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11월 29일, 일본육해군공동의 캘커타 진공 "용1호작전"을 준비하기 위해 버마 랑군에 육군전투기대가 집결하였다.


그런줄도 모르고 12월 1일, 연합군의 전폭연합 82기가 또다시 랑군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육군 비행제64전대의 3개중대, 교도비행제204전대, 비행제21전대의 2식복좌전투기"토류" 등 50기 이상의 전투기가 유격에 나섰고 1식전투기"하야부사"는 중폭격기에 공격을 집중, 제7폭격항공군 제493폭격비행대의 지휘관 플랜머 중령기가 공중에서 대폭발을 일으키자 제1제단의 중폭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각각 수기의 하야부사에게 공격당해 4기(라이트대위기, 카펜터소위기, 엘리엇소위기, 매크로우틸렌소위기)가 더 격추당하고 말았다.


후속의 제308폭격항공군에서도 지휘관 오브라이언소령의 B-24가 격추당해 계6기의 중폭격기가 추락했다.


이날, 64전대의 다카하마조장이 B-24의 제2편대지휘관 오브라이언소령기를 격추한것을 시작으로 쿠로에대위, 신도우준위, 카리노조장, 다쿠와조장, 그밖에도 204전대와 21전대가 B-24 격추를 각1기씩 보고하였다.




이외에도 제530전투폭격비행대의 P-51A "머스텡" 다보우즈중위기가 격추당했는데 이것은 머스탱 2기격추를 보고한 64전대의 탄바중위의 전과로 추정된다.


탄바중위는 전날 2식단좌전투기"쇼키"로 민가라돈에 도착했으므로 머스탱의 격추는 쇼키로 달성한 전과인지도 모른다.



한편, 64전대에서는 이시이중위가 B-24의 방어포화에 전사했고 이시다오장이 낙하산강하하였으며 그밖에 적어도 5기가 피탄손상 혹은 불시착하였다.


~(중략)~


12월 5일, 육해군의 전폭 대편대로 인도 캘커타에 진공하는 "용1호작전"이 발령되었다.


공격전날, 마구에비행장군(4개의 비행장으로 구성)에는 육해군의 전투기 100기이상이 집결, 갑자기 400명이상의 근무자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현지의 비행장대대에서는 식기가 모잘라서 바나나잎에 음식을 담아서 내놔야했다.


다음날 미명, 주력의 진공에 앞서 수기의 100식사령부정찰기가 양동을 위해 각지를 날아다니며 레이더기만지를 살포하였다.


제331해군항공대의 0식함상전투기 27기는 횡일렬로 늘어서서 멋드러진 편대이륙을 연출했으며 육군의 전투기대도 차례차례 서쪽을 향해 이륙했고 64전대의 우에다중위는 웅대한 광경에 감동을 느꺘다고 회상하고 있다.



공격대는 진공도중 제258비행대의 호커 허리케인의 기습을 받았고 습격해왔던 브라운대위기는 하야부사가 격추하였으나 비행제98전대는 97식중폭격기 1기를 상실했다.


그러나 그뒤로 일본육해군의 전투기대는 영국군 전투기대를 시종 압도하였으며 일방적인 전투를 벌여 1기도 상실하지 않은채로 격추확실 14기를 보고하였다.


실제로 영국군은 허리케인 10기와 스핏파이어 1기를 상실했고 그중에서 허리케인 3기는 제로센이 격추하였다.


다만 97식중폭격기 17기, 1식육상공격기 9기에 의한 폭격은 폭탄탑재량이 적었기에 물적인 파괴전과는 한정적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보급항인 캘커타가 백주에 일본군의 대편대에 공격당해 폭격기편대가 투탄을 끝내고 유유히 사라져가는 모습은 연합군장병과 현지주민을 심리적으로 엄청나게 동요시켜 역은 피난민으로 가득찼으며 하역작업을 해야할 인도인이 도망쳐버린 탓에 일정기간 항만작업이 지체되었다.


1943년말 시점에서 일본군의 대규모진공작전이 완전한 성공을 거둔건 용1호작전이 유일했다.



출처 : 오스프레이 군용기시리즈 "제2차대전의 하야부사의 에이스"





영국군의 후방주요거점에 대규모공습을 감행한 용1호작전 얘기임.


그리고 태평양의 전황이 급박해지면서 일본군은 인도양에서 이런 대규모합동작전을 실시할 여유가 없어지게 됨.




위에는 간략한 설명만 있는데 같은 저자가 쓴 "버마항공전"에는 좀더 자세하게 묘사되어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