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군이라는 닉으로 활동해던 아재가 2007년에 작성한 글임.
개인적으로는 국내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FAA(영국해군항공대)에 대해 개괄적으로 잘 정리한글이라 봄
< 개전시 >
1939년 9월, 제 2차 세계대전 발발시 현역함대에 전개중인 영 항공모함과 항공모함 전개 해군항공대(Fleet Air Arms/이하 FAA) 탑재기 요목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항공모함>
아크. 로열 - 소드피쉬 뇌격기 42기, 스큐어 함폭 18기
퓨리어스 - 소드피쉬 뇌격가 18기, 스큐어 함폭 8기, 볼튼볼 락 함전 4기
커레이져스 - 소드피쉬 뇌격기 24기
글로리어스 - 소드피쉬 뇌격기 36기, 시.글래디에이터 함전 12기
허미즈 - 소드피쉬 뇌격기 9기
이글 - 소드피쉬 뇌격기 18기
이 개전시를 기준으로 하면 현역 항모 항공대의 전력은 항공모함 6기에 함재기 189기였습니다만 문제라면 그중 함상전투기는 고작 16기........orz(게다가 그중 4기는 전방으로 사격이 불가능한 볼튼볼 락!)밖에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운용개념에 대해선 다음편에 정리해 후술하겠습니다만 여기서 일단 간단히 설명하자면, 전회 말미에 밝힌 영국해군의 함상기 운용교리 정립에 따라 당시 영국해군은 스큐아 함폭(이것도 26기밖에 없었음!)에 전투기로서의 임무(덧붙여 제 2차대전시 영 해군항공대의 첫 격추는 아크.로열 소속의 제 803 해군항공대의 블랙번 스큐어)도 함께 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개전시 영 FAA에서 함상전투기 전력을 시.글래디에이터 12기, 스큐아 18기, 락 6기로 해서 총수 36기로 정리한 자료들도 있습니다만 그렇다해도 이 전투기 숫자는 비정상으로 적은 비율이었지요.
이게바로 (문제의)볼튼볼 락....orz
즉......이따 후술할 영국해군의 항모 운용사상은 둘째치더라도 뭐 이래서야 문제가 있단것은 영국 해군성도 분명히 인식했습니다. 그때문에 이글등의 항모에서는 임시편성으로 시.글래디에이터 함상전투기 3기를 추가로 배치했습니다. 이 추가 배치가 이뤄진 시점에서 이글은 지중해함대 소속이었으므로 이 3기는 영 지중해함대 항공모함 작전기중 유일한 함전부대가 되었지요. 하지만 어쨌건 임시 편성이므로 이 3기의 탑승원중 2명은 원래 뇌격기 파일럿이었습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항모 이글은 이 3기로 2개월간 이탈리아 공군기 11기를 격추했으니 꽤 흥미롭습니다 ㅎㅎ
이후 1940년에 들어선 항공모함부대에 정규 전투기소대가 배속되었으므로 이 임시소대는 해산했습니다만 이후도 영국해군에서 전투기에 대한 배치문제는 그들의 운용교리 문제도 있고 하여 꽤 옥신각신한 끝에 1년 후인 1940년 9월 시점 영국해군의 함상전투기는 시.글래디에이터 15기, 스큐아 33기, 풀머 30기로 총계 78기까지 증가했습니다.
그렇지만 영국을 포함한 당시 세계 3대 해군 항모 운용국인 미국과 일본 해군에 비하면 순수한 제공전투기의 숫자는 아직도 적었습니다. 이후 마틀렛(F4F)이라던가 시.허리케인, 파이어플라이등의 여러 기종이 점점 증가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영국 항공모함부대에서 함전의 숫자는 적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영국해군 해군항공대(FAA)의 탑 에이스는 에반스 소령으로 최종 스코어는 16.5기(요즘 기준으로 하면 6기)인데 그는 스코어의 대부분을 풀머(...)로 작성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공군기와 교전중인 FAA 시.글래디에이터. -ㅅ-;
< 서전기 >
1939년 9월, 제 2 차 세계대전 발발시 현역 전개중인 영국 항공모함 여섯척의 소속부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괄호안은 모항)
본국함대(스카파플로우) - 아크.로열, 퓨리어스,
지중해함대(알렉산드리아) - 글로리어스(전몰)
해협함대(포틀랜드) - 커레이져스(전몰), 허미즈
동양함대(싱가폴) - 이글
이 시점에서의 주적은 독일 해군이며 이탈리아, 일본은 아직 참전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소련과 미국도 중립국이었으므로 당연히 바렌츠해의 선단 호위전도 발생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이후 유럽수역에 있어서 영국해군의 전투는 이하 큰 네개의 수역에서 전개되게 됩니다..
- 본국 주변수역, 지중해 수역, 노르웨이 수역, 대서양 수역 -
이중 어디서 어떤 해전이 발생했는지를 후의 일까지 포함해서 간단히 요약해보면......
