전의 청나라)에 숙인 지역과, 중국(입관전의 명나라)에 숙인 지역으로.

2. 이러한 만주-중국 이원체제에서 조선은 '중국'이 아니라 '만주'에 속한 지역으로 취급되었음. 티베트, 몽골과 한 세트. 그래서 칙사에서도 한족은 배제함.

3. 따라서 조선은 직접적으로는 '만주'와, 간접적으로는 '만주에 결합된 중국'과 한 집안이라는 게 당시 다이칭구룬 질서에서 조선의 위치임.

4. 그러므로 요동의 진정한 지배권은, "함께 니칸(漢)을 쳐부수자"고 태종 숭덕황제께 충심으로 서약한 장목대왕의 의리가 살아있는, 그리고 생존한 범만주 어벤저스의 최강국인 대한민국에 있음을 알 수 있음. 삼전도비도 고히 간직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