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절절히 설명해봐야 말만 길어지니 1943년 4월 초와 1943년 7월 초 쿠르스크 지구 소련군 전력 통계를 살펴보십시오. 방어자 측인 소련군이 얼마나 증강됐으며 결국 7월 초에 양군이 맞붙게 됐을 때 전력비가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 말입니다. 공격자 측인 독일군이 질적인 면에서 앞선다고 해도 전체 전력비에서 소련군이 너무 우세해서 돌출부 절단을 과연 시도했어야 했는가 하는 의문까지 듭니다.
* 위 통계는 편제표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실제 병력은 이보다 약간 적을 수 있다. 독일 제9군 뿐만 아니라 모든 독일, 소련군 부대 수치에 일괄적으로 적용되었다. 단, 7월 초에 양군 부대 대부분은 완편 상태였기에 편제표와 실병력 간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 켐프 분견군 소속 독일 제42 군단은 쿠르스크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기에 제외되었다.
<출전: Niklas Zetterling, Kursk 1943 (Frank Cass 2000) 11, 18, 20p>
소련군이 병력 2.5배, 기갑차량 2배, 곡사포/대전차포/박격포 4배, 항공기 2배로 뭔가 전력이 거꾸로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전력이 우세한 측은 방어를 하고, 불리한 측이 공격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독일군 수뇌부는 스텝 전선군을 제외한 소련군 2개 전선군 병력 140만 명과 기갑차량 5,000대를 1~2주 간의 공세로 순간삭제시키려고 한 건데, 문외한이 봐도 불가능한 거라는 생각밖에 안 들죠.
최초 계획대로 4월 말에 쿠르스크 공세를 개시했으면, 100만 명(!) 정도만 처리하는 약간은 수월한 과정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4월 말은 쿠르스크 지구 방어선 보강작업이 거의 돼 있지 않은 시점입니다. 4월 8일 주코프 영감이 스탈린에게 독일군이 쿠르스크 돌출부를 공격할 것으로 예측되니 예방공격이 아니라 방어선 보강을 하고 일단 공세의 탄력을 흡수한 후 대규모 역공을 가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스탈린은 예비 전선군(후의 스텝 전선군)을 보로네시 전선군 후방에 배치할 것을 명령하고 전략 예비로서 이후 역공세에 동원될 것이라 밝혔죠. 4월 10일 시점에서 독일 중부 및 남부 집단군의 전력은 막말로 캣발(Cat Foot)스럽기 그지 없었지만, 4월 말 혹은 5월 초에라도 공격을 안 하면 보강된 소련군의 대전차 방어선에 꼴아박고 자멸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걸 기동전의 대가들인 만슈타인, 호트, 켐프 등 독일군 고위 지휘관들은 분명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독일 남부 집단군 고위 지휘관 전체가 아군의 전력이 강화될 때를 기다려 봐야 그 시간 만큼 소련군도 전력 보강을 하는지라 어차피 공세를 할 거라면 최대한 빨리 하는 게 낫다고 보았습니다. 신예 고성능 전차 판터가 투입돼서 전황이 호전될 거라는 꿈 같은 생각은 애시당초 하지도 않고 있었죠(단, 기갑전의 대가 호 영감은 판터 200대 수령 후 잠시 정신줄을 놓음 -_-;). 그게 가능했으면 티거가 투입된 순간 독일군이 동부전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었겠죠.
북아프리카 전선을 정리한 서방 연합군이 1943년 여름에 발칸 반도로 상륙할 거라 예상한 독일군은 그 전에 어떻게든 결정적 공세를 가해 동부전선을 안정화시켜야 했고 그 적절한 시기는 제3차 하리코프 공방전이 종료된 시점으로부터 1달 후인 4월 말이었죠. 결정적 시기를 놓친 시점에서 전력차는 더욱더 벌어졌고, 실제 공세 시점인 7월 초가 돼서는 그나마 있던 가능성이 0에 무한히 수렴하게 되는 지경에 빠졌습니다.
결정적 시기를 놓친 시점에서 차라리 판터가 포함된 기갑 예비대를 전략 예비로 돌리고 기동방어를 하는 게 최상의 선택 중 하나였는데, 그마저도 선택지에서 제외하고 쿠르스크 돌출부 절단에 올인해서 소련군의 의도에 완전히 놀아나는 모습을 보였죠. 그나마 변수가 있었던 건 프로호롭카 지구에서 하우서의 SS 제2 기갑 군단이 속칭 '전차무쌍'을 찍어서 보로네시 전선군이 잠시나마 흔들렸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이 나치 기갑 충각대의 전차무쌍마저도 우측의 켐프 분견군이 보조를 맞춰주지 뭇하는 바람에 별 소득 없이 끝났죠.
3달 동안 강화된 수비선에 위치한 병력 140만 명과 전차 5,000대를 일주일만에 소련군 전력 목록에서 지워버리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여긴 독일군 수뇌부의 그 무한한 군사적 상상력에 경의를 표해야 할지 비웃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012/10/22 22:36
2대전 밀덕들은 알만한 장갑묘가 작성했던 글임.념글에 관련내용이 보여서 가져옴
아래 링크는 쿠르스크 전투 관련해서 야채가 작성했던 밀글 시리즈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2200023
와...고리키 이새끼 아직 살아 있네 장갑묘 런치고 복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