본국 주변수역:체르빌스 작전
지중해수역:마타판 해전, 칼라브리아 해전, 캐터펄트 작전, 비거러스 작전, 하푼 작전, 페데스탈 작전 등 다수
노르웨이수역:나르빅 해전, 바렌츠해 해전, 북해 해전
대서양수역:라플라타 강 해전, 대 U보트 전, 비스마르크 추격전 등
대략 이렇습니다만 개전과 서전기에는 아직 노르웨이가 중립국이었으므로 불꽃튀기는 장소는 역시 본국수역과 대서양 수역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그 해역에 전개중인 영국 항공모함은 4척이었습니다. 하지만 개전 17일째에 항모 커레이져스가 독일 잠수함 U-29의 뇌격에 전몰했습니다.-_-; 또한 이 시점에서 가장 우려해야 할 적은 독일의 통상파괴함이었으므로 따라서 통상파괴함을 구축하기 위해 영 해군성은 다수의 킬러부대를 편성했습니다. 이 조치에 의해 아크.로열은 Force-K, 허미즈는 Force-M/N부대에 편입되었고 (프랑스 항공모함 베른도 영국의 Force-L 부대에 편입)이글은 실론을 거점으로 인도양에, 글로리어스는 홍해에, 퓨리어스는 북대서양의 항공초계에 투입중이었습니다.
1940년 1월부터는 지중해함대의 글로리어스가 본국함대에 편입되어 유럽해역에서 작전항모는 다시 4척이 되었지만 (글로리어스 대신에 지중해함대에는 동양함대의 이글이 편입, 하지만 이글이 지중해에 전개한것은 40년 5월 이후) 40년 4월에 독일해군이 발동한 노르웨이 침공(베져 연습작전)의 와중 6월에는 글로리어스가 독일 순양전함 샤른호스트 및 그나이제나우에게 격침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달(1940년 6월) 이탈리아가 추축국측으로 참전함에 따라 지중해 해역에서의 전투도 시작되었지요. 물론 6월 노르웨이 항복에 의해 노르웨이 해역의 싸움은 일단 막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딱 일년 후인 1941년 6월 소련 참전에 의해 이 해역의 전투는 또다시 재연되게 됩니다.
항모 이글
즉 독일에 더해 영국 다음가는 유럽의 대해군국 이탈리아를 상대로 2대국 전쟁을 치뤄야하는 이 시점(1940년 6~7월)에서 영국해군이 현역에 투입중인 항공모함은 4척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싸움터가 될 지중해에는 항공모함이 이글 1척밖에 없었지요. 보통의 해군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움츠려들기 마련입니다만 어떤 때라도 기합 폭발, 감투 정신 왕성한 영국 해군은 이 상황에서도 아크.로열과 허미즈를 지중해로 회항시켜 이글과 함께 이탈리아 함대를 마구 덮쳤습니다. -ㅅ-;
또한 영 해군성은 프랑스 전역이 위험해지자 프랑스 해군 함정이 독일에 접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캐터펄트 작전을 발동, 영국 항공모함부대는 바로 전까지 우군이었던 프랑스 함대도 가차없이 마구 덮쳤습니다. -ㅅ-;
< 이탈리아 참전후 지중해에서 영 항공모함부대의 전과 >
1940년 7월 5 일 - 이탈리아 구축함 제피로 격침, 유로 대파 (이글)
7월 6 일 - 프랑스 전함 덩캐르크 대파 (아크.로열)
7월 8 일 - 프랑스 전함 리슐리외 격파 (허미즈)
7월 9 일 - 전함 워스파이트와 칼라브리아 해전 참가 (이글)
7월 20일 - 이탈리아 구축함 판카르토 격침 (이글)
그리고 한달 뒤인 1940 8월, 기대의 최신예 장갑 항공모함 일러스트리어스가 취역했고(준공은 40년 5월) 이 신예 항모는 불과 한달만인 9월중에 지중해 수역에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지중해를 무대로 한 격렬한 해상 항공전의 주연이 모두 등장한 가운데 본격적인 지중해 항공전은 그 막이 올랐습니다. 영국해군 팬으로써 이 시점에서 일러스트리어스의 등장은「기다리고 있었다!」라는 느낌이랄까요 핫핫.
이 일러스트리어스급이 전쟁 내내 영국해군에게 준 의미는 대단했습니다. 자매함 포미더블의 준공이 1940년 11월, 빅토리어스가 1941년 5월, 인도미터블이 1941년 10월이지만 잇달아 준공한 이들 4척의 자매....( 영 장갑 항공모함의 5번함이 되는 인디패티게이블이 1944년 5월, 6번째인 인플라케이블은 1944년 8월에야 준공되므로 이 2척은 대전 말기 밖에 활약할 기회가 없었지요.) 들로 제 2차 세계대전시 영국 항공모함부대는 유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겠지요. 왜냐하면 개전시 현역부대에 배치중이던 영국 항공모함 6척 중 2척이 이탈리아 참전 전에 이미 전몰했고(글로리어스와 커레이져스) 나머지 4척중 3척 또한 1942년 말의 격렬한 해상 소모전을 기점으로 전몰해버렸거든요.
