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sillok.history.go.kr/id/koa_10402019_003
광해군 즉위 4년차
임진란/정유란 이후 목장이 붕괴되어
국가에서 상으로 내릴 말조차 구할 수 없음
https://sillok.history.go.kr/id/koa_10703021_001
광해군 즉위 7년차
정유재란 이후 20년이 흘렀으나
목장을 세도가가 경작지로 쓰고 있음.
말들은 자갈밭으로 옮겨져 병들고 굶주림
https://sillok.history.go.kr/id/koa_11006019_012
광해군 즉위 10년차
목장 붕괴는 아직까지 복구 안됨
명나라에서 말 3,4천필을 요구할텐데
도저히 준비가 불가능하다는 신하의 말
https://sillok.history.go.kr/id/koa_11408026_001
광해군 즉위 14년차
이제 병조에서 쓰는 역마조차 없음
역에 말이 없어서, 그나마 있는 말을
교대 없이 다른 지역까지 보내야 함
당연히 있는 말도 죽어나감
이제 궁궐에서 쓸 말조차 없음
왕이 3,40 필이라도 구해오라고 지시함
도저히 못 구하겠는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옴
광해군이 즉위 이후 목장 재건에 실패함(혹은 시도하지 않음)으로써 전기 조선의 기마 위주 군대에서 후기 조선의 철저한 보병 위주, No 기병 편제가 시작되게 됨.
그 직후에 유목민족의 침입인 병자호란이니 ㄷㄷㄷㄷ
동서양 막론 기병은 기병으로 맞상대하는 편인데, 말이 아예 전멸하다시피하니까 너무 선택지가 제한되어버림
그래도 조총이란 선택지가 생겼잖아 - dc App
장창방진 없는 조총임 ㅠ
센코쿠시대에 오다도 그렇고 임란때 신립건도 그렇고 그래도 기병 대 조총병 엄대엄은 조총병이 유리하지않음? 확대해석인가? - dc App
갱장히 확대해석임 방진없는 화승총병은 경무장한 기병에게도 썰리는게 일이었으
오다가문 도쿠가와(훗날 에도막부)가문 연합으로 다케다 신겐의 기병대를 상대한적이 있었는데 처참하게 박살났음........ 얼마나 군략을 잘 부리느냐도 상당히 중요한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듬
개별 회전상황에서는 보병으로 기병 어찌어찌 상대할 수도 있지만 전략적으로 보면 기병이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상황에서 적 기병에 대응하려면 이쪽도 기병으로 대응하는수밖에 없음. 현대전 이전에는 무조건 기병이 전장주도권을 가져가는 구조임
당장 테르시오도 초기엔 장창병 비율이 높았을걸
조총도 잘 훈련된 사격통제가 있어야 기병과 제대로 맞다이를 뜨지 17세기 후금과의 전투 양상을 보면 결국 징집병따리는 훈련량 부족으로 허공에다 마구 쏘다가 돌파 한번에 몰살당함 - dc App
조총이 만능이면 플린트락에 총검 달아쓰던 서양에선 후사르가 활약도 못했지... - dc App
ㅁㅊ
목장이 없어져서 그랬구나
ㅇㅇ 조선 전기에는 올기병 편제 같은 것도 꾸리는데 후기 가면 보병 만에 기병 300 이런 식
임란이 비록 조선의 승리이긴해도 피해가 무지막지하게 컸음 시발것들 - dc App
제주도에서 나오는 것만 가지고는 감당이 안 됐나
정부에서 쓰는 역마도 붕괴한 상황이니 뭐 ㅇㅇ 그렇다고 봐야... 그래서 후기 조선 군제나 진법 보면 기병이 전멸상태임
좆되네
훈련도감에 마병있지않았나? - dc App
실제로 조선 후기 병학지남이나 이런데서 제시되는 진법을 보면 기병 비율이 5% 미만으로 나옴
명목상의 기마야 있었겠지만 실제로 전선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 병종으로서의 기병은 거의 소멸한 상태
선조 시절에 임란 직후 여진 토벌 같은것도 몇번 있지 않았음? 그때 병력 구성을 봐야 기병 줄어든 원인이 임란 피해인지 광해의 실정 지분이 더 큰지 검토가 될듯
임란 피해로 목장이 다 날아갔고, 광해 대에 이걸 재건하자는 건의가 나오는데 미온적으로 대처해서 결국 목장 자체가 없던 일이 됨
아이고... 후대의 인조 효종도 제대로 복구 못한거면 거의 200년치 축적된 노하우랑 인프라 자체를 날려먹은건가
ㅇㅇ... 시간적으로 텀이 짧은 광해 대라면 그나마 복구할 희망이 약간은! 있었을지 모르겠는데, 여기서 한 세대 이상 지나버리면 관리인력도 다 사라지고 인프라도 처음부터 쌓아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 그냥 뭐 망했다고 봐야겠지....
