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진입을 못함. 한성런 뛴것도 있고, 이치나 진주성 등 조선군 방어에 막힘. 애초에 조선도 전라도 절대사수가 대전략이었고. 글고 왜군 역량이 너무 안됨. 경상도도 그냥 점과 점만 이은 선 수준이라서 조선이 경상도 수령들 정기인사배치했을 지경.
익명(175.117)2024-03-13 04:31
답글
ㄹㅇ?머냐 전라도 진입도못하는데 어캐 한양 평양 먹은거임?
익명(iu123456)2024-03-13 04:33
답글
ㄴ땅에서 조선군이 좆병신이라
익명(121.169)2024-03-13 04:46
답글
왜군들 중 가장 준비가 잘된 고니시와 가토의 군대가 서울런 한 거라. 왜군이 너무 서울로 빠르게 쾌진격하는 바람에 지방의 군대가 제대로 모이지 못해 일방적으로 서울을 털렸던 거고, 그 대신 서울에 모이지 못한 지방의 군대가 이치나 웅치 등에서 잘 싸워서 지방을 지킨 거
ㅇㅇ 1(211.193)2024-03-13 04:59
답글
노량해전에선 거북선 없엇냐?
익명(iu123456)2024-03-13 05:10
답글
딱히 기록은 없어.
칠천량에서 조선해군이 한번 전멸해서 명량 이후에 처음부터 재건해야 했던 점이나 전투 규모가 이전 해전들과 격이 다른 점을 생각해보면 돌격선인 거북선을 만들 효용이 적었을 거라는 건 짐작할 수 있음. 거북선이 크게 활약했던 부산포 해전 이전의 해전들에 비해 노량의 왜군 함대는 5백 척 규모라 돌격선 두세 척이 파고든다고 해서 진영이 크게 망가질 리도 없으니까.
왜놈들도 임란 당시 실책을 파악하고 정유재란에서는 먼저 전라도를 털어버림. 하지만 명량해전과 명군개입으로 충청도 직산에서 진격이 돈좌되었고 다시 남하하여 각지에 왜성을 쌓고 버티기에 들어갔는데 이때 고니시가 틀어박혔던 순천 왜교성이 여수 바로 옆임.
이 때 충무공은 원균의 참소로 파직 - 백의종군 트리를 타고 있던 터라 칠천량 해전으로 해군이 괴멸되는 걸 막지 못했고, 이후에 통제사로 복귀해서 명량대첩을 벌이고 전라남도 해안가의 고금도에 본영을 지어 수군을 재건하여 최종결전인 노량해전을 치름
ㅇㅇ 1(211.193)2024-03-13 05:06
답글
오..그 거북선을 일본놈들이 왜 메쿠라부네라고 부른거임?
배의 눈이 없어서 장님같다고 해서 불럿다던데
익명(iu123456)2024-03-13 05:08
조선 방어체제가, 장수들이 지역으로 가면, 지역에서 애들 모아서 부대꾸리고 출발하는식임. 평소엔 부대들이 없음.
그런데 일본군이 3주인가하는 초고속으로 서울까지 가버려서, 부대 꾸리기도 전에 서울이 날아감.
역으로 말해서, 서울 날아간 후에 각지에서 조선군이 꾸려짐. 시간이 흐르면서 이 조선군은 대부분 박살나긴했지만, 이순신 인근에서는 제대로 방어 잘하는 기초가 됨.
그리고 이순신 근저 지역은 식량 산지여서 일단 방어 잘하니까 장기전 끌고갈 원동력이 되었음
ㅇㅇ 2(121.185)2024-03-13 05:06
답글
일본의 전국시대는 초대규모 내전이여서, 야쿠자 두목이 튀면 그 나와바리를 쳐들어온 두목이 먹어치우듯, 나와바리 지키는것이 중심이고 나와바리 두고 튀는건 불가능한 일이었음.
전국시대 통일 직후여서 그 관점으로 서울 공략해서 조선이란 나와바리의 수장인 왕을 잡으려함.
하지만 왕이 빠르게 튀었고, 조선 국민들은 벌떼같이 들고 일어남.
일본쪽은 상상도 못한 전개여서 크게 당황해버림.
역으로 조선은 착실하게 점령하면서 후방안전하면서 쳐들어올줄 알았는데, 뜬금포 서울 올인 레이드 오니까 제대로 대응 못함
ㅇㅇ 2(121.185)2024-03-13 05:10
답글
ㅇㅎ... 거북선이 쓰인건 한산대첩뿐임?.. 노량해전에 없엇던거같던데
익명(iu123456)2024-03-13 05:11
답글
거기까진 잘 모름.
참고로 첫리플도 말했는데, 조선의 세금 수취나 통신 등은 해운으로 대부분 이루어짐. 호랑이 돌아다니는 곳에서 육로 쓰긴 빡세니까. 그래서 이순신이 지킨 서해안, 남해안은 멀쩡하게 세금걷는 등 조선의 지배권으로서 잘 돌아감.