그리고......이 일러스트리어스의 취역과 더불어 1941년 9월의 시점에서 영 항공모함부대가 탑재하고 있던 항모작전 함상전투기들의 숫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다렸다! 일러스트리어스! -ㅅ-;
<1941년 9월 기준 FAA 함상전투기 요목 >
시.글래디에이터 5기, 풀머 58기, 시.허리케인 34기, 마틀렛(F4F) 32기, 총계 129기.
전술했다시피 개전시(1939년 9월) 영국 해군항공대의 주력함전이 사실상 스큐어(후술하겠는데 함폭이지만 사실상 함전 겸용), 1년 후인 40년 9월까지 스큐어와 풀머가 반반이었는데 비교해 개전후 2년이 지난 이 시점에는 풀머가 완전히 주력함전의 자리를 꿰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그렇다면 3년째는?
페어리.풀머. 보기 드문 복좌함전이죠. 그 비밀은 다음편에(!) 밝혀집니다.
< 3년째의 싸움>
지중해 전투가 시작됨과 동시에 영국 항공모함이 종횡무진 분전한일은 이후 서술할테니 여기선 생략하겠습니다만 아까 언급했어야 할 것을 잊은것이 두 개 있습니다. 이 시기쯤이면 개전 시점에서는 예비함이었던 사상 최초의 항공모함 아거스(요컨데 세계에서 가장 구식 항모....-ㅅ-; 탑재기도 20기였지요)가 개장되어 재취역, 또한 1940년 7월에는 영국해군 최초의 호위 항공모함 오더시티도 준공(기존 상선의 개장)되었을 시기거든요.
오더시티는 5,537t의 소형함으로 탑재기도 불과 6기에 지나지 않았지만「상선에서 개장한 녀석으로도 어떻게든 항공기를 날릴순 있잖아!」- 라고 기뻐한 영국해군은 이후 호위 항공모함의 건조에 열을 올려 최종적으로는 44척의 호위 항공모함을 보유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중 36척은 전국이 안정된 1943년 이후에 준공된 함이기에(나머지 8척중 1941년내에 준공한 것은 1척만)지금 이시점의 이야기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호위항모 오더시티
다시 영국 항공모함부대의 활약입니다만 그들은 프랑스 전함 덩케르크와 리슐리외를 격파하고 이탈리아 구축함들을 가라앉히는 정도로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1940년 8월 22일에는 이글이 이탈리아 구축함 오스트로, 네봄을 격침하고 9월 17일에는 도착한지 얼마 안된 일러스트리어스가 벵가지를 공습, 이탈리아 구축함 아킬로네와 보레아를 격침했습니다. 또한 11월 11일에는 유명한 타란토 야습으로 일러스트리어스는 이탈리아 전함 3척을 격침/대파시켜 데뷔하자마자 이탈리아 해군을 완전히 떡실신시키는 대수훈을 올렸지요. (으쓱으쓱 -ㅅ-; )
하지만 이듬해 1월의 엑세터 작전(제 1 차 말타 보급작전)에 투입된 일러스트리어스는 같은달 10일, 히틀러가 함명을 지명한 직접 격침명령-_-;에 의해 독일 급강하 폭격기대의 맹공을 받고 대파당했습니다. ( 당시 일러스트리어스는 독일공군 Ju-87기의 500kg/1000kg 폭탄을 이용한 급강하 폭격에 의해 다수의 명중탄을 맞았습니다. 참고로 슈투카 에이스로 유명한 한스 울.리히 루델이 소련 전함 페트로파블로프스크를 격침시킬때 명중시킨 폭탄이 이 1000kg 폭탄 한발이었지요. orz )
보통의 항공모함이라면 가라앉았을 이 맹렬한 항공공격에도 일러스트리어스는 살아남았고 이는 장갑 항공모함의 능력을 입증하는 좋은 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회항한 일러스트리어스는 연말까지 미국에서 수리받게 되고 추가 개장을 받게되죠.
장갑 항공모함이 아니면 이렇게 됩니다. -ㅂ-; 아카기.....orz
어쨌건 이때문에 일러스트리어스의 회항 이후 지중해의 영국 항공모함은 전년 11월 24일에 준공한 포미더블(일러스트리어스급)이 지중해에 도착하는 1941년 3월 10일까지 아크.로열 한척만 전개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당시 이글은 선체 수리중, 퓨리어스는 항공기 수송중, 허미즈는 대서양에서 독일 포켓전함 아드미럴.쉐어의 추격임무중이었기 때문이었지요. (뭐, 탑재기 12기인 허미즈나 22기의 이글은 처음부터 큰 전력은 아니었습니다만. -ㅅ-;)
하지만 다시 41년 봄에는 도착한지 얼마 안된 포미더블이 3월 26 ~ 28일의 마타판 해전에서 이탈리아 전함 비토리오.베네토를 격파하고 중순 폴라를 침몰시키는 수훈을 올렸습니다. 이어 5월 15일에는 역시 동급의 장갑 항공모함 빅토리어스도 준공했는데 이 빅토리어스 또한 준공하자마자 투입된 첫 실전항해인 5월 26일의 비스마르크 추격전시 독일전함 비스마르크에게 보기좋게 어뢰를 명중시켜 이 전함의 뒷다리를 잡는데 크게 기여했고 지중해로부터 급거 투입된 아크.로열 항공대도 어뢰를 두발 명중시켰습니다.