세도가 누구길래 목장 부활을 막았나는 나오나? - dc App
목장 재건이 안된 이유는 인구압때문임. 임진왜란 도중부터 농업 생산력 부족으로 목장을 둔전으로 바꿨고 이후에는 인구압으로 목장을 둔전으로 바꾸는게 불가피해짐. 조선 후기에 화전이 성행한 이유도 더 이상 개간할 땅이 없어서였음.
그리고 기병이 없어진게 아님. 호란 이후 다시 기병 육성에 힘을 실어서 18세기에는 중앙군에도 다시 기병 초가 편제되기 시작했고 평안도, 함경도, 경상도 같은 지방에는 별무사, 친기위라 불리는 정예기병대가 편성됨. 물론 조선 후기는 보병 중심인게 맞지만 기병이 아예 없어진게 아님. 18세기 기준으로 지방군 군액이 366,000명인데 그중에 기병이 42,000명이었음.
친기위가 다 합쳐도 3천, 훈련도감 소속 별무사도 수백 수준 아닌가?
18세기 초 숙종 대에 유명무실해진 친기위 부활시킨게 함경도 다 합쳐도 6-700. 이외 도에 설치 없고 각지 목장 말 끌어다 쓰고 있음.
정조 대에 친기위 함경도 다 합쳐도 천. 그나마도 마을별로 십수곳에 분산배치라 수십명 단위. 마병은 기강해이로 말 병들어 있다는 묘사. 보병으로 바꿔버리는 묘사.
영조대에 수원부 소속 마병이 장부상 6초나 되는데, 말을 가진 자가 드물어서 아예 해체해버린 기록...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충청도는 감사 휘하에 별무사 360명에 마병, 즉 기병 2초가 배속되고 병사 휘하에는 마병 7초가 배속됨. 전라도는 겸병사에게 마병 2초가 배속됨. 경상도는 감사에게 마병 10초, 별무사 962명이 배속되고, 경상좌병사에게 우영겸마대 2초, 경상우병사에게 별무사 425명, 마병 6초가 배속됨. 충청도와 전라도는 최소 기병이 전체 병력중에 10%는 차지해서 기병이 없어졌다 칠 수준은 아님.
별무사 친기위 줄 말도 없는 거 감안하면 / 장부상 마병 편제인 병력들 말 없어서 해체한 사례 보면 10퍼는 상당히 의문스럽네. 별무사 이외의 마병이 문제임 얘네는 자기마련이니까
1778년 국가 전체 기병이 2.6만. 그런데 얘들이 말이 없어서 서로 빌려쓰고 돌려쓰니 그냥 감축하고 남는 돈으로 말 사자는 묘사.
실제 말이 존재하는 기병을 후하게 66퍼로 계산하면 대충 나라 전체에 있는 기병이 1.7만정도 되겠네. 한 장소에 모일 수 없는 구조인 점은 차치하고 대충 속오군 19만이니까 8퍼 9퍼 될듯.
조선이라고 마병 육성을 손 놓은건 아니라서 승정원일기에도 마병에겐 급료로 콩 6~9두를 추가 지급했다하고, 다른 병종과 달리 마병은 보인을 반드시 2명으로 배정해서 두었다고 함. 하지만 인구가 급증하는 조선 후기에 소는 늘어나도 곡식도 먹여야하는 말을 늘리는건 한계가 있었고 19세기 초 농업생산력이 하락하면서 기병이 아예 사라지다시피하게 됨.
실제 말의 보유를 6.6할로 잡고 지방군 총 36.6만에 실제 군마보유 기병 2.8만이면 7.6퍼쯤 되네. 없진 않은데 동시기 군대들 생각해보면 턱없이 적은 비율이란 정도로 정리가능할듯.
아 어쩐지 임란 이후로 기병 이야기를 들은게 없는거 같던데 싶었는데 목장이 사라져서 그랬구나;; 괜히 조총병 원툴메타가 된게아니었네 - dc App
집짓지말고 말목장이나 지었으면 얼마나 좋아
인구는 계속 느는데 개간할 땅이 없어서 산에 화전 놓던 시절이라 말목장을 더 지을 여력이 없음.
임진왜란 때만 했어도 신립 그것도 있고 기병으로 보급선 습격한 얘기도 있고 했었는데 그이후 아예 끊겼구나 - dc App
말도 말인데 한국에서 있던 말은 조랑말이어서 품종관리조차 쉽지 않았을거임 인공수정이 없어서 새끼 갸챠가 너무 심했어
진짜 조선은 왜란이후로 운터맨쉬 되버렷네
병자호란때 소수지만 마병이 동원된거나 인조때 이인좌의 난에서 마병들이 활약한거 보면 복구는 된거 같긴 한데 조선전기처럼 되지는 못했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