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개시일인 6월 6일의 공격은 전격적으로 하나의 경이였다. 날씨는 좋지 않고 바다는 파도가 세었다. 그러나 우리 군대는 사기가 왕성하였고 적지에 상륙하였다. 우리는 서서히 전진하여 교두보를 확대해갔다. 6월 10일까지는 모든 불안이 사라졌다.
이윽고 앞으로의 전쟁수행에 현저한 영향을 끼칠 사태에 부딪치게 되었다. 북프랑스 전투에 관해서는 온갖 논평이 있었다. 나의 친우인 아이크는 이제야말로 나의 견해를 피력할 때가 왔다는 데 동의하였다.
노르망디에서의 지상전투에 대한 나의 주요계획은 적의 주력을 우리 진지의 동부측면에 있는 영국군 전선으로 유인하여 미 제1군으로 하여금 적의 서부측면을 돌파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내 계획에 관한 한 나는 여지껏 이를 변경할 아무런 이유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동부측면의 교두보로부터 돌파해 나가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처럼 단순하고도 기본적인 구상에 대한 오해야말로 영미군 간부들간의 상호 충돌에 책임이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든다면 합동참모본부에 대한 아이젠하워 장군의 1945년도 보고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러나 동부에 있어서 아군은 센 강을 향하여 돌진해 갈 수 없었다. 적은 주력을 캉 지구에 집결시킴으로써 우리가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그 지구에서의 근거지를 확보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었다. 우리는 영국군과 캐나다군으로 하여금 동부측면을 장악하고 있는 독일군을 고정시키게 하는 한편 미군으로 하여금 서부측면에 있는 교두보로부터 돌파해 나가도록 하고 있는 만큼 우리의 계획은 신축성이 있는 것이었다."
이 보고서는 마치 영국군과 캐나다군이 캉 지구에서 실패하고 따라서 미군이 서부전선으로 돌파해 나가는 일을 도맡은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영국 제2군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아이젠하워 장군 자신이 흔쾌히 찬성한 기본계획을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명백한 증거인 것이다. 이러한 그릇되 생각은 최고사령부에서만 떠돌고 있을 따름이었지 노르망디에서 실제 전투를 지휘하고 있는 고위 장성들은, 심지어 브래들리 장군까지도 실제 계획에 대해서 이를 불신하거나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에 관련하여 아이젠하워 회고록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러한 정지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가능한 모든 수단을 고려하고, 나는 몽고메리 장군에게 그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이를 강력히 추진하라고 몇 번이나 거듭해서 재촉하였다. 그는 공격에 공격을 거듭하였으나 독일군의 저항은 분쇄되지 않았다. 6월 30일에 이르기 전에 몽고메리 장군은 캉 배후의 보다 더 국한된 전선으로부터 진격을 개시하여 적진을 돌파해야만 하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이 분명하였다. 그럼으로써 처음에 예상한 것보다 한결 어렵고 괴로운 짐이 미군의 어께 위에 놓였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7월 중순에 이르기까지의 신문보도에는 차츰 초조한 빛이 떠돌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아군 교두보가 교착상태에 놓여 있는 것처럼 비쳤던 모양이다.
브래들리 장군의 돌파작전은 7월 초순에 실시되었으나 이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윽고 캉 지구에서 소규모 작전이 전개되었는데 신문들은 이것을 동부측면을 돌파하려는 계획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다.
일부의 잘못은 나에게 있었다. 이 전투 동안에 있는 기자회견에서 내가 너무 득의만만한 태도를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착오는 브래들리 장군이나 나나 우리의 모든 계획의 기초가 되는 진정한 전략에 관해서는 기자단에게 말해서는 안되겠다고 서로 약속한 데 있었던 것이다.
브래들리 장군은 그의 저서 "한 군인의 이야기"에서 말하고 있다.
"몽고메리 장군이 맨 먼저 할 일은 아군이 셰르부르를 쉽사리 확보하여 적진을 돌파할 수 있는 위치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독일군을 영국군 전선 앞으로 유도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문기자들은 캉 지구 그 자체의 중요성을 너무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몽고메리 장군이 그 지구 점령에 실패했을 때 그들은 작전이 지연된다고 장군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몽고메리 장군에게 이 허물을 돌리지 않아도 좋았더라면 우리는 우리 전략의 전부를 연기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미군 전선에서 최후의 돌파작전을 개시할 계획은 7월 18일까지 수립되었는데 나는 이를 승인하였다."
돌파작전은 7월 25일에 전개되었다. 미군이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였으므로 적군이 전 전선에 걸쳐서 완강한 반격을 가해올 것은 뻔한 일이었다. 적의 전선은 화살처럼 뒤로 휘어져 들어갈 것이 틀림없었으나 대신 적은 중요지점에서 진지를 다시 구축할 것이다. 우리는 이 중요지점의 관문을 격파할 계획을 세웠다.
참고: 몽고메리는 상륙 이후 캉을 일주일 내에 점령하겠다고 기자들 앞에서 호언장담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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