일본군이 서울 올인 한 뒤에 뒤늦게 치기엔 조선의 방어체계가 잘 돌아가는 곳이고 후방도 안정화되고 국가체계도 비교적 멀쩡했단 소리임.
이순신만 조명받는데, 그쪽 장수들도 공적 많이 세우고 왜군들 수만씩 막은 네임드들 많음. 그리고 이름없이 그걸 지지한 사람들과, 국가체계도 있었고.
ㅇㅇ 2(121.185)2024-03-13 05:16
답글
ㅇㅎ.. 한산영화보니까
부산에서 왜군 지들끼리 ㅈㄴ 쳐싸우는데 왜그러는거냐?
왜 아군끼리 칼질하고 그지랄하는거?
명량해전이 조선 수군의 대승으로 끝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불리한 상황이여서 이순신이 남해를 비우고 목포에서 재정비 했을때 왜군이 여수 전라 좌수영 털었음
ㅇㅇ 3(221.155)2024-03-13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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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왜군들은 왜캐 하나로 못뭉침? 부산에서 지들끼리 칼질하고 죽이고 그러더만
익명(iu123456)2024-03-13 05:46
답글
왜군 자체가 일종의 조별과제 집단임
옆 부대가 뒤져도 알바노? 하는 경우도 많고 괜히 협력했다가 전공 뽀찌뜯기기 싫어서 단독행동 돌발행동 존나 많이함
그러다가 꺠진 대표적인 예가 한산대첩이고
ㅇㅇ 5(106.242)2024-03-13 11:29
일본 본토에서 센고쿠 시대 끝난지가 20년도 안된 시점이고, 애당초 각 도도부현로 구성된 중앙집권제가 아니라, '번국'들로 구성된 엄연한 국가들의 모임에 가까워서 그럼. 각 번국들은 덴노를 명분상 섬기고, 가장 대빵인 도쿠가와 가문이 쇼군으로써 나머지 위에 서있는 것 뿐임. 사실상 남남
파르선(argo412)2024-03-13 05:59
답글
그래서 목표가 일치해서 같이 간거 뿐이지, 그렇다고 서로 열성적으로 도울 생각도 딱히 읎음.
전라도 진입을 못함. 한성런 뛴것도 있고, 이치나 진주성 등 조선군 방어에 막힘. 애초에 조선도 전라도 절대사수가 대전략이었고. 글고 왜군 역량이 너무 안됨. 경상도도 그냥 점과 점만 이은 선 수준이라서 조선이 경상도 수령들 정기인사배치했을 지경.
ㄹㅇ?머냐 전라도 진입도못하는데 어캐 한양 평양 먹은거임?
ㄴ땅에서 조선군이 좆병신이라
왜군들 중 가장 준비가 잘된 고니시와 가토의 군대가 서울런 한 거라. 왜군이 너무 서울로 빠르게 쾌진격하는 바람에 지방의 군대가 제대로 모이지 못해 일방적으로 서울을 털렸던 거고, 그 대신 서울에 모이지 못한 지방의 군대가 이치나 웅치 등에서 잘 싸워서 지방을 지킨 거
노량해전에선 거북선 없엇냐?
딱히 기록은 없어. 칠천량에서 조선해군이 한번 전멸해서 명량 이후에 처음부터 재건해야 했던 점이나 전투 규모가 이전 해전들과 격이 다른 점을 생각해보면 돌격선인 거북선을 만들 효용이 적었을 거라는 건 짐작할 수 있음. 거북선이 크게 활약했던 부산포 해전 이전의 해전들에 비해 노량의 왜군 함대는 5백 척 규모라 돌격선 두세 척이 파고든다고 해서 진영이 크게 망가질 리도 없으니까.
흠..거북선 생각보다 위상이 너무높은거아님?
1. 해상에서 반격가능성을 무시함 2. 속전속결로 국왕을 생포하려 했음 3. 1,2가 실착이었단걸 알았을땐 늦었음
ㅇㅎ.. 여수로 군대보내긴 이미늦은거?
ㄴ 명량, 노량에선 가능했음 ^^
엥?? 그게먼소리!?