으음, 좋은 뉴스입니다.
영국해군 항공모함부대의 미래가 조금 밝아졌나............싶었습니다만 전쟁중엔 좋은 일만 계속되진 않죠. 호사다마라고 같은달 중에 포미더블이 역시 독일군 급강하 폭격기의 맹공을 받고 대파된겁니다. 포미더블의 수리기간 또한 6개월짜리라는 중상으로 일단 전열에서 이탈......게다가 동년(1941년) 6월, 독일군은 발바롯사 작전(대소 침공작전)을 발동했고 이에 의해 소련은 연합국에 가담합니다.
...............라는것이 영국해군에게 의미하는 것은......
이미 대서양, 인도양, 지중해라는 3 해역에서 싸우고 있었던 영국해군이 소련으로의 수송루트 확보를 위해 다시금 노르웨이 근해의 해상권, 제공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였던겁니다. orz
아시다시피 노르웨이의 비행장에서 출격하는 독일의 장거리 폭격기는 선단에 있어서 큰 위협입니다. 이것에 대한 에어 커버를 제공하려면 선단에 항공모함의 수반은 필수죠. 게다가 이런 와중에 41년 10월 10일에는 4번째의 장갑 항공모함 인도미터블( 제 1 진 장갑 항공모함은 이것으로 모두 취역 )이 준공했지만 취역 연습중 11월 3일에 좌초되어 버렸습니다(...)
HMS 인도미터블.
하지만 이 사건이 인도미터블에게 있어서 행운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는 꽤 판단이 어려운 문제입니다. 만약 이때 인도미터블이 좌초하지 않았다면 이 항공모함은 전함 P·웨일즈, 순전 리펄스와 함께 Force Z를 구성해 동양함대 편입이 결정되어 있었거든요. 재미있는 상상입니다만 개인적으론 만약 인도미터블이 있었다면 P·웨일즈와 리펄스는 일본해군의 육공대를 모조리 격추시키고 말레이로 항해중인 일본 육군 수송선단을 가라앉혀 곤도 제독의 제 2함대와 포격전을 벌였을지도 모릅니다. ㅎㅎ 그리고는 다시 싱가폴로 돌아와 동양 주제 모든 연합국의 함대, 즉 ABCD함대를 끌어모아 무시못할 대함대로 일본군의 초기 남방진격을 저지할 수 있었겠지요.
흠흠..........망상은 고만 하고 ㅡ.ㅡ;
어찌되었건 다시 실제 영 항모부대의 이야기로 돌아와볼작시면......역시 41년 11월 13일에는 지중해에서 작전중이던 아크.로열이 독일 잠수함 U-81의 뇌격으로 침몰했고 12월 21일에는 U-741의 뇌격으로 호위항공모함 오더시티도 침몰했습니다. 이정도면 이제 영국 항모부대, 아니 영국해군 입장에선 거의 엎친데 덮친 격이었습니다. -ㅅ-;
일러스트리어스와 포미더블, 인도미터블은 아직 수리중이었기에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쓸만한 항공모함은 빅토리어스와 퓨리어스뿐......여기에 더해 탑재기가 적은 허미즈(12기)나 아거스(20기)....두번째의 호위 항공모함인 아쳐(15기)밖에 남아있지 않았던겁니다. 이런 와중에 1941년 12월 8일, 태평양전쟁이 개전했고 같은달 10일에는 P.웨일즈와 리펄스를 주력으로 한 영 동양함대도 괴멸했습니다.
처칠의 탄식과 더불어 제국을 지키는 해군의 상황은 실제로도 최악이었던겁니다. -ㅅ-;
침몰하는 아크.로열. ㅠ.ㅠ
< 새로운 적 >
개전시 항공모함 6척(퓨리어스, 커레이져스, 글로리어스, 아크.로열, 이글, 허미즈)을 보유했던 영국해군은 1942년까지 항공모함 7척(장갑 항공모함 4척, 호위 항공모함 3척)을 연이어 취역시켰지만 그동안 항공모함 4척(커레이져스, 글로리어스, 아크.로열, 오더시티)을 상실했습니다.
