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 당시 최고 사령관인 슈워츠코프는 공군에게 개전 즉시 B-52로 이라크군 주력을 웅단폭격으로 두들기기를 원함. 반면 공군은 이라크 방공망 상황을 생각하면 이는 자살적인 작전이며, 일단은 A-10과 F-16등으로 우선 공격을 가하고 B-52에 의한 융단폭격은 이라크 방공망에 대한 타격이 끝난 24시간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주장함.

이는 육군인 슈워츠코프와 공군의 폭격목표 선정을 담당하던 글로슨 준장 모두 베트남전의 기억 때문에 발생.

먼저 공군의 글로슨 준장은 그 자신이 F-105조종사로 베트남전때 참전하여 B-52가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에 얼마나 취약한지 알고 있었음. 특히 라인베커 작전때 1번 출격에 6대의 B-52가 떨어진 일도 있었고 해서 방공망 제압을 우선시 함.

밤면 슈워츠코프는 이라크군 공화국수비대의 섬멸이 전쟁의 승패를 가로지르는 상황이었기에 콕 집어 B-52의 즉각 투입을 명령함. 그가 B-52의 능력을 맹신한 이유는...

자신이 그 B-52에 오폭을 당해봐서라고.

공군은 B-52가 사막지대에 흩어져 엄폐물로 보호된 지상군 공격에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육군 입장에서는 실제 타격이 없다손 치더라도 심리적 압박효과가 크다고 판단한 셈.

결국 절충안으로 작전개시 후 18시간 뒤 융단폭격이 실시 됨.

<내레 다스베이더 모가지 따고 데스스타 폭파하러 야빈에서 왔수다.>