노량은 거의끝날때아닌가
ㄴ영화에서, 정유년엔 전라도까지 다 불바다되고 삼남지방 초토화 안된데 없음
왜놈들도 임란 당시 실책을 파악하고 정유재란에서는 먼저 전라도를 털어버림. 하지만 명량해전과 명군개입으로 충청도 직산에서 진격이 돈좌되었고 다시 남하하여 각지에 왜성을 쌓고 버티기에 들어갔는데 이때 고니시가 틀어박혔던 순천 왜교성이 여수 바로 옆임. 이 때 충무공은 원균의 참소로 파직 - 백의종군 트리를 타고 있던 터라 칠천량 해전으로 해군이 괴멸되는 걸 막지 못했고, 이후에 통제사로 복귀해서 명량대첩을 벌이고 전라남도 해안가의 고금도에 본영을 지어 수군을 재건하여 최종결전인 노량해전을 치름
오..그 거북선을 일본놈들이 왜 메쿠라부네라고 부른거임? 배의 눈이 없어서 장님같다고 해서 불럿다던데
조선 방어체제가, 장수들이 지역으로 가면, 지역에서 애들 모아서 부대꾸리고 출발하는식임. 평소엔 부대들이 없음. 그런데 일본군이 3주인가하는 초고속으로 서울까지 가버려서, 부대 꾸리기도 전에 서울이 날아감. 역으로 말해서, 서울 날아간 후에 각지에서 조선군이 꾸려짐. 시간이 흐르면서 이 조선군은 대부분 박살나긴했지만, 이순신 인근에서는 제대로 방어 잘하는 기초가 됨. 그리고 이순신 근저 지역은 식량 산지여서 일단 방어 잘하니까 장기전 끌고갈 원동력이 되었음
일본의 전국시대는 초대규모 내전이여서, 야쿠자 두목이 튀면 그 나와바리를 쳐들어온 두목이 먹어치우듯, 나와바리 지키는것이 중심이고 나와바리 두고 튀는건 불가능한 일이었음. 전국시대 통일 직후여서 그 관점으로 서울 공략해서 조선이란 나와바리의 수장인 왕을 잡으려함. 하지만 왕이 빠르게 튀었고, 조선 국민들은 벌떼같이 들고 일어남. 일본쪽은 상상도 못한 전개여서 크게 당황해버림. 역으로 조선은 착실하게 점령하면서 후방안전하면서 쳐들어올줄 알았는데, 뜬금포 서울 올인 레이드 오니까 제대로 대응 못함
ㅇㅎ... 거북선이 쓰인건 한산대첩뿐임?.. 노량해전에 없엇던거같던데
거기까진 잘 모름. 참고로 첫리플도 말했는데, 조선의 세금 수취나 통신 등은 해운으로 대부분 이루어짐. 호랑이 돌아다니는 곳에서 육로 쓰긴 빡세니까. 그래서 이순신이 지킨 서해안, 남해안은 멀쩡하게 세금걷는 등 조선의 지배권으로서 잘 돌아감. 일본군이 서울 올인 한 뒤에 뒤늦게 치기엔 조선의 방어체계가 잘 돌아가는 곳이고 후방도 안정화되고 국가체계도 비교적 멀쩡했단 소리임. 이순신만 조명받는데, 그쪽 장수들도 공적 많이 세우고 왜군들 수만씩 막은 네임드들 많음. 그리고 이름없이 그걸 지지한 사람들과, 국가체계도 있었고.
ㅇㅎ.. 한산영화보니까 부산에서 왜군 지들끼리 ㅈㄴ 쳐싸우는데 왜그러는거냐? 왜 아군끼리 칼질하고 그지랄하는거?
https://namu.wiki/w/%ED%95%9C%EC%82%B0:%20%EC%9A%A9%EC%9D%98%20%EC%B6%9C%ED%98%84/%EC%97%AD%EC%82%AC%20%EC%9E%AC%ED%98%84%EC%84%B1#s-3.1
뭔가
묘해서 혹시나하고 나무위키 뒤지니까 이런거 있네.
일본군 측 상황은 실제 역사에 비해 각색이 많이 됐는데, 개연성을 위해 일본 내 장수간 갈등을 빚는 장면을 넣어 일본군의 졸전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주는 장치로서 썼다고 볼 수 있다.
니가 다른 리플에서 물었던 메쿠라부네도 있음
실제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서 거북선을 부른 명칭은 '맹선(盲船)'[24]이란 뜻의 메쿠라부네였다. 배가 사방이 전부 막혀있어서 어디로 밖을 내다보는지 알 수 없어 장님 배라고 불렀다
흠 지들끼리 싸운건 각색인가
여기서 물은 대부분이 꺼라위키에 잘 적혀있던데 그냥 나무위키 켜서 봐라
명량해전이 조선 수군의 대승으로 끝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불리한 상황이여서 이순신이 남해를 비우고 목포에서 재정비 했을때 왜군이 여수 전라 좌수영 털었음
그 왜군들은 왜캐 하나로 못뭉침? 부산에서 지들끼리 칼질하고 죽이고 그러더만
왜군 자체가 일종의 조별과제 집단임 옆 부대가 뒤져도 알바노? 하는 경우도 많고 괜히 협력했다가 전공 뽀찌뜯기기 싫어서 단독행동 돌발행동 존나 많이함 그러다가 꺠진 대표적인 예가 한산대첩이고
일본 본토에서 센고쿠 시대 끝난지가 20년도 안된 시점이고, 애당초 각 도도부현로 구성된 중앙집권제가 아니라, '번국'들로 구성된 엄연한 국가들의 모임에 가까워서 그럼. 각 번국들은 덴노를 명분상 섬기고, 가장 대빵인 도쿠가와 가문이 쇼군으로써 나머지 위에 서있는 것 뿐임. 사실상 남남
그래서 목표가 일치해서 같이 간거 뿐이지, 그렇다고 서로 열성적으로 도울 생각도 딱히 읎음.
아예 안간건 아님 그냥 진주성을 못넘음 - dc App
실제로 왜군도 그 생각을 했는데 진주성이랑 몇몇 요충지에서 컷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