남아있던 9척중에서도 3척(일러스트리어스, 포미더블, 인도미터블)은 수리중이었으므로 현역 항공모함은 6척....외견상 전력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빅토리어스와 퓨리어스를 제외하면 작전에 충분한 함재기를 태우지 못하는 항모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글이 탑재기 22기, 아거스가 20기, 허미즈는 12기, 아쳐는 15기밖에 안되기 때문에 즉 실제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녀석들이었단거죠.
이런 와중에 일본이 참전해 Force Z를 격파해버렸으므로 영국해군으로서는 이런 항모전력에서 다시 인도양의 방위 병력까지 염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연히 영국군의 인도양 방위병력 재편성은 수리중인 장갑 항공모함들이 전열에 복귀할 때까지 기다릴수밖에 없었습니다. 참고로 전술한 1942년의 호위 항공모함으로 상반기에 준공한 것은 바이터 1척(그것도 5월)뿐...
게다가 곤경에 처해 있던 것은 항공모함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주력함도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거든요 개전시 15척을 보유하고 있던 주력함에 영국해군은 3척(KGV, P.웨일즈, 듀크.오브.요크)을 더했지만 이때까지 5척(로열.오크, 바아햄, 후드, P.웨일즈, 리펄스)을 상실, 3척(QE, 벨리언트, 넬슨)은 수리중이었습니다.
HMS 포미더블
정리하자면 1942년 초엽의 시점에서 영국해군의 주요 가동함은 항공모함 6척, 주력함 10척밖에 없었기 때문에 장갑 항공모함 3척이 복귀했다고 해도 이중에서 항공모함 3척(인도미터블, 포미더블, 허미즈) 및 주력함 5척(워스파이트, 로열 서버린, 라밀리즈, 레졸루션, 리벤지)을 추출하는 것은 상당한 타격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유럽에 남겨진 전력은 항공모함 5척(일러스트리어스의 복귀는 42년 4월, 또한 그 후도 불령 마다가스카르 공략전에 투입되었으므로 전력 카운트에 들어가지 않음)과 주력함 5척 뿐이어서 영국해군은 이 전력으로 지중해의 이탈리아 해군과 노르웨이의 독일 해군을 누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인도양에 파견된 영함정의 동향에 대해서는 뭐 여기 들러주시는 분들 정도라면 다들 아실테니 4월 9일의 허미즈 전몰 정도만 언급해도 되겠지요..ㅎㅎ 하지만 이것조차 영국 해군으로서는 달랑달랑한 전력을 염출해 편성한 함대중의 일부였으므로 이후 영국해군이 인도양에서는 지중해나 대서양만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소극적 방어개념으로 대일전에 나선것도 어느 의미에선 불가피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물론 영국에게는 생존과 직결되는 대서양과 지중해와는 달리 인도양은 중요가 덜했기에 이 방면에서 희생을 담보로 일본해군과 결전을 벌일 필요가 없다는 실질적 이유도 있었지요)
하지만 일본의 참전은 곧 미국의 참전을 의미했기에 미 항공모함의 연합작전 참가는 영국해군에 있어 다소의 도움은 되었습니다.
인도양에서 전몰한 HMS 허미즈.
태평양전쟁의 개전시점(41년 12월) 에서 미 해군은 7척의 함대형 항공 모함을 보유했었는데(이외 호위 항공모함 1척)그중 3척(엔터프라이즈, 사라토가, 렉싱턴)은 태평양에, 남은 4척은 대서양에 전개중이었습니다. 그 대서양의 4척중 요크타운은 곧바로 태평양으로 회항했고 호넷도 뒤따라갔습니다만 워스프는 42년 7월에 태평양으로 회항될때까지 북대서양의 선단 호위나 두번에 걸친 말타로의 항공기 보급임무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남은 1척인 레인저는 끝까지 대서양에 남아 미 본토 ~ 북아프리카간의 항공기 보급임무나 북대서양의 선단 호위에 종사한 후 토취작전에서도 큰 역할을 완수했죠.
자....다시 영 항공모함의 이야기로 돌아와볼작시면 인도양에서 회항한 인도미터블과 포미더블은 수리를 완료한 일러스트리어스와 합동으로 42년 5월부터 마다가스카르 공략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달인 6월, 말타로의 보급이 목적인 하푼 작전이 발동되자 이글과 아거스가 이 작전에 참가하게 됩니다. 따라서 다음 영 항공모함부대의 싸움은 말타로 계속됩니다.
< Saving Malta ! ~ 말타 공방전 ~ >
페데스탈 작전시 투입된 영 항모부대. (빅토리어스, 인도미터블, 이글)
말타는 시칠리아와 트리폴리간에 위치하는 지중해의 작은 섬으로 면적은 246평방㎞, 작다고 알려진 괌의 절반정도에 지나지 않는 조그만 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섬을 사이에 둔 싸움으로 영국과 추축국은 다대한 희생을 치루게 됩니다.
1940년 6월 이탈리아 참전시 말타를 방어하는 항공병력은 해군의 시.글래디에이터 6기로 구성되는「 말타섬 전투기 소대」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순차적으로 증강되어 말타로부터 발진한 영국 항공부대는(주로 블레님 경폭) 이탈리아 본토에서 북아프리카로 향하는 추축국 선단을 차례차례 매장합니다. 그 숫자는 1941년 7월까지 지중해 전역에 있던 독일과 이태리 상선의 56%를 격침시킨다는 대단한 전과였지요. 당연히 추축국측에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말타의 영국군 항공병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대규모 항공작전(폭격)을 개시했습니다.
1942년 3월 20일부터 4월 28일까지 약 한달간 말타에 투하된 폭탄은 6,557 t으로 영국 본토 항공전(배틀.오브.브리튼:1940년 9월~)시 전 영국에 투하된 양에 필적할 정도였습니다. 이들 추축국의 항공공세를 격퇴하기 위해 전투기가 불가결한 것은 따로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이때문에 영국군도 항공모함을 투입한 전투기 보충을 반복했지만 1942년 1월 말에는 연이은 격전으로 말타의 전투기는 30기 이하까지 감소해 버렸습니다.
때문에 1942년 3월에는 이글 및 아거스에 의해 30기, 4월에는 미 항공모함 워스프에 의해 47기가 몰타로 추가 이송되었지만 4월 22일에는 이것조차 소모되어 가동기는 최악인 17기까지 감소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1942년 5월에도 워스프, 이글에 의해 62기가 보충되었고 이후도 빈번히 항공모함에 의한 말타로의 전투기 보충작전이 계속되었습니다.
말타섬을 둘러싼 공방전에서서 영국군의 항공기 소모는 RAF와 해군항공대 FAA 합쳐 총계 707기(다른 자료에 의하면 전투기만 844기), 추축국측의 손해도 567기에 이르는 막대한 양이었습니다.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영국군의 항공기 소모가 915기였던것을 생각하면 말타 항공전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또 항공모함에 의한 전투기 보충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짐작하실수 있다고 생각되는 수치입니다.
이러한 상황아래 말타 공방전의 절정이 된 사건이 바로 1942년 8월에 발동된 페데스탈 작전이었습니다. 이 작전에는 빅토리어스, 인도미터블, 이글, 퓨리어스의 네 항공모함이 투입되었는데 당시 이것은 영국이 투입할 수 있는 항공모함의 거의 전부(일러스트리어스와 포미더블은 인도양 방면에서 작전중)였습니다. 하지만 8월 11일에 U73의 뇌격으로 이글이 침몰해 선단의 방공전투기는 빅토리어스의 시.허리케인 6기, 풀머 16기와 인도미터블의 시.허리케인 24기, 마틀렛 10기로 감소된 상태였습니다. 이 외 퓨리어스가 RAF의 스핏파이어 38기를 탑재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말타로 보내지는 보충용이었지요. 이때문에 이 스핏파이어를 발진시키고 퓨리어스는 바로 이탈해 지브랄타로 회항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독일군 급강하폭격기에 의해 인도미터블이 대파(수리기간 6개월)되었고 수송선단도 6척만 살아남는 대피해를 냈지만 선단은 기어이 말타에 도착, 어떻게든 보급 물자는 확보되었습니다.
................뭐 말타가 살아남은 이상, 이제 피말리는 쪽이 된것은 추축국이죠. -ㅅ-;
보급이 끊어진 독일 아프리카 군단은 엘.알라메인전투에서 패배해 전면적인 퇴각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1월에는 토취작전도 발동되었는데 이 작전에 투입된 영미 연합함대의 항공전력은 항공모함 빅토리어스, 포미더블, 퓨리어스 및 호위 항공모함 4척으로 미 해군에서도 레인저와 호위 항공모함 5척이 참가했습니다. 하지만 11월 15일에는 영국 호위 항공모함 어벤져가 U155의 뇌격으로 격침.........orz. 영국해군은 여전히 힘든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야기서 잠시 항모 함재기 얘기를 잠깐 추가하자면.
페데스탈 작전 직후인 1942년 9월시 영국 항공모함에서 작전중이던 함전의 구성은 시-글래디에이터 1기, 풀머 64기, 시허리케인 42기, 시파이어 59기, 마틀렛 87기로 총계 253기였습니다. 전년에 비해 항공모함의 숫자 자체는 크게 늘지 않았는데 함전의 전체 숫자가 증가한것은, 역시 영국 해군항공대도 각 기종간 탑재비율을 바꾼것이란 얘기가 됩니다. 뭐 이 시점에서 가장 많은것은 역시 마틀렛이지만 그렇다해도 전체중 34% 밖에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진짜 주력이라고는 평가하기 어렵죠.
흠.........그렇다치더라도 전체 항모항공단 통틀어 오직 1기인 시글래디에이터 탑승원의 기분을 생각하면.orz
HMS 퓨리어스. 대전기는 하부 발함갑판을 막아 이런 형태였죠.
< 영국해군의 항공모함 건조계획 >
개전시 영국해군이 6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언급했습니다만 이중 1943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이들 전전부터 취역중인 노장 항공모함 중 남아있는것은 딱 한척뿐이었습니다. orz 그중 5척이 전몰(커레이져스, 글로리어스, 아크.로열, 허미즈, 이글)했고 오직 퓨리어스만이 잔존한 상태였지요. (아거스는 상선 개조 항공모함이며 개전시 예비함이었으므로 여기에서 제외)
이 퓨리어스와 대전중 신조된 장갑 항공모함 4척(인도미터블은 수리중), 그리고 호위 항공모함 7척(아거스에 신조 8척이지만 상실분 2척을 빼면 7척)을 더한 12척(함대형 항공 모함 5척, 호위 항공 모함 7척)이 1943년을 맞이한 영국해군의 항공모함 전력이었습니다.
뱀에 다리를 붙이자면 이 시점에서 일본해군은 함대형 항공모함 4척(쇼가쿠, 즈이가쿠, 준요, 히요)과 경(중소형) 항공모함 6척(즈이호, 류호우,호쇼, 추요, 운요 외 1척) 총계 10척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미 해군의 보유수는 함대형 항공모함 3척(엔터프라이즈, 사라토가, 에섹스), 경항모 1척(인디펜던스), 호위 항공모함 12척(롱.아일랜드, 보그, 생가몬 외 9척)을 합한 16척이었습니다.
자....눈에 띄게 가혹한 희생을 치른 영국 항공모함부대의 전력이지만 그 특징이라면 기존 항공모함의 큰 감소와 더불어 이와 대비되는 신예 장갑 항공모함의 강인성이 확실히 주목할만합니다. 확실히 장갑 항공모함은 독일공군의 거듭되는 맹공격에도 견뎌내 분명 미국이나 일본 항모였다면 전몰했을 상황에서도 끝까지 버텨 전몰까지 이르지 않았던 예가 많았거든요. 다만 장갑 항공모함이 대파된 예는 지금까지 거의 급강하 폭격이었는데 반해 기존 항공모함 5척의 전몰은 오히려 잠수함의 뇌격에 의한 3척(아크.로열, 이글, 커레이져스)과 수상함에 의한 1척(글로리어스), 급강하 폭격에 1척(허미즈) 등 다양했으므로 뭐 단순비교하는것은 조금 애매할지도 모릅니다. (뽀핫 ㅡ.ㅡ;)
하지만 모처럼 건조한 장갑 항공모함을 잠수함의 뇌격에 희생시킨 일본해군에 비하면 영국해군은 결과적으로 장갑 항공모함을 건조한 의의가 충분히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1943년 초반의 시점으로 돌아오면...-ㅅ-;
영국해군 항공모함부대의 전력은 아까 언급한 그대로입니다만 이 시기는 5, 6번째의 장갑 항공모함으로 인플라케이블급 2척이 진수를 끝내고 막바지 공사가 진행중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다수의 호위 항공모함이 미국에 발주되고 있었지요. 또한 6척의 장갑 항공모함을 보완할 목적으로 미/일의 급조형 경항모와는 차원이 다른 함대형 경항모 16척(콜로서스급 10척, 마제스틱급 6척)의 건조도 착착 진행되고 있어 그 어려웠던 1942년중에 이미 8척이 기공되었었습니다.
이러한 함대형 경항모들의 특징은 고각포를 과감히 철거했거나 달았어도 그 숫자가 확연히 적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경항모라고는 해도 거의 함대형 항모에 필적할만한 여유있는 크기로 미/일의 간이개장 경항모보다(인디펜던스급이나 즈이호 등) 함재기 운용에 여유가 많았으며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갑 항공모함보다 공정이 간단했기에 (지금까지의 영국 항모들보단)건조가 훨씬 용이했습니다.
즉 지금까지 영국 항공모함들의 특징이 탑재기수를 줄이더라도 방어력과 대공화력의 증대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제는 영국해군의 항모 운영개념도 완전히 반대의 발상으로 전환된 것을 의미했습니다. 요컨데 이러한 함대형 경항모의 건조는 영국해군도 이제는「 함전에 의한 함대 방공 」을 본격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여기서 잠깐 또 뱀에 다리를 붙이자면.....이러한 타입의 항공모함이 타국에서 구상된적이 있었을까요?
.................있긴 있습니다.orz
1942년 6 월말, 일본해군은 항공모함 급조를 주안으로 한 改⑤계획(제 5차 건함계획 改)을 책정했는데 이것에 대해서도 해군 항공본부는 아직 미흡하다고 판단해 오오니시 타키지로 소장(당시 해군 항공본부장)이 직접「항공모함 정비방침에 관한 의견」을 연합함대 사령부에 제출했습니다.
여기에 따른 보조 항공모함 계획에서는 고각포 장비 등 여타 공정과 설계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요소를 생략하고 최대한 여유있는 선체를 확보하는 선에서 대형항모에 필적하는 크기의 보조항모가 필요하다는 착안아래 비행갑판장 230 m, 속력 25~28 노트, 탑재기 50기 이상..........인 콜로서스급과 매우 비슷한 구상의 항모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다만 일본에서 이 플랜은 채용되는 일이 없었지요......orz
자, 하여튼 전술한 함대형 항공모함 5척, 호위 항공모함 7척의 전력으로 스타트한 1943년의 영 항공모함부대는 같은 해에 무려 호위 항공모함 30척, 항공기 공작함(유니콘:경항모로서의 기능을 겸한)1척을 더해 유럽수역에서 압도적인 전력을 구축하게 됩니다. 즉 북대서양의 선단 호위나 각종 작전의 지원에 유효한 호위 항공모함을 충분히 확보한 셈이죠.
따라서 이 시기부터 영 항공모함들은 예전처럼 가혹한 전투는 벌이지 않게 되었는데 43년 5월부터 7월 사이엔 항모 HMS 빅토리어스가 USS 로빈이란 이름으로 미 해군에 임시 편입되어 항모 사라토가와 함께 솔로몬 제도 및 뉴기니아에서 작전을 치루기도 했습니다. 그밖에 7월에는 시칠리아 상륙전의 지원으로 인도미터블과 포미더블이, 8월의 살레르노 상륙전에서는 일러스트리어스, 포미더블, 유니콘 및 호위 항공모함 4척이, 9월의 타란토 상륙전에서는 유니콘 및 호위 항공모함 4척이 상륙작전의 지원에 투입되었습니다.
(43년간 영 항모의 손실은 3월 27일에 호위 항공모함 1척이 사고에 의해 폭침-_-; 7월에는 인도미터불이 시칠리아 작전중 뇌격에 의해서 대파(수리기간 8개월orz)당해 전열에서 이탈)
< 1943년 9월 기준 영 해군항공대의 함상전투기 요목>
페어리 풀머 3기, 시허리케인 17기, 시파이어 98기, 마틀렛 117기, 가넷(F6F헬켓) 28기, 콜세어 76기
= 총계 339기
마틀렛(F4F 와일드켓)은 이 시점까지도 역시 전체에서 차지하는 숫자는 가장 많지만 그렇다해도 퍼센테이지로 따지면 34%에 지나지 않기에 확고한 주력함전으로 평가하긴 역시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영 해군항공대의 함전들중 미국제 함전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큽니다. 그리고 뭐 다음편의 결론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ㅅ-; 가장 주목할 부분이 바로 콜세어의 등장입니다.
미해군에서는 육상기로 채용되어 1945년에야 함재화(실용시험은 1944년 4월)가 된 F4U 콜세어를 영국해군은 43년부터 함전으로 재빨리 채용했거든요. 어찌보면 영국해군의 콜세어 함상운용이 미 해군을 자극했던 것입니다. 사실 영국해군이 이 콜세어를 재빨리 함전으로 채용한것은 그들이 원래부터 가지고있던 함전의 운용사상에 꼭 맞는 그런 기체였던것이 가장 컸습니다. 요컨데 다량의 폭장능력이 있으면서도 우수한 함상전투기....영국해군이 복좌함전에 집착한 것이나 개전 초 함폭 스큐어에 함전의 기능을 함께 부여한것을 봐도 알 수 있듯 영국해군이 함전에 요구한것은 바로...
"전투폭격기"
였거든요!!! -ㅅ-; 이것이 아니라면 복좌함전이나 다음편에 후술할 파이어브랜드 등은 도저히 설명이 안됩니다.orz
즉 이 콜세어가 등장한 이후 영국해군에서 함전(사실은 전투폭격기)의 탑재 비율은 한층 높아졌습니다. 다만 장갑 항공모함중 전기형 3척은 격납고가 1단(격납고 높이 4.9 m)이었으므로 콜세어를 탑재할 수 있었지만 인도미터블과 후기형 2척은 탑재기수를 늘리기 위해 격납고를 2단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높이가 4.3 m(...)로 낮아져 전고가 높은 콜세어를 탑재할 수 없었습니다. orz
F4U 콜세어. 함상운용은 영국이 미국보다 먼저였죠.
다음편에서
엔드류 보이드에 따르면 HMS 인도미터블은 동양함대에 합류할 계획 없었다고 함 - dc App
뭐 옛날 자료다 보니 합류했을 거라 언급한 건가 싶기도? - dc App
기존에 알려진 거는 인도미터블이 암초에 의한 손상으로 합류를 못했다고 하던데 관련 링크 있음?
https://m.dcinside.com/board/war/3809644
- dc App
https://m.blog.naver.com/imkcs0425/220400774068?referrerCode=1
책 제목은 Andrew Boyd-The Royal Navy In Eastern Waters: Linchpin of Victory 1935-1942임 - dc App
일단은 기존에 알려진 내용은ㅁ 이랬음
나도 기존에는 그렇게 알았는데 저 책 보고 아니란 걸 알게 되었음. - dc App
개추 - dc App
오오 배군좌 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